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청소·시설·보안 등 하청노동자 근로조건 실질 지배
을지대병원 등 노동위서 사용자성 인정…병원은 교섭 미뤄
노조, 교섭 장기화 땐 쟁의조정 신청·파업권 확보 검토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대형병원 9곳이 청소·시설관리·보안 업무를 맡는 하청노동자의 사용자로 인정됐지만, 실제 원청과 하청노조 간 교섭은 아직 한 곳에서도 시작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병원들이 노동위원회 결정문 송달과 행정소송 검토 등을 이유로 교섭을 미루면서 노조는 파업권 확보까지 검토하고 있다.
13일 보건의료노조 등에 따르면 현재까지 대전 을지대병원과 조선대병원, 전북대병원, 이화의료원, 성빈센트병원 등 대형병원 9곳이 지방노동위원회나 중앙노동위원회에서 하청노동자의 사용자로 인정됐다.
병원 하청노동자들은 청소와 시설관리, 주차·차량관리, 장례식장 관리, 보안·경비 등 병원 운영에 필수적인 업무를 담당한다. 환자 안전과도 직결된 일을 수행하는 만큼 노동환경을 하청업체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는 게 노조 측 주장이다.
그러나 노동위의 사용자성 인정 결정이 실제 교섭으로 이어진 사례는 아직 없다. 병원들이 결정문을 받은 뒤 대응 방향을 검토하겠다며 교섭을 미루거나, 노동위 판단에 불복해 행정소송에 나설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어서다.
가장 최근에는 중앙노동위원회가 지난 10일 을지대병원을 하청노동자의 사용자로 인정했다. 중노위는 미화와 시설관리, 주차·차량관리, 장례식장 관리, 보안·경비 업무를 수행하는 하청노조가 산업안전과 작업환경, 복리후생, 인력 운용 등을 두고 교섭을 요구한 사안에서 을지대병원에 교섭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앞서 충남지방노동위원회도 병원이 하청노동자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한다고 봤다. 을지대병원에서 하청업체 소속 미화 노동자가 혼자 바닥 왁스작업을 하다가 미끄러져 산업재해를 입었고, 위험작업 인력 확충 문제도 병원과 협의해야 했다는 점이 판단 근거가 됐다.
미화 노동자들이 샤워시설 설치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화장실 옆 간이시설을 사용한 점, 휴게실 벽에 못 하나를 박는 데도 병원 허락이 필요했다는 점도 원청이 하청노동자의 근로조건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근거로 제시됐다.
이 사안은 지난해 병원과 하청업체 노사 간 단체교섭에서도 제기됐다. 당시 조정서에는 하청업체가 병원 측과 위험작업 인력 확대 등의 대책을 논의한다는 내용이 담겼지만, 이후 실질적인 협의는 진행되지 않았다는 게 노조 측 설명이다.
을지대병원은 중노위 결정이 나왔지만 실제 결정문을 확인한 뒤 교섭 절차에 들어갈지를 판단하겠다는 입장을 하청노조에 전달했다. 통상 결정문 송달까지 약 한 달이 걸리는 만큼 교섭이 더 늦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보건의료노조는 지난 6월 사용자성이 인정된 병원 4곳을 묶어 집단교섭을 추진했지만 병원들이 응하지 않으면서 개별 교섭으로 방향을 바꿨다. 노조는 원청과의 교섭이 계속 지연될 경우 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을 신청해 파업권을 확보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노동계 안팎에서는 사용자성 판단 이후 교섭 개시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절차를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동위 결정에 불복한 원청이 행정소송을 제기할 경우 교섭이 장기간 공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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