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인 한 고등학교 교사가 최근 “고민이 많다”고 토로했다. 굳이 이념적 성향으로 나누자면 ‘적극적 진보’라 분류할 만한 지인이다. 이유는 최근 교육계를 휩쓴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화’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란 새 정부 정책에 적극 찬성해왔는데, 정작 사적 영역으로 들어오니 젊은 시절을 바쳤던 임용고시 준비 기간, 그리고 갈수록 치열해지는 교사자리, 열악한 임금 수준 등이 모두 떠오른다는 거다.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화에 선뜻 찬성하지 못하는 본인의 자괴감을 털어놨다.

소위 ‘억대 연봉’이라 불리는 한 제조업체에 근무하는 지인도 있다. 매년 임금협상마다 사회로부터 비난이 쏟아진다. 실제로 그는 잘산다. 직업도 안정적이다. ‘귀족노조’ 비난이 쏟아질 때마다 그의 논리는 명료하다. “하청업체나 열악한 처우의 노동자를 지원해주는 건 적극 찬성한다. 허나, 그 때문에 왜 정당히 살아온 내 삶의 희생을 강요하는가.” 많이 벌었으니 이젠 희생하라는 식의 압박에 오히려 강한 반감이 든다고 항변했다.

두 사례는 모두 ‘부의 분배’와 연관돼 있다. 이상적 사회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가진 자의 자발적 희생과 정당한 부를 향한 사회의 인정. 이 두 가지가 모두 수반되는 게 ‘노블레스 오블리주’인데, 한국사회는 둘다 부족해 보인다. 가진 자의 자발적 희생도 없지만, 그에 못지않게 사회도 부당한 부와 정당한 부를 구별하려 하지 않는다. 대세는 부에 대한 분노다.

새 정부가 내놓은 ‘8ㆍ2 부동산 정책’의 핵심은 다주택자를 투기꾼으로 규정했다는 점이다. 다주택자 중에서 투기 목적으로 구매한 이들도 분명 적지 않다. 하지만 또 상당수는 불가피한 사정도 있다. 사례는 주변에 흔하다. 부모를 모시기 위해, 지방 출장을 위해, 노후를 위해 주택을 구매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이번 대책으로 규제 강화 대상이 됐다. 부동산 대책을 통해 근절해야 할 투기 세력의 일부로 ‘편입’됐다.

정치섹션 국회팀 기자
정치섹션 국회팀 기자

청와대 고위 참모진 14명 중 절반이 다주택자(본지 8월 25일자 3면 참조)라는 고위공직자 재산등록사항 공개 이후, 청와대가 이례적으로 추가 해명을 내놨다. 요지는 다주택을 소유한 게 투기 목적이 아녔다는 점이다. 은퇴 후 거주 목적으로, 매각이 불발된 탓에, 배우자 거주 목적으로, 부모 부양 목적으로 불가피하게 다주택을 소유하고 있다고 상세한 설명을 내놨다.

기시감이 든다. 얼마 전 이웃, 친척이 하소연했던 내용과 비슷하다. 부모님을 위해, 은퇴 이후 생활을 위해, 지방 출장을 대비해 2주택을 구매했다가 이리됐다는 하소연이다. 시장에 내놔도 팔리지 않는다고 또 하소연한다. 청와대 참모진의 이유와 같다. 그래서 기시감이 든다.

다주택자를 투기꾼으로 간주하고 강력 규제하겠다는 정부에서 정작, 정부와 내각 인사들 절반이 다주택자인 현실은 시장에 혼선을 줄 소지가 크다. 본인 스스로에게도 불리한 규제를 도입한다며 높이 평가할지도 모르지만, 역으로 과연 정부가 규제 의지가 있는지 의심을 줄 수 있다. ‘내로남불’이란 프레임을 또다시 자초한 측면도 있다. 주무부처인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을 포함한 고위 내각인사 3명중 1명이, 대통령을 포함한 청와대 고위 인사 14명중 절반이 넘는 8명이 다주택자인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8ㆍ2 부동산대책 직후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내놓은 발언이 코미디처럼 회자된다. 김 장관이 밝힌 “거주할 집이 아니라면 좀 파시라”는 경고성 발언은 청와대 참모진이나 장관급 정부 요직 인사는 제외 대상이었는지, ‘불가피한 2주택자’임을 호소하는 국민의 목소리는 고려 대상이 아녔는지 의구심이 인다.

지금 한국사회에 필요한 건 부당한 부를 규제하는 것만이 아니다. 정당한 부를 인정해주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부를 선악구도로 규정한 채 부자에게 ‘자발적 희생’이 아닌 ‘강요된 희생’을 요구하는 사회는 오히려 갈등이 증폭될 뿐이다. 특히나 이를 추진하는 정부가 위장전입, 자녀 유학비 대납, 다주택자 등에서 자유롭지 않다면 정의사회를 위한 개혁의 정당성과 설득력도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