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서병기 기자]MBC 수목극 ‘개과천선’이 조기종영이건 계획된 일정이건 18회에서 16회로 줄어든 건 사실이다. 월드컵 출정식 중계와 6.4 지방선거 개표 방송으로 2회가 결방되면서 생긴 불가피한 선택이었겠지만 시청자 입장에서는 아쉽기만 하다.

‘개과천선’은 근래에 보기드문 명작이자 수작이다. 이 드라마의 약점은 넋놓고 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내용을 이해하려면 머리가 좀 아프다. 하지만 우리가 전문직 드라마라고 해도, ‘개과천선‘ 정도의 미니시리즈는 적어도 국내에서는 본 적이 없다. 장르 드라마의 수준을 한단계 올려놓았다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12일 방송된 12회에서 7개 은행의 중소기업 환율 사건때문에 검찰에서 검사가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하고, 법원에서 영장을 심사하는데, 여기서 검사측 입장과 변호사 입장, 판사측 입장이 각각 드러나고, 이 사건의 민사적 의미와 형사적 의미도 나온다. 사건을 이렇게 자세하게 다루기가 쉽지 않다. 검찰총장은 담당검사의 압수수색영장 청구를 막아 극성을 강화시킨다.

김석주(김명민)가 많은 서민들을 피해자로 만든 유림그룹 CP발행의 책임을 지고 구속됐던 유림그룹 오너가 손녀이자 자신의 약혼녀인 유정선(채정안)을 구해내는 장면도 단순하지 않다. 이런 와중에도 유림그룹 형제들은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어 대만으로 유림증권을 매각해 돈을 빼돌리려고 하는 점을 포착하는데, 김석주가 이 과정을 추적하는 것도 그럴듯하다.

‘개과천선‘은 기억상실 전의 김석주와 기억상실 후의 김석주의 단순한 선악대비 드라마가 아니다. 오로지 돈만 바라보고 무조건 승소만을 목적으로 삶았던 이전의 자신을 반성하고 서민을 위해, 정의를 위해 뛰어야 겠다고 변신하는 김석주가 아니라는 말이다.

드라마 제목은 지난날의 과를 바로잡아 착하게 태어난다는 의미를 담고 있지만, 새로운 ‘정의 변호사‘ 또는 ‘변호사 영웅’을 지향하는 게 아니다. 소송에 걸린 사안들을 복잡하게 바라본다고 해서 대단한 드라마라고 하는 것도 아니다.

‘개과천선‘은 인간들의 갈등과 분쟁이 가장 첨예하게 드러나는 최전선에서 일하는 변호사의 일을 통해 인간의 신의와 가치관, 인간의 한계와 정체성, 이런 것들을 묻는 드라마다. 같은 직업인인 김석주와 그의 아버지 사이의 관계에서도 이런 부분은 계속 드러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관계와 갈등과 소통의 연속이다. 그래서 굳이 직업이 변호사가 아니어도 이 드라마가 흥미진진해진다. 드라마 ‘밀회’가 20살 차이 나는 남녀관계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 드라마가 됐듯이, ‘개과천선‘도 차영우 로펌과 그속의 변호사를 통해 인간에 대해 탐구하는 드라마가 되는 것 같다.

물론 덤으로 금융법, 상법, 법률에 대한 지식도 제공한다. 이제 동양그룹의 회사채 투자 피해자들이 동양증권 등을 상대로 ‘증권 관련 집단소송’을 내는 건 익숙해진 이야기다.

기억상실 전과 후라는 전혀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는 김석주 변호사는 젊은 스타 배우가 연기하다가는 연기력 논란이 생길 수 있을 정도로 어려운 배역이다. 하지만 김명민은 거의 미친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장관 인사권 정도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차영우는 냉정한 자세로 대형 로펌을 운영하고 있다. 진지한 이미지의 김상중의 차분한 연기는 차영우와 썩 잘 어울린다.

앞으로 차영우 펌을 그만두고 나온 에이스 변호사 김석주와, 판사로 일하다 자신의 자리로 들어온 전지원 변호사(진이한)와의 부딪힘이 기대가 된다. 또한 김석주는 지금까지 소속사 대표인 차영우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는데, 앞으로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개과천선’의 종반부를 기대하는 요인이다.

서병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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