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일객 1%만 머무는 한적한 지역
300년의 역사 품은 고쇼가케 온천
다다미방에 깃든 백 년 료칸의 정취
연못과 경계 사라진 환상의 노천탕
[헤럴드경제=김명상 기자] 화산의 맥박이 지하에서 끓어오를 때, 대지는 따스한 숨결을 지상으로 밀어 올린다. 도심의 번잡한 소음이 닿지 않는 깊은 산자락, 김이 오르는 바위틈에서 솟은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자 물과 살갗의 경계가 흐려지며 마음에 얹힌 무게마저 함께 녹아내린다. 일본 북동북 지역의 온천은 그렇게 방문객의 어깨에 따스한 온기의 쉼표를 얹는다.
한국인 여행객 드문 日 북동북 지역 속으로
방일 한국인 관광객이 연간 1000만 명을 바라보는 시대. 열도 전역이 한국인으로 붐비지만, 혼슈 북단의 아오모리·아키타·이와테 등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이들 ‘북동북(기타도호쿠) 3현’의 한국인 숙박객 비중은 전체 한국인 방문객의 1%에도 못 미칠 만큼 한국 관광객을 찾기 어렵다.
이곳에 한국인 관광객이 뜸한 것은 아오모리 공항에만 직항 노선이 있어 좌석 공급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2030 젊은 여행객이 선호하는 대형 쇼핑몰이나 트렌디한 시설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도 한몫을 한다.
일본관광청 담당자는 “일본인조차 평생 이곳을 밟아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이가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반대로 보면, 이곳이야말로 상업적 색채가 옅어 일본 특유의 고즈넉한 정취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곳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북동북 3현의 핵심 매력은 단연 온천이다. 일본 전역의 온천 중에는 지하수를 끌어올리거나 가열·순환 여과를 거친 단순천도 적지 않지만, 북동북 지역 온천들은 활화산 수맥에서 솟아나는 자연 원천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일본 온천법상 용출 온도 25도 이상이거나 특정 광물 성분을 규정량 이상 함유하면 온천으로 인정받는다. 일본 북동북 지역의 명탕들은 기준치를 훌쩍 뛰어넘는 유황과 염화물 성분을 품은 것은 물론, 살균력이 강한 산성 온천수까지 거침없이 뿜어낸다. 인위적인 여과 없이 원천수를 욕조로 계속 흘려보내는 ‘가케나가시’ 방식을 유지할 수 있는 배경도 풍부한 용출량 덕분이다.
빗소리 젖어 든 노천탕·끓어오르는 화산 산책로
아키타현 도와다하치만타이 국립공원 자락의 고쇼가케 온천은 질병을 다스리고 만성 통증을 달래는 탕치(湯治) 문화의 산실이다. 300년 전부터 이 심산유곡의 원천을 이용했다는 기록이 전해지며, 과거 환자들이 직접 쌀과 부식을 챙겨와 장기 투숙하며 몸을 추스르던 자취 탕치장으로 명성을 떨쳤다. 현재는 전형적인 탕치장과 전통 료칸으로 나뉘어 운영되는데, 료칸 시설 역시 1918년에 문을 열어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녔다.
고쇼가케의 원천수 온도는 90도에 육박해서 화상을 방지하고자 찬물을 섞는 과정을 거친다. 욕장 내부는 질환과 목적에 따라 7가지 탕으로 구성되며 신경통탕을 필두로 기포로 피로를 푸는 기포탕, 세차게 쏟아지는 물줄기로 어깨와 등을 자극하는 폭포탕 등이 이어진다.
재미난 시설은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크기의 나무 상자에 들어가 머리만 밖으로 내미는 1인용 증기 찜질통 ‘하코무시’다. 흡사 중세 유럽의 고문 기구를 연상시키는 외형인데, 목 아래로 가득 찬 온천 증기가 전신을 감싸며 땀을 쏟아내게 해 기관지 질환이나 냉증 완화에 효험이 있다. 안으로 들어가 앉으면 스스로 찜통 속 만두가 된 듯한 기분이 들지만 잠시 후 개운함이 온몸을 훑는다.
기자가 이곳에 왔을 땐 세찬 바람과 함께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궂은 날씨였지만 노천탕에 몸을 담갔다. 빗줄기가 대나무 숲을 때리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다른 일정을 내려놓고 마냥 머물고 싶어질 만큼 운치가 깊었다.
온천 뒤편으로 발을 옮기면 자욱한 유황 연기 속에서 진흙 화산과 열탕이 부글거리는 ‘고쇼가케 자연연구로’가 이어진다. 이곳 산책로를 걸으면 지표면을 뚫고 솟구치는 유황 증기와 진흙 웅덩이가 마치 살아 숨 쉬는 화산 박물관을 방불케 한다.
150여 년 역사의 료칸에서 ‘땀 뻘뻘’
아키타현 유노 온천에 자리한 류몬테이 치바료칸은 좀 더 전통적인 일본 료칸을 즐기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할 만한 곳이다.
1869년 창업한 이곳은 원래 무사의 저택이었던 건물을 료칸으로 꾸민 곳으로, 약 800년 역사를 지닌 오유온천 마을에서 오랜 세월 손님을 맞아왔다. 창업 당시의 정취를 간직한 목조 마루와 사계절의 정원은 류몬테이를 상징하는 풍경이다. 다다미가 정갈하게 깔린 방에 여정을 풀면 창 너머로 연못과 정원이 내다보이는데 비로소 ‘진짜 일본’에 왔다는 기분이 든다.
