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쓴 글 ‘망각의 바다’를 통해 기자는 “세월호를 건져 ‘국치(國恥)의 박물관’으로 이름 지어 길이길이 지켜보자”고 했습니다. 오늘(16일), 저 끔찍한 지난달 16일을 생각하며 아침 출근길 버스에서 다시 그 생각을 했습니다.
정말이지 저 참담한 ‘세월호’를 그냥 둘 순 없습니다. 우리 사회에 세계 전역으로 낱낱이 생중계 된 초대형 사고가 어디 한두 번이었습니까. 50대 중반을 살아오면서 지난 30년간 이 땅에서 전쟁 빼곤 끔찍한 일을 종별로 다 지켜 본 셈입니다.
손가락을 꼽자니 손이 오그라듭니다. 열손가락이 모자랄까봐서입니다. 바다, 하늘, 땅, 산, 길, 골목 그 어느 곳에도 ‘안전’은 없었습니다.
우선, 세월호와 유사한 사고를 먼저 꼽습니다. 서해 훼리호 침몰 참사가 그 것입니다. 21년 전 1993년 10월 10일 전북 부안 앞바다에서 생떼 같은 292명을 검은 바다에 묻었습니다. 돈에 눈 먼 선사측이 정원보다 무려 141명이나 더 태우고 비바람 몰아치는 악천후에 시동을 걸었던 게 화근이었습니다. 대표적인 인재였는데 이번에 세월호가 그 기록을 갈아치웠습니다.
석 달 앞선 그해 7월 아시아나 여객기 사고로 68명이 사망했고, 또 석 달 앞서 구포역 열차 충돌 사고로 78명이 사망했습니다. 그 해엔 석 달에 한번 꼴로 최악의 사고가 터진 겁니다.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바로 이듬해 성수대교가 동강나 무너져 내려앉는 괴상망측한 일이 벌어져 32명이 세상을 떴습니다. 기자는 당시 정부종합청사 출입기자였는데 사고 직후 이영덕 국무총리의 현장 방문을 취재했었습니다. 출근길에 등굣길에 툭 끊어진 다리, 그 난간 가까이 서서 사고수습 현장을 내려다 본 그 심정,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대형 재난사고 중 가장 큰 인명피해 참사는 1996년 6월 29일에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입니다. 501명을 저 세상으로 보냈고 6명은 끝내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기자는 당시 동유럽을 취재 차 출장 중이었는데 CNN을 통해 뉴스를 접하곤 눈과 귀를 의심하다 구조대 등 뒤에 붙은 낯익은 ‘구조’라는 마크를 보곤 경악을 금치 못했던 기억 생생합니다.
또 그 이듬해 8월 미국 괌에서 대한항공 여객기가 추락해 225명의 인명피해를 내더니 2년 뒤엔 경기도 화성 ‘씨랜드’라는 체험학습장에 큰 불이 나 병아리 색에 딸기 색에 치장을 하고 난생 처음 엄마 품을 벗어나 낯선 곳에서 곤히 자던 유치원생 19명 등 23명이 목숨을 빼앗겼습니다. 당시 희생된 한 유치원생 어머니(국가대표 출신)는 “이런 나라에 살 수 없다”며 훈장까지 반납하고 서둘러서 이민 길에 올라 많은 이들을 울리기도 했습니다.
끔찍한 참사는 파노라마처럼 이어집니다. 2003년 2월 18일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192명의 사망자와 21명의 실종자를 냈습니다. 그리고 2년 뒤 이천 물류센터 공사장 붕괴사고로 9명 사망했습니다.
