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보 유세에 나선 수어통역사들 [헤럴드경제=김유진 기자] 대선 후보자 유세 현장은 온갖 소음으로 가득찬다. 후보자의 목소리가 확성기를 통해 울려퍼지면 유세단과 시민들도 이에 질세라 힘찬 함성으로 호응한다.

그런 유세 현장에서 소리 없는 전쟁을 치르는 이들이 있다. 청각장애인을 위해 후보자 발언을 실시간으로 통역해주는 ‘수어통역사’들이다.

보통 ‘수화’로 알고 있지만, 수화를 하나의 언어로 인정하자는 취지에서 2016년 8월 시행된 한국수화언어법 시행령에 따라 수화 대신 ‘수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현재 일부 정당들은 장애인 유권자의 알 권리를 위해 대선 후보자의 유세현장에 수어통역사를 동행하게 하고 있다. 강현순(부산수화통역센터 총무팀장)씨와 이유리(프리랜서 수어통역사)씨는 19대 대선 수어통역사로 활동하고 있다.

강 씨는 지난 18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가 찾은 부산 서면 시장 유세현장에서 수어통역을 담당했다. 수어통역을 시작한 지 20년이 된 강 씨는 전문 수어통역사 8년차인 베테랑이다.

이 씨는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서울ㆍ경기지역 유세의 수어통역을 맡았다. 그는 지난 18대 대선 때도 유세 현장에서 통역을 담당한 경력이 있다.

두 사람은 청각장애를 가진 유권자를 위해 수어통역사를 동행하게 한 취지는 좋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아쉬움이 크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수화통역이 현장의 청각장애인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할 때 아쉬움을 느낀다고 입을 모았다.

강 씨는 인터넷을 통한 실시간 현장중계 방송이 수어통역사를 촬영하지 않는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방송이나 주심 채널에선 대선 후보를 포착하는 데만 집중해요. 수어통역사는 아예 찍어가지 않아요. 그래서 후보자가 유세하는 30~40분 동안 옆에선 열심히 수화통역을 해도 페이스북 영상이나 라이브영상엔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지난 18일 부산 서면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강현순 수어통역사는 이날 유세현장 스크린에 잡히지 않았다. [사진=김유진 기자/kacew@heraldcorp.com]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지난 18일 부산 서면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강현순 수어통역사는 이날 유세현장 스크린에 잡히지 않았다. [사진=김유진 기자/kacew@heraldcorp.com]

이 씨 역시 강 씨와 비슷한 점을 지적했다. 그는 “통역사가 무대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게 돼서 아예 현장 스크린에 모습이 잡히지 않는 경우도 많아요. 외국은 TV뒤 스크린의 절반 면적은 후보자, 나머지 절반은 통역사 모습이 나갈 수 있게 해놨어요. 그러면 청각장애인 분들이 무대 뒤 어디에 있든 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현장에 사람이 많으면 뒤쪽이나 옆쪽에 계신 장애인들이 제대로 볼 수 없다는 불편함이 있어요”라며 “현장 스크린 중계가 청각장애인을 배려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제가 후보자와 너무 멀리 떨어져있으면 후보자를 보다 통역을 놓치거든요. 제일 좋은 건 후보자 바로 옆이나 뒤에 통역사가 서서 통역하는 건데 사정상 힘든 경우가 많다”고도 했다.

이유리 수어통역사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유세현장에서 후보자와 떨어져 수어로 통역하고 있다. [사진=김유진 기자/kacew@heraldcorp.com]
이유리 수어통역사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유세현장에서 후보자와 떨어져 수어로 통역하고 있다. [사진=김유진 기자/kacew@heraldcorp.com]

최근 화제가 된 TV토론 수어통역의 문제점에 대한 의견도 공통적으로 나왔다.

강 씨는 “TV합동연설 같은 경우는 후보자가 3~4명이어서 통역사 한 명이 표현하기 힘들다. 자세를 바꿔가며 누가 말하고 있는지 표현을 하기는 하지만 보는 입장에선 혼란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 씨도 “청인(청각장애인에 상대해 청력의 소실이 거의 없는 사람)들은 목소리를 들으면 자연스럽게 구분이 되지만 청각장애인들은 그렇지 않다. 통역사 한 명이 아무리 위치를 바꿔가면서 통역을 해도 전달에 한계가 있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청각장애 유권자를 향한 한국사회의 인식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는 데 생각을 같이 했다.

강 씨는 “이번에 대선투표에선 처음으로 투표소 일부에 수어통역사가 배치된다. 중앙선관위에서 작년 총선 때부터 수어통역사 배치를 시작했다”며 “아직 100%도 아니고 많이 늦었다. 그렇지만 이제라도 인식이 조금씩 바뀌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씨도 “사실 지난 대선 때도 저희들은 수어통역을 하고 있었지만 최근에야 저희의 존재를 인식하는 분들이 생겼다”며 “광화문 촛불집회에서 수어를 하신 통역사 분들 때문에 시민들도 점점 수어통역에 대한 인식이 생긴 게 아닐까”라고 말했다. 청각장애 유권자를 위한 조용한 변화의 길에 그들이 서 있다.


th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