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스포츠팀=박병두 기자] 운동선수에게 나라를 대표해서 뛴다는 것은 매우 큰 영광이다. 해당 국가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들이 선발되기 때문에 국가대표에 선발되는 것은 자부심을 갖게 할 만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선수들은 사명감을 갖고, 좋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그러나 늘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도 국가대표팀에서는 부진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도 많다. 소속팀에서는 월드클래스다운 면모를 보이지만, 국가대표팀에서는 이에 미치지 못하며 아쉬움을 남긴 3명의 선수를 소개한다.
곤살로 이구아인곤살로 이구아인(1987년생)은 어린 시절 아르헨티나의 리버플레이트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2006년 페르난도 가고를 관찰하러 수페르클라시코(리버플레이트와 보카주니어스의 대결)를 관전하러 온 레알마드리드의 스카우트 앞에서도 그는 멀티골을 넣으며 좋은 모습을 보였다. 결국 이구아인은 2007년 1월 레알마드리드의 유니폼을 입게 됐다.당시 레알마드리드의 주전 공격수는 루드 반 니스텔루이와 라울 곤잘레스였다. 쟁쟁한 선수들에 밀려 백업 요원으로 활약했던 이구아인은 적은 출전시간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골을 터뜨리며 능력을 입증했다. 2008-09시즌 반 니스텔루이의 부상 공백을 훌륭히 메우며 주전으로 도약했고, 2012-13시즌까지 5시즌 반 동안 264경기에 나서 122골을 넣는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나폴리로 이적한 후에도 득점행진은 계속됐다. 3시즌 동안 146경기에 출전해 91골을 넣었다. 이런 활약을 바탕으로 이구아인은 올 시즌을 앞두고 이탈리아의 명문 유벤투스로 이적했다. 이구아인의 이적료는 무려 9,000만 유로(한화 약 1,125억 원)였다. 이는 세리에A 역대 최고액이었고, 전 세계 역대 이적료 4위에 해당하는 기록이었다. 유벤투스에서도 이구아인은 16경기에 나서 9골을 넣으며 이적료가 주는 부담을 잘 이겨내고 있다.클럽에서는 완벽한 활약을 펼쳤던 이구아인은 초창기에는 국가대표팀에서도 좋은 활약을 펼쳤다.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한국을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했고, 2014 브라질 월드컵 남미 예선에서는 11경기에 나서 9골을 넣는 괴력을 보였다. 그러나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본선부터 경기력이 떨어졌다. 대회 내내 단 한 골에 그쳤고, 이듬 해 열린 2015 코파아메리카 결승전에서도 에제키엘 라베치와 함께 많은 찬스를 놓치며 준우승에 머물러야 했다. 2016 코파아메리카 센테나리오에서도 부진은 계속됐다. 리오넬 메시의 승부차기 실축이 강한 임팩트를 남겼지만, 결정적인 순간마다 찬스를 놓쳤던 이구아인의 부진이 아쉬웠던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세르히오 아구에로이구아인의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동료 세르히오 아구에로(1988년생) 역시 클럽에서는 엄청난 활약을 펼쳤다. 2003년 인디펜디엔테에서 15세의 나이로 성인무대에 데뷔한 아구에로는 2005-06시즌 36경기에 나서 18골을 넣었다. 이에 매번 뛰어난 공격수를 양성했던 AT마드리드가 적극적으로 나서며 아구에로를 데려왔다. 아구에로는 첫 시즌에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많은 출장기회를 잡았으나 당시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성장해가던 페르난도 토레스의 조력자 역할에 그쳤다. 그러나 2007-08시즌 토레스가 리버풀로 떠나면서 아구에로가 AT마드리드 공격의 중심이 됐다. 엄청난 순발력과 탁월한 골 결정력으로 토레스의 공백을 메웠고, 디에고 포를란이 영입된 이후에는 환상적인 콤비플레이를 펼쳤다.AT마드리드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 아구에로는 2010-11시즌 맨체스터시티로 이적했다. 첫 시즌에 프리미어리그에서 23골을 넣으며 득점 3위를 기록했고, 잦은 부상에도 시달렸지만 매 시즌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했다. 이렇게 뛰어난 활약을 펼쳤던 아구에로였지만 국가대표팀에서는 결정적인 순간마다 득점에 실패했다. A매치 79경기에서 33골로 좋은 기록을 보유했지만, 영양가가 떨어졌다. 메이저대회 득점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2010 남아공 월드컵,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모두 득점하지 못했고, 2016 코파아메리카 센테나리오에서는 많은 찬스를 무산시키며 단 한 골에 그쳤다. 유일하게 제 몫을 해줬던 때는 2011 코파아메리카였다. 당시 3골을 기록하며 좋은 모습을 보였으나 루이스 수아레즈를 앞세운 우루과이를 넘지 못했다.
디에고 코스타브라질에서 태어난 디에고 코스타(1988년생)는 16세까지 정식으로 축구를 배우지 못했다. 이후 상파울로를 연고로 하는 바르셀로나 이스포르티부 카펠라에서 정식으로 축구를 배웠고, 좋은 활약을 펼쳐 2004년 포루투갈의 브라가로 이적했다. 포르투갈에서의 생활은 쉽지 않았다.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며 페나피엘로 임대를 떠났고, 복귀 후에는 AT마드리드로 이적했다. 스페인에서도 임대생활은 계속됐다. 셀타비고, 알바테세에서 임대생활을 했고, 세르히오 아센호의 트레이드 카드로 바야돌리드 유니폼을 입게 됐다. 바이백 조항에 의해 다시 AT마드리드로 돌아온 코스타는 2010-11시즌에 AT마드리드 데뷔전을 치렀다. 아구에로와 포를란의 백업 공격수로 출전하여 쏠쏠한 활약을 펼쳤고, 포를란의 노쇠화로 인해 기회를 잡았다. 2012-13시즌 코파 델 레이에서 크리스티아노 호날두를 제치고 득점왕을 차지한 코스타는 2013-14시즌 35경기에 나서 27골을 기록하며 AT마드리드의 라리가 우승을 이끌었다.조세 무리뉴 감독의 눈에 든 코스타는 2014-15시즌 첼시로 이적했다. 첼시의 푸른 유니폼을 입고 프리미어리그에서 20골을 넣으며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지난 시즌에는 태업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12골을 넣으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그리고 올 시즌에는 11경기에서 9골을 넣으며 득점 선두를 질주하고 있다.클럽팀에서 어려움을 겪고 성공한 코스타였으나 국가대표팀에서는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스페인에서 생활하며 스페인 시민권을 획득한 코스타는 2013년 10월 브라질 대신 스페인 대표팀을 선택했다. 그러나 투박한 코스타와 부드러운 스타일의 스페인 대표팀은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했다. 자연스레 코스타와 스페인 대표팀 모두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부진했다. 부상으로 유로2016에도 참가하지 못한 코스타는 스페인 팬들에게 지지를 보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코스타가 스페인 대표팀에 잘 녹아든다면 무적함대가 부활하여 세계를 호령할 가능성이 높다.국가대표팀에서 다소 아쉬운 모습을 보였던 3명의 스트라이커에 대해서는 ‘축덕들이 만드는 팟캐스트 해축야화 39화’를 통해 자세히 들을 수 있다. 해축야화는 매주 금요일에 1부가 토요일에 2부가 업로드 되며, 팟캐스트 어플 ‘팟빵’을 통해 들을 수 있다.■ 축덕들이 만드는 축구 팟캐스트 '해축야화' 다시듣기(아래 URL 클릭)http://www.podbbang.com/ch/106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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