입욕법은 체크인 직후 1회, 석식 후 취침 전 1회, 이튿날 아침 기상 직후 1회 등 총 세 번에 걸쳐 진행하는 방식이다. 염분과 열기가 강한 원천 특성상 한 번에 20~30분 이상 머무르면 급격한 혈관 확장으로 어지럼증을 겪을 수 있어 ‘5분 입욕, 3분 휴식’을 반복하는 인터벌 입욕이 권장된다.
이곳의 물은 탕 밖으로 나와도 피부 표면에 얇은 염분 막을 형성해 체온 발산을 억제한다. 탕을 나선 뒤 다다미방에 앉아 있으니 모공이 열리며 땀이 쏟아져 내리는데 몸이 한결 가뿐해졌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저녁 식사는 일식 정찬 가이세키가 나온다. 차가운 바다에서 건진 해산물의 순수한 선도가 미각을 맑게 깨운다. 편백 찜기 뚜껑을 열면 붉은빛 위로 눈꽃 같은 마블링이 내려앉은 소고기가 나온다. 대미는 아키타의 풍토를 담은 향토 음식 ‘키리탄포’가 장식한다. 절구에 굵게 빻은 햅쌀밥을 삼나무 꼬치에 말아 숯불에 노릇하게 초벌구이한 것으로, 은은한 불향이 맑은 장국과 어우러지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전통의 온기가 머무는 마을을 뒤로하고, 아키타에서 이와테현으로 향하면 풍경은 현대적인 웰니스 리조트로 바뀐다. 해발 600m 고원에 자리한 ‘ANA 크라운 플라자 리조트 앗피고원’은 36홀 규모의 골프 코스와 스키 슬로프를 갖춘 사계절 종합 휴양지다.
계절마다 다채로운 야외 액티비티를 만끽한 후 수준 높은 스파 시설에서 곧바로 재충전이 가능한 점이 인기의 요인이다. 탁 트인 고원의 청량한 공기와 수려한 산세를 배경으로 즐기는 36홀 라운드는 스트레스마저 한 번에 날려줄 만한 해방감을 선사한다.
필드를 누빈 뒤 쌓인 피로는 온천이 부드럽게 풀어준다. 탕으로 들어가 문을 열고 나가면 울창한 자작나무 숲을 배경으로 조성된 정원형 노천탕 ‘시라카바노유’가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한쪽에는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투숙객을 배려한 전용 키즈탕이 마련돼 있다. 정돈된 데크길을 따라 들어가면 온천수가 찰랑거리고, 고원의 맑은 바람과 피어오르는 수증기는 일상의 번잡함을 잊고 깊은 사색에 빠져들게 한다.
온천과 연못 경계가 사라진 ‘고요한 휴식’
전통 온천에 현대적인 시설과 엔터테인먼트를 결합한 곳을 찾는다면 ‘아오모리야 바이 호시노 리조트’가 제격이다. 네부타 축제 등 아오모리의 전통 축제와 향토문화를 현대적 시설로 체험하도록 설계된 ‘테마파크형’ 구성이 특징이다.
밤을 수놓는 네부타 축제의 열기와 투박한 향토의 숨결을 정갈하게 담은 공간을 통해 머무는 것만으로도 거대한 축제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설렘을 준다. 곳곳에 배치된 종이 등롱은 실내에서도 축젯날의 밤을 떠올리게 하고, 능금을 닮은 객실은 숙박객의 마음에 짙은 여운을 남긴다.
이곳의 온천은 수질이 특이하다. 미네랄 함량이 비교적 낮고 알칼리성이 강해 머리를 감아도 비눗기가 남은 듯 미끈거린다. 온종일 이어지는 일정에 푸석해진 피부가 탕에서 나오자마자 매끄럽게 정돈됐다.
이곳 온천의 백미는 연못 위에 조성된 노천탕 ‘우키유’다. 들어서면 탕의 수면과 연못의 경계가 희미해지며 하나로 겹치는 착시를 일으킨다. 따스한 온천수와 차가운 연못물이 수평선처럼 이어지는 풍경 너머로 북국의 원시림이 펼쳐져 있다. 노천탕이 선사하는 노곤함에 탕 안에 누워서 자는 이들도 여럿. 서늘한 밤공기가 이마를 스칠 때,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는 시간은 머릿속 번뇌를 씻어낼 만큼 청명하다.
탕에서 얻은 온기는 아오모리의 정취를 가득 품은 향토 뷔페식당 ‘노레소레’로 이어진다. 시골 야시장의 흥겨운 북새통이 묻어나는 내부는 그야말로 음식 천국이다.
붉은 숯불 위에서 익어가는 가리비와 노릇하게 구워진 장어 꼬치가 후각을 흔들고, 육즙이 흐르는 소고기 철판구이, 갓 튀겨낸 마늘과 새우의 고소한 향까지 더해져 식욕을 돋운다. 북국의 거친 바다에서 건져 올린 제철 해산물과 밭에서 막 거둔 채소로 꽉 채운 차림 상은 헛헛해진 여행자의 속을 풍족하게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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