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스타킹ㆍ브래지어 시장 혁신가 평가 -‘고탄력 스타킹’, ‘볼륨업 브라’ 등 탄생시켜

[헤럴드경제=장연주 기자] ‘한국 속옷산업의 대부’ 남상수(南相水) ㈜남영비비안 명예회장이 9일 오전 0시22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

남영비비안은 ‘비비안’으로 유명한 여성 속옷 전문기업으로, 창업주인 남상수 명예회장은 1925년 경북 영양에서 태어났다. 남 명예회장은 우리나라에 속옷 산업이 전무했던 1957년 여성 속옷 전문기업인 남영비비안을 설립해 여성 속옷 사업을 시작, 국내 대표적인 여성 속옷 전문 기업으로 키워냈다.

고인은 1950년대 여성들에게 서양식 의복이 점차 익숙해지면서 좀 더 예쁜 맵시를 위해서는 여성 속옷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일찌감치 국내 여성 속옷 시장을 개척했다. 고쟁이나 광목으로 된 속옷을 착용하던 당시 여성들에게 브래지어, 거들 등 현재와 같은 화운데이션 란제리를 소개함으로써 여성들의 의생활에 변화를 가져왔다. 대표 브랜드인 ‘비비안’을 비롯해 유통별, 아이템별로 다양한 브랜드를 육성하며 국내 여성 속옷 업계를 이끌어왔다.

대표적으로 1950년대부터 한국 스타킹 시장에 변화를 불러왔다. 1958년 우리나라 최초의 스타킹으로 알려진 ‘무궁화’ 스타킹을 생산했다. 당시 대부분의 여성들은 뻣뻣한 목양말을 주로 신었고, 스타킹이 소개되긴 했지만 외국산 제품이 암시장을 통해 아주 소량 들어오고 있었다.

더욱이 당시 스타킹은 스타킹용 원단을 짜서 양말 모양으로 재단한 뒤 다시 봉제를 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다리 뒤쪽에는 원단을 꿰맨 봉제선이 그대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색상은 흔히 살색이라고 부르는 살구색 한 종류였고, 형태도 지금과 같은 팬티스타킹이 아닌 허벅지까지 오는 밴드 스타킹이 전부였다. 스타킹용 원사는 외국에서 수입해 들여왔고, 당시에는 포장기술조차 발달하지 않은 상황이라 상표를 인쇄한 포장지도 일본에서 주문해 가지고 와야만 했다.

남 명예회장은 ‘무궁화 스타킹’을 출시한데 이어 한국 스타킹 역사에 최초로 남을 제품들을 잇따라 냈다.

1962년 봉제선이 없는 ‘심레스(Seamless) 스타킹’을 출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재봉선이 감쪽같이 사라진 스타킹은 밀려드는 주문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팔려나갔다. 이어 1983년에는 한국 최초의 ‘고탄력 스타킹’을 출시해 스타킹의 소재 혁신을 불러왔다. 1980년대 초반까지 국내에서 생산된 스타킹의 주된 소재는 나일론사였다. 나일론사는 신축성이 부족해 스타킹이 다리에 제대로 달라붙지 않아 불편한 점이 많았다. 이런 점을 보완한 ‘고탄력 스타킹’은 스판덱스사를 소재로 해 신축성을 획기적으로 강화한 혁신적인 제품이었다. 고탄력 스타킹은 기존 스타킹보다 두배 이상 가격이 비싸 처음에는 큰 인기를 얻지 못했지만, 편리함을 느낀 여성들의 입소문을 타고 히트제품으로 거듭났다. 고탄력 스타킹은 요즘에는 고유명사로 불릴 정도로 대중적인 상품이 됐다.

고인은 스타킹에 이어 1990년대에는 브래지어 시장에 혁신을 일으킨 주역이다.

1995년 남영비비안은 국내 최초로 볼륨업 패드를 사용한 ‘볼륨업 브라’를 출시했다. 볼륨업 브라는 볼륨감 있는 몸매가 아름답다는 새로운 인식과 함께 여성들에게 큰 인기를 끌면서, 출시 10개월 만에 100만개가 판매됐다.

