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서병기 기자]KBS 정통사극 ‘정도전’은 시청자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하지만 기획과정과 캐스팅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정도전’을 주인공으로 한 사극을 기획한 사람은 KBS 강병택 PD다.1997년 입사한 강 PD는 ‘용의 눈물’ ‘태조왕건‘ ‘장희빈’ ‘해신‘ 등에 조연출과 연출로 참가한 사극전문 PD다. 그는 4년전부터 ‘정도전‘을 구상했다. 하지만 시놉시스가 나오고도 캐스팅은 쉽지 않았다.
강 PD는 “초반엔 많이 까였다”고 털어놨다. 그래서 과거 자신과 호흡을 맞춘 배우들을 중심으로 섭외에 들어갔다. 이인임 역을 맡길 박영규에게는 긴가 민가 하는 생각으로 시놉시스를 보냈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 박영규가 “만나자”며 강 PD의 집으로 찾아왔다. 강 PD는 ”형님 (출연료가) 반값입니다“라고 하자 박영규는 ”그래도 해야지“라고 했다.
그의 캐스팅 과정에는 박영규를 코믹 배우로만 알았던 정현민 작가의 반대가 있었다. 하지만 강 PD가 정 작가에게 “그분 정극도 잘한다”면서 박영규가 상단 책임자로 나왔던 사극 ‘해신‘의 영상을 보시라고 했더니 “맡겨도 충분하겠다”고 연락이 왔다고 한다.
그리고는 강 PD는 이성계 역을 맡길 유동근을 만났다. 섭외 가능성을 10% 정도로 생각했다고 했다.
“유동근 씨에게 우선 ‘주인공이 아니다‘, ‘함경도 사투리도 써야 한다’고 말해놓고 해보자고 했다. 이성계에게 사투리를 쓰게 하는 건 작가님의 아이디어다. 변방의 인물, 아웃사이더의 느낌을 주기 위해서였다. 나는 신경이 쓰였다. 서울말을 해도 전달이 잘 안되는데, 강한 사투리라니. 그래서 이성계가 왕이 되면 사투리를 쓰지 말자고 했다. 하지만 배우가 열의를 보였다. 반응도 좋았다. 유동근 씨는 매주 대본연습시간에 3시간씩 북한 출신 선생님에게 사투리를 배웠다. 대사도 외우고 사투리도 익혀야 하는 2중고였다. 유동근 씨가 사투리를 소화하지 못했더라면 힘들어졌을텐데, 다행히 잘 해내 좋은 반응을 얻었다.”
강병택 PD는 정도전 역을 맡을 조재현에게는 막판에 시놉시스를 보냈다. MBC 주말극 ‘스캔들’을 하고 있었고, 연극, 대학강의로 스케줄을 빼기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조재현은 시놉을 안보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100페이지가 넘는 시놉을 한숨에 다읽고 감정을 주체 못해 맥주까지 먹고 잤다고 했다. 그리고는 바로 “하겠다”는 의사를 보내왔다. 출연료를 깍는 데에도 선뜻 동의해주었다고 한다.
최영 역으로는 임동진이 정해져있었다. 의상도 맞춘 상태였는데, 촬영 직전에 건강때문에 “못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임동진은 “나하고 의상 사이즈가 맞는 사람은 서인석이다”고 추천(?)했다.
강병택 PD는 “서인석 씨에게 기대감 없이 전화했다. 얼마전 ‘대왕의 꿈’도 했고 대타인데 하려고 할까 라고 생각했으나 의외로 관심을 보여줘 감사하다”고 전했다.
강 PD는 가장 마지막에 캐스팅한 인물은 정몽주 역의 임호였다고 한다.
“공민왕과 정몽주 두 자리가 남아있었다. 공민왕은 특별출연이지만 대사가 많아 쉽게 캐스팅하기 힘들었지만 김명수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정몽주는 하려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임호측에서 시켜달라는 연락이 왔다. 나는 왕 역할만 주로 해온 임호에 큰 관심이 없었지만 만나보니 의욕으로 넘쳐있었다. 초반에는 정몽주의 비중이 적을 거라고 했다. 임호가 이렇게 ‘포텐‘을 터뜨릴지 몰랐다. 촬영장에서 정몽주가 들어가는 신은 기대하는 맛이 생겼다.”
강병택 PD는 안재모 캐스팅에도 부담이 있었다고 전했다. ‘용의 눈물’에서도 유동근과 안재모가 부자 사이로 나왔는데, ‘정도전‘에서도 이들이 부자관계로 나오는 데 대한 부담이었다.
“젊은 나이에 안재모 정도의 안정된 톤으로 사극을 연기할만한 인물이 별로 없었다. 유동근 씨도 좋다고 했다. 본인도 의지를 보였다. ‘용의 눈물’을 할때 세종대왕의 어린 역을 맡은 안재모가 고등학생이었는데, 이제 어엿한 성인으로 자라 좋은 연기를 펼치고 있다.”
강병택 PD는 “‘정도전‘은 드라마적으로 그리기 힘든 인물이다. 정도전은 뭔가 하려고 하면 항상 중심에서 벗어나 있다. 정도전은 조정과 떨어져 귀양도 가고, 위화도 회군할 때도 그 곳에 없었다. 정몽주가 죽을 때도 그 중심에 없었다. 이성계나 정몽주보다 분량이 적을 때도 있다”면서 “작가가 고생하기 딱 좋은 소재다. 몇몇 작가들이 안하려고 했다. 정 작가가 덥썩 물어 고생을 많이 하고 있지만, 너무 잘 써줘 고맙다”고 말했다.
강병택 PD는 “‘정도전’에 출연하는 배우와 작가, 스태프, 그리고 정도전을 사랑해준 시청자들에게 거듭 감사한다”는 말을 전했다.
서병기 선임기자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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