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슬기ㆍ유은수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던진 ‘국회추천 총리 수용’ 승부수가 새누리당 친박(親박근혜)계와 비박(非박근혜)계의 대치국면에도 불을 붙였다. 총리 후보자 추천 과정에서 대야(對野) 협상 주도권을 누가 쥐느냐에 따라 당과 계파의 명운이 달라진다. 친박계 지도부가 ‘침묵의 장고(長考)’에 들어간 이유다. 반면, 비박계는 비상대책회의를 열고 새 구심점 찾기에 골몰했다. 지도부와 구성원이 철저히 분리된 ‘따로국밥 집권여당’의 현실화다.
새누리당 비박계 핵심 중진(3선 이상, 김성태ㆍ김영우ㆍ나경원ㆍ정병국 등)들은 9일 오전 국회에서 당내 초ㆍ재선 의원으로 구성된 ‘진정모(최순실 사태 진상 규명과 국정 정상화를 위한 모임)’와 연석회의를 갖고, 정국 수습 방안을 논의했다. 이정현 대표 등 친박계 지도부가 대야 협상력을 상실한 현 상황에서는 정상적인 총리 후보자 추천이 어렵다는 것이 비박계의 논리다. 이번 기회에 청와대와 확실히 선을 긋고 ‘보수의 생존’을 도모하겠다는 의지도 보인다.
진정모 간사인 오신환 의원은 이날 연석회의 브리핑에서 “사태 수습에 걸림돌이 되는 당 지도부 문제가 반드시 선결돼야 한다”며 “새누리당이 재창당에 이르는 모습을 (국민께) 보여드리고, 보수의 가치와 대한민국을 지켜야 한다”고 했다. 총리 후보자 추천 협상이 본격화하기 전에 이 대표 체제를 끌어내려야 한다는 절박감이 묻어난다. “새누리당의 역할이 모두 소멸, 후속조치가 어려우므로 지도부가 사퇴해 ‘당 해체 및 재탄생’의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이에 대해 “비박계는 ‘박 대통령과의 단절에서부터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다’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며 “그래야 당과 보수의 단일대오를 유지하고, 대선도 치를 수 있다는 것”이라고 분석(8일 CBS 라디오)했다.
문제는 비박계에 이렇다 할 구심점이 없다는 점이다. 원내 대권주자인 김무성 전 대표와 유승민 의원은 구심점 역할을 자청하지 않고 있다. ‘대선을 앞둔 주도권 쟁탈전’이라는 시각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따라 비박계는 오는 13일 오후 당 소속 현직 시ㆍ도지사와 원외위원장을 포함한 대규모 비상시국회의를 열고 다음 수순을 논의한다는 방침이다. 박 대통령 및 친박계와의 ‘노선 분리’를 천명하는 동시에, 구심점 후보군을 원외로 넓히겠다는 것이다.
반면, 이 대표를 위시한 친박계 지도부는 이날 정례회의(최고위원회의)도 취소한 채 버티기 모드에 돌입했다. ‘박 대통령을 구심점으로 연말까지는 버텨야 구명(救命)의 기회가 생긴다’는 것이 친박계의 기류다. 이 대표가 “야당이 추천하는 인사가 중립적이어야 한다”며 총리 후보자 추천 협상 과정에 어떤 형태로든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한편, 서청원ㆍ최경환 등 친박 핵심의원을 포함한 ‘재창당 준비위원회’ 발족을 구상하고 있는 이유다.
윤 실장은 “친박계는 박 대통령만큼 구심력을 가진 사람이 없다고 본다”며 “당권을 가진 세력(친박계)과 여론에 가까운 세력(비박계)이 여당에 함께 존재하는 ‘미스매치’가 발생했다. (총리 후보자 추천 과정에서) 양측의 충돌이 격화할 것” 이라고 진단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