이어 겉으로 자국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 속옷인 ‘노브라’를 1998년 출시했다. 당시는 몸에 밀착하는 쫄티와 시스루룩이 유행하면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속옷이 필요해진 때였다. 노브라는 출시 두달 만에 10만개가 판매됐고, 이를 계기로 심플한 디자인의 몰드브래지어가 전체 브래지어 시장 판매량의 20~30%를 차지하게 됐다.

남 명예회장은 한국 무역 산업을 일으킨 무역 1세대이기도 하다. 고인은 1954년 무역회사인 남영산업㈜을 설립하고, 미국과 유럽, 일본 등지에 속옷과 스타킹을 수출했다. 일본기업이 장악하고 있던 미국시장을 공략해 큰 성공을 거뒀고, 1980년대에는 미국 시장에 연간 800만장의 브래지어를 수출했다. 이는 당시 미국 여성 10명 중 1명이 남영산업이 수출한 브래지어를 입은 꼴이다.

1970년대에는 홍콩 스타킹시장의 30%를 점유했다. 남 명예회장은 국내 기업들이 중국 시장에 주목하기 전인 1992년에 이미 중국에 속옷 생산 법인을 설립했다. 이어 1989년에는 인도네시아에도 현지 법인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두 법인은 미국과 유럽, 일본 등지에 수출하는 여성 속옷과 스타킹을 생산한다.

남 명예회장은 한국 수출 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수출의 날 산업 포장(1973년)과 상공의 날 대통령표창(1975년), 동탑(1980년), 은탑(1985년), 금탑(1992년) 산업 훈장을 수훈했다. 1973년부터 24년간 한국 무역협회 부회장직을 맡았으며, 한일 경제협의회 부회장, 대한상공회의소 상임위원을 역임했다.

고인은 평소 기업의 사회적책임을 강조했다. 성장하는 청소년들을 위한 교육이 향후 국가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확고한 신념 아래 회사 창립 초기인 1976년에 재단법인 ‘연암(然菴)장학회’를 설립했다. 자신의 호인 ‘연암’을 따서 이름 지어진 재단법인 연암장학회는 국가와 사회 발전에 공헌할 수 있는 우수한 학생과 경제적인 이유로 학업수행이 어려운 학생을 위한 장학 사업과 교육기관을 지원해 왔다. 재단법인 연암장학회는 매년 2회씩 정기적으로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6000여 명의 학생에게 약 48억 원의 장학금을 수여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영순 여사와 남석우 남영비비안 회장 등이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이며 발인은 2월11일, 장지는 경기도 화성 선산이다.

yeonjoo7@heraldcorp.com

<남상수 명예회장 약력>

▶ 1925년 경북도 영양군 출생

▶ 1954년 남영산업(주) 설립

▶ 1957년 (주)남영비비안 설립

▶ 1964년 건국대 정경학부 상과 졸업

▶ 1966년 일본 국립고베(神戶)대학 대학원 경영학과 수료

▶ 1976년 재단법인 연암(然菴)장학회 설립

▶ 1989년 인도네시아 P.T. 남남패션 설립

▶ 1992년 중국 청도남남유한공사 설립

▶ 1963~73년 한국무역협회 상임이사

▶ 1970년~73년 서울상공회의소 상임이사

▶ 1973~97년 한국무역협회 부회장, 대한상공회의소 상임위원

▶ 1991년~97년 한일경제협의회 부회장

▶ 1991년~2011년 산학협동재단 이사

▶ 1973년 11월 수출의날 산업포장 수훈

▶ 1975년 3월 상공의날 대통령 표창 수상

▶ 1980년 3월 상공의날 동탑산업훈장 수훈

▶ 1985년 3월 상공의날 은탑산업훈장 수훈

▶ 1992년 3월 상공의날 금탑산업훈장 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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