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위기와 탄소중립 시대를 맞아 건축물의 역할이 달라지고 있다. 에너지를 소비하는 공간을 넘어 사용량을 줄이고 재생에너지를 생산하는 에너지 자산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건축물의 환경·에너지 성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그 가치를 시장에서 인정받게 하는 일이다.
최근 국토교통부와 기후에너지환경부는 ‘녹색건축 인증에 관한 규칙 및 고시’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2002년 도입된 녹색건축인증제도(G-SEED)를 2027년 7월 시행을 목표로 기존 7개 전문 분야에서 탄소중립, 생활공간과 건강 등을 중심으로 한 4개 축으로 재편하는 내용이다. 의무 취득이나 인센티브 수단으로 인식돼 온 인증을 건축물의 성능과 미래가치를 보여주는 자산가치의 기준으로 발전시키려는 시도다.
글로벌 부동산 시장에서 친환경 성능은 건물의 경쟁력을 가르는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CBRE 분석에 따르면 친환경 인증 오피스는 비인증 건물보다 3~4% 높은 임대료를 형성하며, JLL 코리아도 서울 주요 오피스의 친환경 인증 비중이 최근 5년간 두 배 이상 늘어 45%에 이른다고 밝혔다. 쾌적한 실내환경과 에너지효율은 이용자의 건강과 만족도, 운영비 절감은 물론 장기적인 자산가치에도 영향을 미친다. ESG 투자와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Taxonomy)에 기반한 녹색금융의 확산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번 개편안은 평가체계를 개선해 투명성을 높이고, 원자재 제조부터 건물 운영까지 탄소 영향을 살피는 전과정평가(LCA)와 시공 단계의 탄소 저감을 강화한다. 실내 오염원 차단 등 ‘생활공간과 건강’을 별도 평가 축으로 두고, 분야별 강점을 인정하는 ‘특성화 등급’과 친환경·스마트 기술을 반영하는 ‘혁신적 설계’ 심의도 도입한다. 탄소 감축과 삶의 질, 기술 혁신을 함께 평가하겠다는 방향이다.
국제적 통용성 제고도 중요하다. 해외 자본과 글로벌 기업을 유치하려는 국내 오피스는 G-SEED 외에 LEED 등 해외 인증을 추가로 취득하기도 한다. 국내 인증의 국제적 신뢰도가 높아진다면 중복 인증 부담을 줄이고 우리 건설·건축 기술의 해외 경쟁력을 높이는 기반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제도를 바꾼다고 건물의 가치가 저절로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녹색건축인증이 자산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자리 잡으려면 시장의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 설계 단계의 성능이 시공과 운영 과정에서도 구현되는지, 자재와 설비의 환경성능이 검증됐는지 객관적인 데이터로 입증해야 한다. 자재 단위의 시험·평가부터 건물 단위의 제로에너지·저탄소 성능 검증까지 과학적이고 일관된 평가체계가 필요한 이유다.
과거 녹색건축 정책이 더 많은 건물을 친환경적으로 짓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잘 지어진 건물이 시장에서 제대로 평가받도록 해야 한다. 정책은 규제를 넘어 시장의 투자를 이끄는 마중물이 되어야 한다. 인증에 대한 신뢰가 자산가치를 높이고 그 가치가 다시 녹색건축 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만들어야 한다.
녹색건축인증이 규제 충족의 증명서를 넘어 건축물의 성능과 미래가치를 보여주는 신뢰의 척도가 될 때, 친환경 건축은 비용이 아니라 투자가 된다. 정부의 제도 혁신과 산업계의 기술력, 전문기관의 과학적 검증 역량이 함께할 때 G-SEED는 대한민국 건축물의 녹색 경쟁력을 높이고 자산가치를 인정받는 핵심 기준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천영길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KCL)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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