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셔. 장손은 마셔도 되는겨. 할미 앞에선 술도 괜찮은겨.”
외할머니는 그렇게 말씀하시며 막걸리를 권했다. 40여년 전 일이고, 그때 난 중학생이었다. 리(里)로 들어가는 일은 언제나 쉽지 않았다. 읍내에서 마을로 가는 버스는 하루에 두번만 다녔다. 버스를 기다리는 것은 일종의 ‘인내’였다. 정류장에서 두세시간을 기다리기 일쑤였다. 읍내에서 다소 벗어난 곳엔 외할머니 친구분이 사셨다.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기 지치면, 외할머니는 내 손을 잡고 친구 집으로 향했다. 외할머니 친구는 늘 부뚜막으로 안내했다. 그리곤 솥에서 콩나물국을 한가득 퍼 그릇에 담아 내밀었다. 막걸리 주전자와 함께…. 시렁에서 꺼낸 사발에 담은 막걸리 한잔을 놓고 두 분은 버스가 올 시간까지 쉴새없이 소곤거렸다. 손자한테 막걸리 한모금 주면서….
어린 나는 막걸리보다는 콩나물국에 손이 갔다. 하루종일, 아니 며칠이고 끓이고 끓인 콩나물국에 담긴 찬밥 한덩이, 진한 국물과 밥알, 그런데도 오독오독 씹히는 찰진 콩나물…. 그 속에서 우러나오는 그윽하고 고소한 국물맛과 오장육부를 관통하는 포만감, 그게 좋았다. 콩나물국은 그렇게 내 어린시절의 ‘혀’를 지배했다.
지난 주말이었다. 벌초 길에, 인삼랜드 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 어머니는 차 트렁크에서 바리바리 싼 짐을 꺼내신다. 피크닉 돗자리를 땅에 깔더니 거기에 짐을 푼다. 음식이다.
“우리 아들, 밥 못먹고 내려왔지? 엄마가 밥 좀 싸왔지.” “휴게소에서 창피하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어머니의 정(情)이 진하디 진했다.
“우리 장남, 콩나물국 좋아하잖아. 조금 떠먹자.”
음식은 소박했다. 콩나물국, 밥, 그리고 김치. 정말 허겁지겁 먹었다. 콩나물국에 밥 말아 두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근데 와이프가 끓이면, 이런 콩나물국 맛이 안나요. 엄마 콩나물국은 정말 최고에요.”
든든한 배 덕분에 벌초를 쉽게 끝낼 수 있었다.
콩나물국에 한정된 얘기지만, 누구나 음식엔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콩나물국은 내게 ‘어머니’이자, 외할머니와의 추억을 끄집어내주는 ‘향수’다. 누군가에겐 돼지국밥이, 또 누군가에겐 우거지국이 그런 대상일 것이다. 음식은 ‘스토리’이기 때문이다.
한국판 미쉐린 가이드를 표방하는 코릿(KOREAT) 제주페스티벌이 오는 29~30일 이틀간 제주에서 펼쳐진다. 앞서 코릿은 한국의 대표맛집 랭킹50을 선정했다. 랭킹50에는 밍글스, 르꼬숑, 진진, 필동면옥, 다이닝 인 스페이스 등 내로라하는 맛집들이 이름을 올렸다. 국내 외식업계 종사자 및 미식 전문가 100명이 오로지 ‘맛’으로 평가했기에 매우 공정하다.
본 행사인 제주페스티벌에선 유명 셰프들이 푸드트럭을 통해 자신의 스토리가 담긴 음식을 직접 만들어 방문객에 제공한다. 음식을 통한 사람과의 소통이며, 음식을 통한 추억의 소통이다.
우연히 코릿 행사에 동참하게 됐는데, 사실 기대가 된다. 음식 하나 하나에 자기만의 스토리를 가진 방문객과 스토리를 담아 음식을 만드는 셰프의 소통이 어떤 궁합을 낼지 궁금하다.
음식은 사연이자 추억이며, 인연이자 만남이다. 그래서 음식 앞에서 사람들은 언제나 울 준비가 돼 있다. 콩나물국 앞에서 내가 그랬듯이 말이다. 최근 깨달은 음식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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