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 주식거래·재산증식 선거 쟁점 부상
사상 최대 ‘돈선거’ 전망에 ‘부패 심판론’ 확산
예비선거에만 익명 정치자금 10억달러 몰려
유권자들 고물가 불만에 정치인 비판 거세져
[헤럴드경제=서지연 기자] “정치인들은 주식거래로 부자가 되는데, 평범한 미국인들은 생활비조차 감당하기 어렵다.”
미국 중간선거를 한 달도 남겨두지 않은 가운데 의원들의 주식거래와 재산증식, 거액의 정치후원금을 겨냥한 ‘부패 심판론’이 새로운 선거 쟁점으로 떠올랐다. 고유가와 인플레이션으로 가계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정치인들이 국민보다 자신과 후원자의 이익을 먼저 챙긴다는 비판이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7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미국 전역의 주요 선거구에서 의원들의 주식거래와 이해충돌 문제를 공격하는 선거운동이 잇따르고 있다. 생활비 부담이 이번 중간선거의 핵심 쟁점으로 부상하면서 정치권의 도덕성 문제를 경제적 불만과 연결하는 전략이다.
대표적인 곳이 버지니아주 제1연방하원 선거구다. 민주당 후보 섀넌 테일러는 약 20년간 의정활동을 해온 공화당 현역 롭 위트먼 의원을 상대로 주식거래와 재산증식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테일러는 위트먼 의원이 의회에서 감독하는 기업들의 주식을 보유하고 거래하면서 재산을 늘렸다고 주장한다. 선거 광고에서는 양당 정치인들이 일반 국민에게 없는 정보를 이용해 주식거래로 부를 축적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반면 위트먼 의원은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그는 자신의 재산이 증가한 주요 이유는 부부가 부모로부터 받은 상속 때문이며, 주식 투자 역시 외부 자산관리 전문가들이 담당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비공개 정보를 투자에 이용한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AP는 위트먼 의원의 재산공개 자료상 보유자산과 개별 주식 규모가 재임 기간 상당히 증가한 것은 확인되지만, 이것만으로 부적절한 거래가 입증되는 것은 아니라고 전했다.
테일러는 의원들의 개별 주식거래 금지와 임기 제한, 퇴임 의원의 로비스트 취업을 평생 금지하는 방안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기업 정치활동위원회(PAC)의 후원금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번 선거는 공화당의 전통적인 우세 지역에서 치러진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버지니아 제1선거구는 1970년대 후반 이후 민주당 소속 연방 하원의원을 배출하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024년 대선에서 이 지역을 약 5%포인트 차이로 이겼지만, 지난해 주지사 선거에서는 민주당 후보가 약 3%포인트 차이로 승리했다.
민주당은 이런 변화에 기대를 걸고 있다. 반면 위트먼 의원은 오랜 지역 활동과 인지도를 앞세워 방어에 나섰다. 그는 토마토 통조림 공장과 어선에서 일했던 경험, 1985년부터 같은 집에 거주해왔다는 점 등을 선거 광고에서 강조하고 있다.
유권자들의 반응도 엇갈린다. 테일러에게 사전투표한 무당층 유권자 브루스 핼리버턴은 위트먼 의원이 이미 충분히 많은 돈을 벌었다는 취지로 말했다. 반면 지역 수산물 판매업자 마이클 그린은 위트먼을 둘러싼 의혹이 거짓이라며 그의 지역구 활동을 높이 평가했다.
부패 문제를 둘러싼 공방은 버지니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노스캐롤라이나주 연방하원 선거에 출마한 민주당 후보 제이미 에이거는 국민을 희생시키면서 자신의 부를 늘리는 정치인들에게 지쳤다고 비판했다. 해당 지역구의 공화당 현역 척 에드워즈 의원은 여성 직원들과 관련된 부적절한 행위에 대한 윤리조사 이후 재선 도전을 포기했다.
뉴저지주에서는 민주당 후보 레베카 베넷이 공화당 현역 톰 킨 주니어 의원의 주식거래 공시 문제를 제기했다. 킨 의원은 자신이 아니라 재무 자문가들이 주식을 거래했다고 설명했다.
반부패 공세가 민주당만의 전략인 것도 아니다. 버지니아 제2선거구의 공화당 현역 젠 키건스 의원은 민주당 후보 일레인 루리아 전 의원의 과거 주식거래와 의원 주식거래 금지에 대한 기존 반대 입장을 공격하고 있다. 루리아 전 의원은 현재 의원들의 개별 주식 보유와 거래를 제한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이처럼 양당 후보들이 서로를 향해 부패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정치권 전반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신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실시된 AP·NORC 여론조사에서는 등록 유권자의 약 절반이 공화당을 설명하는 표현으로 ‘부패했다’는 말이 매우 잘 들어맞는다고 응답했다. 민주당에 대해 같은 평가를 내린 비율은 약 3분의 1이었다.
부패 심판론은 의원 개인의 주식거래를 넘어 선거자금 문제로도 확산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올해 중간선거는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정치자금이 투입되는 선거 가운데 하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뉴욕타임스(NYT)의 분석에서는 예비선거에만 최소 10억달러(약 1조4000억원)의 이른바 ‘다크머니’가 투입된 것으로 나타났다.
다크머니는 자금 제공자를 공개할 의무가 없는 비영리단체 등을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돈을 뜻한다. 유권자들은 누가 특정 후보를 지원하는지 충분히 알기 어려운 구조다.
특히 인공지능(AI)과 가상자산 업계의 정치자금 지출도 빠르게 늘고 있다. WP는 관련 업계 단체들이 예비선거에만 1억달러 이상을 투입했다는 분석을 소개했다. 기업들이 향후 규제 방향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는 것이다.
텍사스주 상원 선거에서는 민주당 후보 제임스 탈라리코가 거액의 정치자금 문제를 생활비 부담과 연결하고 있다. 그는 억만장자 후원자들이 정치인들에게 자금을 제공하고, 정치인들은 다시 부유층에 유리하도록 경제 규칙을 바꾼다고 주장했다.
공화당 역시 막대한 자금을 동원하고 있다. AP에 따르면 공화당과 친트럼프 단체들이 확보한 선거자금은 약 10억달러에 달한다. 트럼프 대통령을 지원하는 정치활동위원회인 MAGA Inc.는 8월 말 기준 약 4억1600만달러의 현금을 보유했다.
다만 거액의 선거자금이 반드시 승리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공화당은 막대한 자금을 광고에 투입하고 있지만, 민주당은 오히려 이를 부유층과 기득권의 정치적 영향력을 보여주는 사례로 활용하고 있다.
미국의 정치윤리 전문가 메러디스 맥기히는 정치자금이 후보의 인지도를 높이고 선거 메시지를 확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돈이 많다고 반드시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이번 중간선거에서 부패 심판론이 주목받는 이유는 정치인의 도덕성 문제가 유권자들의 경제적 불만과 맞물렸기 때문이다.
휘발유와 식료품 가격이 오르고 가계의 생활비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서 정치인들의 주식거래와 거액의 후원금은 워싱턴 정치권이 일반 국민의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인식을 강화할 수 있다.
민주당은 이를 공화당의 장기 집권 지역을 공략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고, 공화당 역시 상대 후보의 재산과 주식거래를 문제 삼으며 맞서고 있다.
11월 3일 중간선거에서는 고물가와 경제정책뿐 아니라 정치권의 이해충돌 문제에 대한 유권자들의 판단도 주요 변수로 작용하게 됐다.
sjy@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