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의 지방자치제
통일 전까지 60여개 도시 결연…물자 제공·주민 접촉 場으로
공식언어만 4개 민족갈등 심한 스페인…지방자치는 국가 필수 생존 전략…‘하나의 스페인’ 단일화 대신 공존 선택
우리보다 앞서 지방자치제를 도입한 유럽의 ‘풀뿌리 민주주의’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발전된 체계를 자랑한다. 물론 처음부터 순탄한 길은 아니었다. 다양한 역사와 문화를 가진 민족을 하나의 국가로 통합하는 과정에서 피나는 시행착오가 뒤따랐다. 하지만 자유로운 주민자치 보장을 통해 통일의 기반을 마련한 독일처럼 지방자치제를 위한 노력이 결실을 맺은 사례들은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독일 지방자치…통일 밑거름=독일의 지방자치제는 역사가 깊다. 1808년 프러시아에서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국가의 감독ㆍ통제권을 제한하는 내용의 도시자치법(Stadteordnung)을 도입하면서 일찍이 근대적 의미의 지방자치제를 꽃피웠다.
200여년을 이어온 기본적 제도틀은 1960년대 들어 현대적으로 재편돼 지금의 독일연방공화국을 완성했다. 입법권을 담당하는 연방(Bund)과 집행권을 갖는 주(Land)로 나뉜 간접연방제를 채택해 베를린, 함부르크, 브레멘 등 도시주 3곳을 비롯한 총 16개주가 탄생했다. 이들은 연방정부와 별도로 주헌법을 제정하고, 이를 토대로 입법ㆍ행정ㆍ사법부의 삼권분립 체제를 갖췄다. 주는 또다시 크라이스(Kreis)와 게마인데(Gemeinde) 등 광역ㆍ기초자치단체로 갈라져 지방자치를 실현하고 있다. 지자체는 외교ㆍ국방 등 연방정부의 기능을 제외하고 인사ㆍ재정ㆍ조직ㆍ조세 등 폭넓은 자치권을 인정받는다. 또 동시에 지방선거를 치르는 우리와 달리, 지자체가 직접 지방의회의 선거일이나 임기를 결정할 수 있다.
이 같은 독일의 지방자치는 1990년 통일 이후 동ㆍ서 통합비용을 최소화하는 데 효과를 발휘했다. 특히 통일 전부터 지자체 차원에서 활발한 교류를 이어온 것이 동ㆍ서 이질성을 극복하고 통일에 밑거름이 됐다는 분석이다. 1986년 공식 자매결연을 맺은 동독의 아이젠휘텐슈타트 시와 서독 자르루이스 시를 필두로 통일 전까지 60여개의 도시 간 자매결연이 이뤄졌다. 동ㆍ서 지자체 간 결연은 물자 제공과 주민 접촉의 장(場)이 됐다.
▶‘공존’선택한 스페인=유럽에서도 민족 간 갈등이 가장 심한 국가로 꼽히는 스페인은 지방자치야말로 국가 유지를 위해 필수적인 생존 전략이다. 스페인은 대다수를 차지하는 라틴족 외에 원주민인 이베리아인, 로마인, 게르만인, 아랍인 등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오랫동안 독립적 왕국들로 갈라져 각자 고유한 문화와 언어를 발달시켰다. 우리가 흔히 스페인어로 알고 있는 카스티야어를 비롯, 카탈란어, 바스크어, 가예고어 등 공식 언어만 4개에 이른다. 하지만 1939년 마드리드를 점령하고 스스로 총통에 오른 프란시스코 프랑코는 이를 무시하고 ‘하나의 스페인’이란 기치 아래 강력한 중앙집권화를 추진했다. 바스코처럼 독특한 특색을 지켜온 민족들은 철저한 탄압의 대상이 됐다.
프랑코의 철권 독재가 끝난 뒤 1978년 제정된 민주헌법은 ‘단일화’ 대신 ‘공존’의 가치를 전면에 내세웠다. 모든 민족의 자치권을 인정하고 보장함으로써 지방자치제를 공식화한 것이다. 이듬해인 1979년에는 바르셀로나 시를 중심으로 한 카탈루냐와 바스크 지방에서 역사적인 첫 지방자치 선거가 실시됐다.
이후 1985년까지 각 지역이 중앙정부와 교섭한 결과, 안달루시아, 갈리시아 등 총 17개의 크고 작은 자치정부가 탄생했다. 자치정부는 중앙정부로부터 권력을 이양 받아, 각 지방의 행정과 입법 기능을 담당키로 했다. 이어 1994년엔 자치정부가 중앙정부와 공동으로 유럽연합(EU)에 참여하기로 하면서, 지방자치제가 한 단계 진화하는 계기를 맞는다. EU에서 이들 자치정부가 ‘스페인의 일부’가 아닌 단독 ‘국가’로서 목소리를 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올 11월 분리독립을 묻는 주민투표를 예고하고 있는 카탈루냐 주처럼 일부 민족들의 분리주의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어, 스페인 정부가 지금과 같은 공존 체제를 지속하기 위해선 가시밭길이 예상된다.
강승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