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제·부동산대책 ‘김동연패싱’ 당청주도에 시장 혼란만 가중 문재인 정부가 경제정책 컨트롤타워로 내세운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입지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세법개정안과 주택시장대책, 원전 및 전기료 정책 등 핵심 경제정책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청와대, 정치권 출신의 일부 실세 장관들이 주도하면서 컨트롤타워가 작동 불능 상황에 빠진 것이다. 세종정부청사 안팎에서는 ‘김동연 패싱(건너뛰기)’으로 부총리의 리더십이 크게 훼손되면서 그가 ‘허수아비’로 전락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더욱이 문재인 정부는 김 부총리를 컨트롤타워로 한팀이 돼 일관된 목소리를 내겠다고 밝혔으나, 세법과 같은 핵심 정책이 오락가락하면서 시장에도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부에서는 ‘참모정치’의 폐습이 새 정부에서도 재현돼 벌써부터 부작용과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고 혹평하고 있다.
세법개정안의 경우 김 부총리는 내정자 시절부터 증세는 신중해야 한다며 명목세율 인상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혔다. 하지만 기재부가 세법개정안을 발표하기 불과 10여일 전인 지난달 20일 경제장관회의에서 민주당 의원이기도 한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이 증세문제를 꺼낸 데 이어 추미애 민주당 대표가 구체적인 ‘부자증세’ 방안을 제시하면서 기류가 급변했다.
결국 기재부가 이달 2일 발표한 세법개정안에는 추 대표가 제시한 대기업ㆍ고소득자 대상의 법인세ㆍ소득세 최고세율을 인상 등 증세안이 포함됐고, 김 부총리는 이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기에 이르렀다. 김 부총리는 개정안을 발표하면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경제에 책임이 있는 사람으로서 시장에 일관되고 예측 가능한 메시지를 주지 못한 점은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세법과 동시에 발표한 주택시장 대책은 ‘김동연 패싱’에 대한 의구심을 증폭시켰다. 김 부총리는 대책 발표 전 주요 장관들이 참석한 가운데 이를 주제로 경제현안 간담회를 열었고, 정책은 민주당 국회의원이기도 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발표했다.
여러 부처가 함께 추진해야 하는 경제정책의 경우 부총리가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해 확정한 다음, 관계부처 장관을 배석시킨 상태에서 발표하는 게 관례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국토부 장관이 기재부 차관과 금융위 부위원장을 배석시키고 발표했다.
여기에다 참여정부 시절 부동산 정책을 실무적으로 담당했던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이 공개적으로 나서 국민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그는 부동산 대책에 대한 논란이 거세지자 기자회견까지 열어“강남권 등 일부 지역의 부동산 가격 앙등은 지극히 비정상적”이라며 “이 정부가 부동산 가격 문제에 대해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며 부동산과의 전쟁을 재확인했다. 사회부문 참모가 경제 핵심인 부동산부문을 쥐략펴락하면서 경제정책 사령탑은 설자리를 잃고 말았다.
세종청사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이런 현상에 대한 위기의식과 자괴감이 팽배한 가운데 푸념의 목소리도 터져나오고 있다. 한 경제부처 공무원은 “원전 대책 등에서 보면 장차관은 얼굴 마담(껍데기)이고 특정사안에 대한 논리적 근거(로직)와 해결책(솔루션)이 위에서 툭 떨어지는 느낌”이라며 “국정농단에서 보듯 부처의 고급인력들이 들러리 신세로 전락하게 되면 자괴감에 빠져들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근 퇴임한 한 경제부처 고위관료는 “이번 정부가 출범한 후 경제현안 간담회가 자주 열리는데 김 부총리가 한마디 하면 각 부처 장관들이 두세마디 더 한다고 하더라”면서 “이런 현상은 관료생활을 하면서 처음 보는 풍경”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김 부총리는 최근 입술이 부르트고 결막염이 심각해지는 등 건강까지 악화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육체적인 과로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압박 때문이 아니겠느냐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오랜 관료생활로 축적한 경험과 전문성, 특유의 근면성실함과 두터운 신뢰감으로 시장의 기대를 받고 있는 김 부총리를 경제 컨트롤타워로 제대로 세우는 것이 문재인 정부가 성공하는 지름길이라는 지적이다.
이해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