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음악도 듣고 힙합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분위기가 너무 좋아 다시 오게 됐어요.” “힙합 음악을 워낙 좋아해요. 오늘 라인업 중에서는 그레이와 로꼬, AOMG를 좋아해요” “이런 자유로운 분위기가 좋아요. 따라 부르기도 하고, 가볍게 몸을 움직이기도 하고, 몇달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풀리는 느낌이에요. 공연 하나를 보고 나면 뭔가 충전된 기분이에요.”

지난 17일 힙합 콘서트 ‘원 힙합 Vol.3 블라썸’이 열린 홍대 예스24무브홀에서 만난 관객은 대부분이 20대 여성들이었다. 둘셋씩 짝해 공연장을 찾은 이들은 무대를 향해 촘촘이 줄을 이뤄 몇 시간이고 흐트러짐 없이 음악을 즐겼다. 옆 사람과 몸이 닿을 정도여서 최소한의 움직임만이 허용된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함께 리듬을 타며 흥겨워했다. 2층 발코니에서 바라본 이들의 모습은 물결의 덩어리였다. 이들은 좋아하는 가수에 환호하고 따라 부르며 몸을 흔들지만 튀거나 거칠지 않았다. 이날의 드레스 코드는 꽃무늬 프린트. 스커트나 모자, 스카프 등 다양한 꽃무늬들이 물결위로 잔잔하게 피어났다. 관객들은 놀랍게도 멜로디도 없는 랩을 ‘떼창’처럼 불러냈다. 흔히 노래는 멜로디를 따라 가사를 붙여 부르는게 상식이지만 이들은 멜로디 없는 랩을 한 목소리로 읊어댔다. 밤 9시30분부터 새벽4시까지 올나잇으로 진행된 이날 무대에는 힙합계의 스타 랩퍼들이 줄줄이 올랐다. 빈지노, 산이, 그레이, 로꼬, 크루셜스타 등 꽃미남 래퍼들이 총 출동, 힙합 마니아들을 반겼다. 현란한 조명과 소음에 가까운 사운드, 마구 흔들어대야 신난다는 듯한 클럽 분위기와는 딴판인 또 다른 세상이었다.

▶지금 음악의 중심은 힙합=20대 여성과 힙합의 조합은 새롭다. 종래 랩은 사회에 대한 저항, 불만의 표시였고 남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져온 게 사실이다. 이런 흐름이 여성 주도로 표나게 바뀐 건 지난해부터다. CJ E&M이 진행한 2013년 9월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원힙합 페스티벌 사전예약율을 보면 남성이 30.7%, 여성이 69.3%다. 이 페스티벌에는 9000여명의 관객이 몰렸다. 이런 성공에 힘입어 그해 12월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비스타홀에서 또 한번 원힙합 파티가 열렸으며 4000여명이 참여했다. 이 때 여성의 사전예약비율은 71.9%까지 뛰었다. 올해 원힙합 블러썸 공연에선 여성의 사전예약률이 82.3%까지 상승하며 또 한번 기록을 경신했다. 믿고 보는 감성 어필 공연으로 여성들이 힙합에 신뢰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올해 원힙합 공연은 두번의 성공에 힘입어 아티스트와 관객이 가까이 만날 수 있는 소극장 공연으로 바꾸고 공연 횟수를 늘리는 방식을 택했다. 음악시장에서 힙합의 성장은 최근 음원차트에서도 드러난다. 톱100 중에 30곡 정도가 힙합으로 이는 전에 없던 현상이다. 문화의 가장 핫한 중심에 힙합과 20대 여성들이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왜 20대 여성들이 힙합에 빠지나= 지난해까지만 해도 멜로디 없는 랩이 음원차트에 오르는 일은 없었다. 이는 무엇보다 가요계에서 불고 있는 타장르와의 콜라보레이션과 피처링이 일반화되는 추세와 관련이 있다, 상호 시너지를 얻을 수 있는 쟝르간, 신인과 기성가수와의 조합 등 다양한 형태의 콜라보는 힙합과 랩이 가요계에 자연스럽게 편입, 세를 확장해 나가는 토양을 제공했다. 또 화제를 확대재생산해내는 ’컨트롤 비트 디스전‘’쇼미더머니‘등 음악방송프로그램의 영향도 크다.

여기에 빈지노, 박재범, 쌈디, 버벌진트, 산이 등 뛰어난 음악성과 꽃미남의 외모를 갖춘 힙합 뮤지션들이 등장하자 여성 팬층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에 맞춰 힙합은 달달해져갔다. 힙합뮤지션들이 자신들의 이름을 부르는 여성팬들을 위해 꽃미모에 어울리는 사랑을 노래하기 시작한 것이다. 기존의 사회비판적이고 남성적 느낌 대신 청춘, 사랑, 이별 등을 노래하는 발라드형 가사는 여성들의 힙합에 대한 심리적 거부감을 무너뜨렸다. 가사 뿐만 아니라 서정적 멜로디까지 더해지면서 여성들은 적극적인 힙합 소비층으로 부상했다.

힙합은 다른 장르와 달리 패션과 함께 가는 문화라는 점도 여성들에게는 매력적이다. 이는 지난해부터 유행하고 있는 스냅백의 인기로 입증된다. 스냅백은 본래 힙합 뮤지션들이 즐겨쓰는 모자로 출발해 흑인들이 즐겨하는 볼드 액세서리, 하이탑 운동화 등 패션 전반으로 확장되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심플하고 실용적이면서 액센트를 준 개성있는 힙합 패션과 튀는 음악은 앞서가는 감각적인 여성들에게는 차별화를 내세울 수 있는 멋진 표현의 도구인 것이다. 랩은 자신의 생각과 철학, 메시지, 잡담까지 담아낸다는 점에서 개인의 의사표현을 중시하는 20대 젊은층의 문화와도 본질적으로 잘 어울린다. 수다같은 중얼거림 속에 여성들은 답답한 속엣말을 털어놓고 함께 공유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여성에게 힙합은 노래가 아니라 패션이자 문화다.

이윤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