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안보·산업 경쟁력 좌우할 양자기술
큐비트 단위 정보처리, 수학난제 ‘수초’만
美中 ‘양자 무기화’, 韓 ‘K-퀀텀 파운드리’
초전도·중성원자 양자컴퓨터 개발 목표
GPS 없는 내비게이션 양자센서 상용화도
“양자기술 주도권을 놓치면 미래 첨단산업도 없다.”
인공지능(AI)과 반도체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 경쟁이 양자기술로 확산하고 있다. 기존 슈퍼컴퓨터의 연산 한계를 뛰어넘을 양자컴퓨터는 물론 양자센서와 양자암호까지 국가안보와 산업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전략기술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양자컴퓨터는 중첩과 얽힘 등 양자역학적 현상을 활용해 특정 문제에서 기존 컴퓨터를 압도하는 연산 성능을 구현할 수 있는 차세대 기술이다. 기존 컴퓨터가 비트(bit) 단위를 이용해 0 또는 1로 정보를 처리하는 데 비해, 양자컴퓨팅은 0과 1이 동시에 존재하는 큐비트(Qubit) 단위로 정보를 처리한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고전 컴퓨터로 수십만 년 걸릴 연산을 수 분 내에 해결할 수 있는 혁신 기술로 꼽힌다. 구글은 슈퍼컴퓨터로 1만년 걸릴 것으로 추정한 계산을 자체 개발한 양자컴퓨터로 200초 만에 수행했다고 발표했다. 중국과학기술대학교 역시 특정 계산 문제에서 기존 슈퍼컴퓨터를 크게 앞서는 성능을 구현했다고 밝혔다.
미국은 양자컴퓨터 개발과 양자내성암호 전환을 국가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다. 중국 역시 대규모 투자를 앞세워 양자통신과 양자컴퓨팅, 양자센싱 기술 확보에 나서고 있다. 미·중 양강 구도가 ‘양자의 무기화’라는 극단적인 형태의 패권 전쟁으로 진화함에 따라, 한국은 기술 종속의 위험 속에서 거대한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다.
우리나라도 이 같은 점에서 독자 기술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는 2029년까지 오류정정이 가능한 100큐비트급 양자처리장치(QPU)를 확보하고, 반도체 제조 역량을 활용한 ‘K-퀀텀 파운드리’를 구축해 2035년까지 세계 최고 수준의 양자칩 제조 역량을 확보한다는 목표다.
핵심은 양자컴퓨터의 두뇌인 큐비트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구현하고 제어하느냐다. 하지만 큐비트가 외부 환경의 미세한 변화에도 쉽게 오류를 일으킨다는 점은 상용화의 걸림돌이다. 단순히 큐비트 숫자를 늘리는 것을 넘어 오류를 바로잡아 실제 산업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기술 확보가 관건이다.
▶초전도 100큐비트·중성원자 1000큐비트…양자컴 독자개발 승부수=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이 초전도와 중성원자 기반 양자컴퓨터를 동시에 개발하는 ‘투트랙 전략’을 앞세워 독자 기술 확보에 나섰다. 먼저 2029년까지 초전도 100큐비트급과 중성원자 1000큐비트급 양자컴퓨터 개발에 도전한다. 서로 다른 두 가지 방식으로 핵심 원천기술을 확보해 특정 플랫폼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전략이다.
초전도 방식은 극저온에서 전기저항이 사라지는 초전도 회로를 큐비트로 활용한다. 이 방식은 큐비트 수의 확장성이 크고 연산속도가 빠르고 기존 반도체 제조기술을 일부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구글과 IBM 등 글로벌 기업들이 주력하는 방식이다. 초전도 기반 양자컴퓨팅은 현재 상용화에 가장 근접한 기술로 평가받는다.
KRISS는 2024년 국내 연구기관들과 협력해 20큐비트급 초전도 양자컴퓨팅 시스템을 개발했다. 지난해 3월에는 외부 연구자가 인터넷으로 양자컴퓨터에 접속할 수 있는 클라우드 서비스도 시연했다. 다음 목표는 50큐비트급 시스템 구축이다. 이를 토대로 2029년까지 100큐비트급으로 규모를 확대하고 양자 오류정정 기술 적용에 도전한다. 극저온 측정과 정밀 제어 분야에서 축적한 기술을 활용해 연산 성능과 신뢰성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또 다른 승부수는 중성원자 양자컴퓨터다. 중성원자 방식은 전하를 띠지 않는 원자를 레이저로 만든 ‘광집게’에 하나씩 붙잡아 큐비트로 활용한다. 원자를 정밀하게 배열할 수 있어 대규모 큐비트 구현에 유리하고 양자상태를 상대적으로 오래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KRISS는 축적한 원자 제어 기술을 바탕으로 1000큐비트급 중성원자 양자컴퓨터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원자 배열과 정밀 제어 기술을 고도화해 독자적인 양자처리장치 설계 역량을 확보한다는 구상이다.
초전도 방식으로 빠른 연산과 집적화 기술을 확보하고, 중성원자 방식으로 대규모 확장 가능성을 넓히겠다는 것이다.
최재혁 KRISS 양자기술연구소장은 “원자 제어와 극저온 제어 등 수십 년간 축적한 측정 역량을 바탕으로 독자기술 기반의 초전도·중성원자 양자컴퓨터 개발에 앞장서고 있다”며 “큐비트 규모 확장과 오류정정 기술 개발은 물론 산·학·연 양자 생태계 조성과 핵심 부품·장비 국산화도 함께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GPS 끊겨도 위치 찾는다…양자중력계로 국방·항법시장 공략=양자컴퓨터뿐 아니라 양자센서 개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대표적인 기술이 GPS 없이도 위치를 추정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양자중력계다.
지구의 중력은 지하 암석의 밀도와 지형, 지하수 분포에 따라 미세하게 달라진다. 양자중력계는 레이저로 냉각한 원자의 양자역학적 특성을 이용해 이러한 중력 변화를 정밀하게 측정하는 장치다. 특히 잠수함과 수중 무인체계처럼 위성 신호를 이용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활용 가능성이 주목받는다.
GPS는 전파 교란이나 차단에 취약하지만 양자중력계로 측정한 중력 특성을 사전에 구축한 정밀 중력지도와 비교하면 현재 위치를 추정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정밀 중력지도와 관성항법장치 등 다른 기술과의 결합이 필요하다. 민간 활용 가능성도 크다. 지하 공동과 터널, 지하수 등이 주변 지층과 다른 중력 특성을 나타낸다는 점을 이용하면 도심 싱크홀 위험 조사와 지하자원 탐사, 지질·해양 조사 등에 활용할 수 있다.
KRISS는 양자중력계의 성능 향상과 응용기술 확보를 추진하고 있다. 센서 소형화와 측정시간 단축, 진동 등 외부 환경에서의 안정성 확보가 상용화의 핵심 과제다.
권택용 KRISS 원자양자센싱그룹장은 “양자중력계 등 양자센싱 기술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영역”이라며 “국방·항법·지하탐사 등으로 활용을 넓혀 세계 양자센싱 기술을 선도하겠다”고 말했다.
구본혁 기자
nbgkoo@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