2010년 3월 26일에는 백령도 근처 해상에서 우리 해군 천안함(초계함 PCC-772)이 북한군에 의해 폭침을 당하는 사고가 발생, 장병 40명이 사망했고 6명이 실종됐습니다. 이듬해 7월엔 우면산 산사태로 18명 사망했고, 같은 큰 비로 소양감댐 부근에 산사태가 발생해 인하대 하계봉사단 9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지난해도 참으로 안타까운 대형사고가 속출했습니다. 7월 15일 노량진 배수지 지하공사장이 수몰돼 인부 7명이 사망하더니 바로 사흘 뒤 충남 태안 해병대 캠프에 참가한 공주사대부고 학생들이 무더기로 파도에 휩쓸리면서 5명이 결국 목숨을 잃었습니다. 같은 달에 방화대교 상판이 붕괴로 2명이, 12월엔 부산 북항대교 접속도로 부분 붕괴로 4명이 세상을 떴습니다.
올해 역시 출발이 좋지 않았습니다. 2월 17일 경주 마우나 오션 리조트 강당(체육관)이 천정이 무너져 내려 신입생 환영회를 하던 부산외국어대생 9명과 행사관련 직원 1명 등 총 10명이 사망했습니다. 사회가 화들짝 놀라고 정부가 화급하게 대책을 쏟아냈지만 결국 두 달도 못가 ‘세월호’가 터진 겁니다. 대형 사고를 말하면서, 사망자 및 실종자 수만 적는 것은 큰 오류일 겁니다. 그로 인해 부상당한 이들, 수많은 이들이 힘들게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기자는 이번 사고 발생 직후 쓴 글에서 ‘침몰한 것은 세월호가 아니라 한국호’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어른의 한 사람으로 이 땅을 버티고 선 자체가 못내 부끄럽고 죄스럽다고 적었습니다. 이번 사고를 보면 “대한민국은 나라도 아니다”는 절규가 세상 최고의 진실로 다가옵니다.
결국 한국적 고질병 그게 문제입니다. ‘세월호’를 건져 올리게 되면 씻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 많은 이들이 가까이 접할 수 있는 곳에다 정말 그 꼴 그 모습대로 놓아야 합니다. 기자는 성수대교 붕괴 사고 이후 사회 일각에서 제기한 한강 둔치에 그 흉물스런 상판을 유물로 두자는 의견에 작으나마 힘을 보탰지만 결국 그 일은 무위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못나 보일 때 ‘냄비근성’이란 표현을 씁니다. 맞습니다. 쉽게 달아오르고 쉽게 식어버리는 얄팍한 그 심성 말입니다. ‘잊지말자 6.25’를 뼈와 살처럼 귀히 여기던 시절, 그래놓고도 그 동족상잔을 쉽게 까먹고 만 한심한 우리네 아니던가요. 그런 이들의 후손들은 또 어떨까요.
거듭 말하지만, 북한을 제외하고도 나라 안팎에서 이 나라에 뿌리를 둔 적지 않은 이들과 무리배가 세월호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려 든다는 소식이 끊이질 않습니다. 냄비근성보다 더 나쁜 풍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정작 필요한 것은 ‘나라 다시 세우기’입니다. 발전적 자기비판이 근거가 돼야 함은 물론입니다. 이대로 주저앉는다면 대한민국이 엉터리 괴물 세월호보다 더 가벼울지 모릅니다. 이래선 안 됩니다.
때마침, 종교·경제·문화 등 각계각층 사회 원로 118명이 참다못했던지 15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새로운 한국을 위한 국민운동’을 발족했다고 합니다. 개혁다운 개혁을 위해 매달 전문가 세미나도 열 모양입니다. 더 지켜봐야겠지만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입니다.
사실, 언제부턴가 이 나라에 거뜬하게 내세울만한 ‘꼰대’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세월호 사고를 친 뒤로는 정말 그렇습니다. 어른들이나 전문가들 모두 땅 딛고 설 자격이 없습니다. 분명코 생죽음과 맞바꿀 반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다시 살 수 있습니다. 그런 뒤 보란 듯이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죽어가다가도 희망의 끈을 부여잡고 당기고 밀고 그렇게 엉겨 붙어 거뜬하게 무릎을 세우고 두 팔 뻗쳐 세워 만세 불렀던 일이 어디 한두 번이던가요. 이제 다시 시작하는 마음가짐으로 모두가 일어날 채비를 해야 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