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유재훈 기자] 시행 한달을 맞은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정신건강복지법)에 대한 일선 현장의 불만 이어지고 있다. 예전보다 행정절차는 많아졌는데 의료인력이 턱없이 부족해 어쩔 수 없이 환자를 꼼꼼하게 돌볼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9일 대한신경정신건강의학회 등 의료계에 따르면 정부가 정신질환자의 강제입원 요건을 강화한 정신건강복지법이 시행된 지 이후 정착보다는 편법 운영 사례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 법은 치료가 필요한 정신질환과 자ㆍ타해 위험이 모두 인정돼야 강제입원이 가능하다. 또, 강제입원을 했더라도 2주 이상 입원하려면 다른 의료기관 소속 전문의 1명의 2차 추가 진단을 받아야 한다. 또 장기입원 절차도 엄격해져 ‘입원연장심사’를 기존 6개월에서 3개월마다 시행토록 했으며 이 때 역시 2차 진단이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2차 진단을 할 수 있는 의사가 부족한 상황에서 법이 무리하게 시행돼 ‘환자 인권 보호’라는 법 취지가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학회에 따르면 연간 정신질환으로 입원 상담을 받는 건수는 약 4만6000건에 달하는데 국공립병원에 소속된 전문의 300~400명만으로는 2차 진단 건수를 모두 소화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보건복지부는 신경정신건강의학회 등에서 정신건강복지법에 대한 문제점을 지속해서 제기하자 당초 계획을 바꿔 2차 진단을 할 전문의가 부족할 경우 오는 12월 31일까지 한시적으로 국공립병원 등 다른 의료기관이 아닌 같은 병원 소속 전문의로 대체할 수 있도록 변경하기도 했다. 신경정신의학회 정신보건법대책 태스크포스팀(TFT) 위원장을 맡은 권준수 서울대병원 교수는 “부득이하게 2차 진단을 받지 못한 중증 정신질환자도 강제로 병원에서 나가야 할 상황”이라며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법만 우선으로 시행하면 당연히일선 진료현장에 혼란이 올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권 교수는 “이 법의 근본 취지는 ‘환자 인권 보호’다. 제대로 된 진단도 받지 못하고, 행정절차에 의해 강제로 병원에서 나가게 된다면 환자와 가족에게 더 큰 피해가 갈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치료와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중증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이 행정 절차상의 이유로 강제 퇴원하면 살인, 방화와 같은 사회적 사건·사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임명호 단국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예를 들어 치료를 잘 받는 조현병 환자는 폭력범죄가 일반인과 비교했을 때 높지 않지만, 방치된 조현병 환자는 폭력범죄율이 일반인보다 2~3배 이상 높다는 연구결과가 외국에서 나온 적 있다”고 설명했다.

임 교수는 “무조건 조현병 환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의심해선 안 되지만, 그렇다고 의료 서비스가 중단돼서도 안 된다”며 “새롭게 적용된 정신건강복지법으로 인해 정신과 환자가 입원 치료를 받지 않아도 되는 권리가 커졌지만, 오히려 중증환자가 치료받을 권리와 기회를 박탈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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