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기 세계술문화박물관장
전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수출산업분야 중 하나인 주류사업은 각 나라의 특산품으로서의 전통적인 면을 중시하지만 세계적인 트렌드 역시 빠르게 반영해 새로운 제품이나 음주문화를 만들어가는 다이내믹한 산업이다.
예를 들어 중국은 일대일로(一帶一路ㆍNew Silk Road) 와인 공정(工程)으로 와인의 불모지에서 세계 5위 생산국으로 약진해 와인지도를 바꿨다. 영국의 디아지오사가 20여년 전에 개발한 위스키 칵테일 주류(Ready to Drink)는 매년 수천만 상자가 판매되며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 일본의 산토리사는 1990~2000년대 위스키 시장의 장기 불황을 저도수 위스키 칵테일의 일종인 하이볼(Suntory High Ball)로 극복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세계의 주류업계는 더 활발하게 변화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이 세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증류주의 지속적 성장이다. 세계 주류시장 데이터 분석 기관인 IWSC(International Wine & Spirits Competition)의 통계자료에 의하면 와인, 맥주 등 양조주 시장은 연평균 1~2% 감소하고 있는 반면 증류주 시장은 3~4% 증가하고 있다. 증류주 시장의 성장은 위스키가 주도하고 있다. 다국적 위스키 업체들은 여성 및 젊은 소비자들을 타깃으로 판촉활동을 벌여왔고 아프리카 및 중국 등 새로운 시장으로 진출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 인도, 타이완, 미얀마 등지에 위스키 공장을 짓고 수출 시장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다.
둘째, 거대한 글로벌 브랜드 탈피 경향이다. 누구나 찾는 브랜드가 아닌 나만의 브랜드를 추구하고, 호기심에 가득 찬 젊은이들이 독특한 소규모 제조자들의 제품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아버지 브랜드(Father‘s Brand)가 아닌 내 취향에 맞고 나의 개성을 돋보이게 할 브랜드를 찾아 소비하는 트렌드가 확산됨에 따라 전세계에서 소규모 맥주 양조장(Micro Brewery)과 소규모 증류소(Micro Distillery) 붐이 일고 있다.
셋째, 기존의 관행이나 정설을 무시하고 파격적인 제품이 등장해 성공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한 주류업체는 2009년 프랑스에서 출시한 포도로 만든 증류주 오드비(Eau de Vie)를 브랜디 대신 보드카로 개발했다. 이 제품은 2016년 2백만 상자(1상자 9L) 이상이 팔리며 세계적인 브랜드가 됐다. 보드카는 보리 등 곡물과 감자 등으로 만든다는 업계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새로운 지평을 연 것이다.
역사와 전통을 최우선시하는 위스키 시장에서도 첫 제품 출시 후 10년 만에 세계적인 위스키회사로 성장한 사례가 있다. 2006년에 생산을 시작한 타이완의 카발란 위스키는 핵심 원료인 보리가 재배되지 않는 아열대 지방임에도 불구하고 유럽과 미국을 공략해 대성공을 거두며 전세계 위스키 회사들을 놀라게 했다. 카발란의 성공으로 위스키를 생산하려면 연중 기온이 서늘한 스코틀랜드 같은 지역이 좋은 곳이라는 과거의 정설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됐다.
한편 증류주 시장, 특히 위스키 시장이 전세계적으로 성장하고 제3국가에서 소비자들이 열광하는 새로운 브랜드가 등장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유독 위스키 시장이 힘을 못쓰고 있다.
필자는 1981년부터 위스키 공장을 세우는데 직접 참여하고 한국산 위스키를 개발해왔기 때문에 2000년 이후에 쇠퇴를 거듭하고 있는 한국의 위스키 시장이 안타깝다. 한국 위스키 업계가 붕괴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제품 이노베이션 부족이 가장 큰 이유라고 말하고 싶다. 1991년 위스키 수입시장이 개방되자 업체들은 위스키 원액 생산을 중단하고 수입에만 열중했다. 한국 위스키의 미래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유사한 처지에 놓였던 타이완의 위스키 업계 사례를 살펴보자. 2005년 타이완 정부는 WTO에 주류 수입개방 정책을 제출했다. 이에 대응한 타이완의 주류업체는 위스키 원액 수입 대신 아예 위스키 공장을 설립하는 역발상을 했다. 이는 매우 과학적인 추론에 근거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화학 반응의 속도는 온도가 높아짐에 따라 급속히 증가한다. 위스키 숙성은 결국 화학변화이므로 타이완과 같이 평균 기온이 높은 곳에서는 숙성이 빠르게 진행된다고 믿은 것이다. 타이완의 제조 책임자들은 자국에서 1년 숙성한 위스키는 스코틀랜드에서 3~4년 숙성한 위스키와 같은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들은 숙성기간보다 중요한 것은 오크통의 선택과 관리가 위스키 품질에 절대적이라고 생각했다. 숙성년수 보다는 블랜더들의 원액 선정과 조합능력이 보다 더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이런 혁신의 성과로 2015년 타이완 위스키 카발란(Kavalan)은 세계 최고의 위스키 상을 받게 된다.
최근 한국 위스키 시장에서도 ‘카발란’ 위스키처럼 역발상과 혁신을 통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위스키 브랜드가 있다. 바로 국산 위스키 브랜드 ‘골든블루’다. ‘골든블루’는 국내 최초로 출시된 저도수 위스키로 스카치 위스키와는 다르게 36.5도의 도수를 가지고 있다. 이로 인해 스코틀랜드산 원액을 쓰지만 40도 이하의 제품은 스코틀랜드에서 병입이 불가능하다는 조항 때문에 스카치 위스키라는 딱지를 붙일 수 없었다. 따라서 출시 초기에 스카치 위스키만 잘 팔리는 국내 위스키 시장에서 성공할 수 없을 것이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골든블루’는 스카치 위스키라는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혁신을 앞세웠다. 혁신을 앞세운 결과 ‘골든블루 사피루스’는 국내 단일 제품 판매량 1위 위스키 브랜드에 올라섰으며 한국 위스키 시장은 40도 이하의 저도주 위스키가 중심이 되는 시장으로 변해가고 있다.
그 동안 한국의 위스키 회사들은 1995년 이래 12년 이상 숙성된 위스키의 나이를 경쟁의 무기로 삼았다. 그 결과 20년이 지난 오늘날 위스키는 1990년대 평균 판매량의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융합과 초지능(superintelligence)을 특징으로 하는 4차 산업혁명은 1만년 역사를 자랑하는 주류산업에도 이미 깊숙하게 손을 뻗치고 있다. 새로운 위스키 스타로 성장한 ‘카발란’이나 ‘골든블루’ 의 사례를 교훈으로 삼는다면, 제품의 혁신 만이 한국 위스키 시장을 지키는 방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을까.
yeonjoo7@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