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한지숙 기자] 20세기를 대표하는 입체파 화가 파블로 피카소의 초기작 ‘푸른 방’ 밑에 또 초상화가 그려진 사실이 적외선 영상을 통해 밝혀지면서 숨은 그림 속 주인공이 누구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7일(현지시간) 주요 외신에 따르면 과학자들이 피카소가 19세 때인 1901년에 그린 ‘푸른 방’을 적외선 영상 장치에 비춘 결과, ‘푸른 방’에 있는 전라 여성의 밑으로 남성 상반신 초상화가 실체를 드러냈다.

턱수염이 가득한 이 남성은 자켓에 나비 넥타이 차림이며, 손으로 턱을 괴고 생각에 잠긴 듯한 자세 인데, 세 손가락에 반지를 끼고 있다.

<푸른 방>. 1901년작
<푸른 방>. 1901년작

그렇다면 100년여 동안 숨어있던 초상화의 주인은 누구일까.

스페인 태생 피카소가 이 그림을 완성할 당시는 프랑스 파리에 입성한 지 얼마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1900년 파리로 옮겼을 때 그는 프랑스어도 할 줄 몰랐고 다락방에서 추위와 가난을 견뎌야 했다. 당시 그린 그림은 청색이 주조를 이뤄 고학생의 우울함과 고독함이 드러난다. 이 때 완성된 작품들을 ‘청색시대’로 부르며 후기작과 구분짓는다.

캔버스를 살 돈이 없던 10대 피카소는 남성의 초상화를 그린 뒤 그 위에 덧칠을 해 ‘푸른 방’을 완성시킨 것으로 보인다.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미술관 필립스컬렉션 큐레이터 수전 프랭크는 AP에 “피카소는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새로운 캔버스를 살 수 없었다. 캔버스는 너무 비쌌기 때문에 때로는 판지 위에 작업했다”고 설명했다.

1927년부터 이 작품을 소장 중인 필립스컬렉션 측은 목욕을 하는 여성의 모습을 그린 붓질이 분명치 않아 표면 밑에 다른 무언가가 있을 가능성을 의심을 해 왔다. 1954년 작품 관리인이 쓴 서한에도 방향이 다른 붓질에 대해 언급돼 있다. 1990년에 X-선을 통해 표면 아래 다른 그림의 존재가 인정됐지만 그것이 초상화인지는 명확치 않았다. 적외선 영상 기술 발달로 2008년에야 턱수염을 기른 남성이 손으로 턱을 괴고 있는 초상화가 비로소 공개됐다.

적외선 영상을 비춘 뒤 드러난 밑그림(오른쪽).
적외선 영상을 비춘 뒤 드러난 밑그림(오른쪽).

초상화 주인이 피카소 자신일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가장 유력한 가능성으로 파리의 화상(畫商) 앙브루아즈 볼라르(1866~1939)일 것으로 조심스럽게 추정된다. 볼라르는 세잔, 피카소, 마티스 등의 작품을 주로 다뤘던 미술 상으로 그를 그린 수많은 초상화가 남아있다. 하지만 볼라르임을 증명하는 어떤 문서나 단서가 나온 게 아니어서 학계는 연구를 계속할 예정이다.

필립스컬렉션은 지난 5년간 코넬대학, 델라웨어 빈터투어 미술관 등과 공동으로 미술작품의 표면을 밝혀 내는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클리브랜드 미술관에 있는 피카소의 또 다른 작품 ‘인생(La vie)’,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의 ‘다림질하는 여인’에서도 또 다른 그림의 존재가 밝혀졌다.

‘푸른 방’은 내년 초까지 한국에서 전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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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ha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