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도현정 기자]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개각을 앞두고 당내 인사들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는 실력 검증 등 ‘다카이치식 인사 혁신’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그러나 이면에는 개각 때마다 통상적인 절차였던 파벌 별 의견 수렴이 정치자금 스캔들로 불가능해졌기 때문에 새로운 방식의 인사를 도입했다는 속사정이 있다. 당내 기반이 부족했던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경쟁자의 영향력을 약화하고, 장기 집권을 위한 자신의 입지를 굳히는 계기로 활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지통신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다카이치 총리는 오는 16일에는 자민당 간부 인사, 17일에는 개각을 단행할 예정이다. 요미우리 신문은 이를 위해 다카이치 총리가 최근 당 소속 중의원들을 대상으로 직책 희망 설문조사를 실시했다고 전했다. 설문조사에서는 대상 의원들에게 정부나 당, 국회에서 맡고 싶은 희망 직책을 5지망까지 선택하게 했다. 지망 이유까지 받아, 다카이치 총리가 지난달 말부터 이를 정독하면서 인사 퍼즐을 맞추고 있다고 전해진다.
다카이치 총리는 개각과 당 간부 인사를 앞두고 “당선 횟수나 파벌 등을 따지지 않고 정책과 실력으로 뽑겠다”며 오직 실력으로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지난 8일 당 임원 회의에서 “모든 설문조사를 읽어보고 당의 풍부한 인재 풀을 실감했다”면서 개각에서 설문조사 내용을 중시하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는 기존의 집권당 인사 및 개각과 사뭇 다른 방식이다. 기존에는 정부 부처의 실무진인 부대신과 정무관, 국회 상임위 소속 등을 정할 때에만 희망 부처를 묻는 설문조사를 제한적으로 실시했다. 설문조사를 전면 실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총리가 첫 개각을 앞두고 ‘다카이치 컬러‘를 내세우려는 시도라 해석했다.
그러나 실상은 정치자금 스캔들로 자민당내 파벌이 모두 붕괴하다시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시도한 ‘불완전한 혁신’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기존에는 개각을 앞두고 자민당내 각 파벌이 입각을 희망하는 의원 명단을 짜서 총리(당 총재)에게 제출하는 게 관례였다. 총리는 이를 바탕으로 파벌별 분배와 입각 적령기의 인사들을 고려해 개각 명단을 짰다. 일본 정계에서는 흔히 중의원 당선 5회 이상, 참의원 당선 3회 이상이면서 각료 경험이 없는 이들을 ‘입각 적령기’라 불렀다.
그러나 2023년 불거진 자민당의 정치자금 스캔들로 아베파와 니카이파 등 당내 핵심 파벌들이 모조리 해산됐고, 현재 아소파(아소 다로 부총재)만 겨우 남아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파벌마다 명단 제출하고 ‘쿼터’를 받아 입각하는 일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정치자금 스캔들로 파벌이 해산된 이 시기를 당내 자기 영향력 확장의 계기로 삼는 모양새다. 파벌의 눈치를 덜 보면서 개각 등 인사권을 휘두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카이치는 대중적인 인기는 높지만 당내에서는 기반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를 이번 개각에서 자신과 당권 경쟁을 벌였던 이들을 정부와 당 지도부에 묶어두는 전략으로 만회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지지통신 등 현지 보도에 따르면 다카이치 총리는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 고바야시 다카유키 자민당 정조회장 등을 유임시키기로 했다. 이들은 지난번 당 총재 선거에서 자신과 경쟁했던 이들이다. 잠재적 경쟁자들을 내각과 당 요직에 묶어둬, 이들이 다음해 가을 총재 선거를 준비하지 못하게 하려는 전략에서 유임을 택했다는 것이다.
일본 정계의 관심은 하야시 요시마사 총무상이다. 하야시 총무상도 다카이치와 당권 경쟁을 벌였던 인물이다. 하야시 총무상은 벌써 주변에서 다음해 총재 선거에 재도전해야 한다는 권유가 나온다고 전해졌다. 하야시 총무상은 이를 두고 지난 8일 기자회견에서 개각 및 임원 인사에 대해 “총리의 전권 사항이므로 뭐라 말씀드리는 것은 삼가고 싶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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