[헤럴드경제=박정규(평택) 기자]전 세계에 평택항을 알리는 김정훈<사진> 경기평택항만공사 홍보마케팅팀장은 ‘남다른 추억’을 갖고 있다. 전세계 어디에서도 주목하지 않았던 평택항을 ‘국내 제 1항’으로 만든 그의 ‘열정’은 유대인 지침서 ‘탈무드’ 한권에서 시작됐다.

지금은 고인이 된 아버지가 초등학교 입학당시 선물한 탈무드는 그의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됐다.

“자녀에게 물고기 한마리를 주는 것보다 물고기 잡는법을 알려줘라’ ‘한개의 촛불로 많은 촛불에 불을 붙여도 처음의 촛불 불빛은 약해지지 않는다’는 탈무드의 격언을 어릴적부터 가슴에 새겼다. 그는 항상 ‘개척정신’으로 무장했다. 아버지가 선물한 탈무드는 인생의 지침서로 자리잡았고 더 나아가 평택항을 전세계에 알리는 ‘1등공신’이었다.

김 팀장이 입사하기전 평택항은 국내는 물론 세계에도 잘 알려지지않는 항만이었다. 하지만 한국하면 인천항, 부산항 정도만 기억하는 세계가 평택항을 한국의 제1항으로 주목하기 시작했다. BMW, 벤츠, 닛산, 랜드로바 등 미국 독일 일본 영국 등 전세계 글로벌 모든 자동차 회사 자동차들이 평택항으로 몰려오고있다.

지난 한해동안 평택항에서 수출입한 자동차는 145만대로 지난 2010년부터 지난해말까지 전국 자동차 수출입 물동량 증가율 1위를 기록했다. 그가 2009년 평택항만공사가 입사한후 1년뒤부터 평택항은 전국 1위자리를 놓치지않은 셈이다.

평택항만공사에서 포트세일즈(Port-Sales), 항만운영기획 홍보, 국내외 기업 상대 홍보자료 준비 등 어느 것 하나 김 팀장의 손을 거치지 않는 것은 없다.

김 팀장은 누구도 생각치 못하고 엄두도 내지못한 일을 아이디어로 냈고 훌륭하게 맡을 일을 해냈다. 유창한 영어실력으로 ‘무장’한 그는 국내 기업은 물론 전세계를 돌며 평택항의 훌륭한 인프라와 장점을 알려 평택항을 국내 제 1항으로 자리잡게 했다.

김 팀장은 “아버지와 이별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됐어요. 아버지는 어릴때부터 제게 아주 특별한 분이셨어요. 아버지가 웃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 대학 다닐 때는 많은 공모전에 응모해 상을 받아오곤 했죠. 어떨 때는 아버지를 행복하게 해드리기 위해 핑계를 대고 아버지에게 대신 시상식에 가달라고 부탁도 했구요”

그는 지난 2008년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갑자기 돌아가셨을 때 충격을 받았다. 신문기자로 입사해 사회를 비판해왔던 그는 충격에 휩싸여 무작정 사표를 내고 방황을 시작했다.

김 팀장은 이야기를 매듭짓지도 못하고 잠시 말을 멈춘다. 금새 그의 눈시울은 붉어졌다. 그는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을 마주대하는 순간 어떤 일도 할 수 없었다.

“이미 결혼도 했지만 정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서 무작정 사표를 냈어요. 제 자신을 다시 돌아볼 시간적인 여유가 필요했거든요. 그런데 그때 아내가 아무 말 없이 제 손을 꽉 잡아주더라구요. 그 위로가 얼마나 컸던지, 지금 생각해도 아내가 정말 고맙죠”

제2의 인생을 시작하기위해 직업 선택기준으로 삼은 건 공적인 영역에서 능력을 펼치며 성취감과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이었다. 그의 생각과 ‘딱’ 맞아 떨어진 곳은 평택항 수ㆍ출입을 담당하는 ‘경기평택항만공사’였다.

평택항만공사 입사를 결정하기전 그는 평택항을 직접 보기위해 서울에서 내려왔다.

그가 평택항을 보면서 제일 먼저 한 말은 ‘여기가 내 꿈을 펼칠곳이구나“였다. 그는 평택항만공사에 입사해 시작한 일은 ‘평택항 제대로 알리기’였다.

“이미 갖고 있는 인프라가 많았는데 홍보가 안됐어요. 다만 그냥 알리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잘 알려보자는 것이 목표였죠. 중국과 가까운 지리적 이점을 가진 평택항의 경쟁력을 잘만 활용하면 인천항도 뛰어넘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거든요”

하지만 ‘벽’은 항상 존재했다. 문전박대와 외면도 뒤따랐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않았다.

“항만을 만들면 저절로 물동량이 늘어날 줄 알았어요. 그런데 늘지 않는 거예요. 부산항이나 인천항 등을 오랫동안 이용해 왔기 때문에 새로운 평택항의 필요성을 몰랐던 거죠”

김팀장은 짧은 면담시간을 고려해 브리핑 자료를 모두 외웠다. 표정관리를 위해 매일 밤 집에서 거울을 보면서 연습도 했다.남다른 평택항 홍보전략이 절실하다고 판단, 3년여 동안 평택항과 다른 항만의 차이를 분석하고 전략도 새롭게 짰다.

“평택항 성장의 1등 공신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김 과장은 “제가 뭐 한 게 있다고요. 부끄럽습니다. 그저 뛰어난 경쟁력을 가진 평택항을 제대로 알리는 데 노력했을 뿐 입니다”라며 손사래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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