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버설 픽처스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 ‘오디세이(The Odyssey)’ 개봉을 맞아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 초대형 트로이 목마를 설치하며 대규모 체험형 마케팅을 펼쳤다.
높이 11m, 무게 약 4톤에 이르는 트로이 목마는 넬슨 기념탑 아래 광장 중앙에 설치됐다.
조형물 제작에는 약 6주가 소요됐으며, 디자이너와 철골 제작자, 엔지니어 등 45명이 참여했다.
제작진은 영화 촬영에 사용된 설계도를 바탕으로 구조물을 완성해
영화 속 트로이 목마와 최대한 동일한 모습으로 구현했다고 밝혔다.
[ 사진 출처=@universalpicturesuk instagram]
유니버설 픽처스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 ‘오디세이(The Odyssey)’ 개봉을 맞아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 초대형 트로이 목마를 설치하며 대규모 체험형 마케팅을 펼쳤다. 높이 11m, 무게 약 4톤에 이르는 트로이 목마는 넬슨 기념탑 아래 광장 중앙에 설치됐다. 조형물 제작에는 약 6주가 소요됐으며, 디자이너와 철골 제작자, 엔지니어 등 45명이 참여했다. 제작진은 영화 촬영에 사용된 설계도를 바탕으로 구조물을 완성해 영화 속 트로이 목마와 최대한 동일한 모습으로 구현했다고 밝혔다. [ 사진 출처=@universalpicturesuk instagram]

지난달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는 트로이 전쟁을 끝낸 영웅 오디세우스가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 10년의 여정을 그린다. 목마로 트로이를 함락시킨 그는 바다 위에서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와 마주치고, 마녀 키르케의 섬에 상륙하며, 세이렌의 유혹을 통과하고, 괴물 스킬라와 소용돌이 카립디스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지난다. 그사이 고향 이타카에서는 오디세우스가 죽었다고 믿은 구혼자들이 그의 저택에 눌러앉아 재산을 탕진하며 아내 페넬로페를 겁박한다. 20년 만에 거지로 변장해 돌아온 오디세우스는 오직 자신만이 당길 수 있는 활을 시험 삼아 구혼자들에게 건네고, 아무도 그 활을 당기지 못하는 걸 확인한 뒤에야 정체를 드러내 심판을 시작한다.

호메로스의 이 서사시는 전쟁보다 더 길고 위태로운 귀환의 이야기다. 힘겹게 얻은 승리가 곧바로 결실로 이어지지 않고, 사이 사이에 수많은 함정과 유혹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데이터센터 투자 열풍을 지켜보다 보면, 이 신화의 장면들이 하나씩 겹쳐 보인다.

목마 : 거대한 몸집, 텅 빈 속

트로이 목마는 겉보기엔 신에게 바치는 웅장한 봉헌물이었지만, 속은 병사들을 숨긴 텅 빈 구조물이었다. 트로이 사람들은 그 거대한 몸집에 압도돼 성문을 스스로 열어젖혔다. 지금 미국 전역에 들어서는 데이터센터도 비슷한 그림이다. 엔비디아는 최근 아폴로글로벌, 블랙록, 블랙스톤, 브룩필드, KKR 같은 세계 최대 사모자본과 손잡고 5000억 달러 규모의 ‘AI 팩토리’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엔비디아는 이 리스 기간 내내 칩 가치가 최소 25%는 유지되도록 스스로 보증까지 서기로 했는데, 이 보증 덕분에 사모펀드들은 칩 리스 채권을 여러 위험 등급으로 쪼개 파는 담보부대출채권(CLO)과 비슷한 구조로 증권화할 수 있다. 반도체가 부동산이나 항공기처럼 채권시장에서 거래되는 자산으로 격상되는 셈이다.

걱정스러운 지점은 여기다. 이런 정교한 금융 포장이 실제 수요를 검증하는 장치가 아니라, 반도체 주가를 계속 떠받치기 위한 또 하나의 심리적 버팀목으로 쓰일 위험이다. 목마의 크기에 감탄하기보다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했던 트로이의 실수를, 지금 투자자들은 반복하지 않으려 하는 셈이다.

세이렌의 노래 : 1기가와트에 1000억 달러라는 유혹

세이렌은 지나가는 뱃사람을 노래로 흘려 배를 난파시킨다. 최근 시장을 흔든 세미애널리시스의 시뮬레이션이 꼭 그런 노래였다. 오픈AI와 앤트로픽이 가장 비싼 프리미엄 추론 서비스를 1년 365일, 하루 24시간 가동한다고 가정하면 데이터센터 1기가와트에서 연간 1000억 달러 넘는 가치를 뽑아낼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건설비가 380억~470억 달러 수준이니 얼핏 지으면 곧바로 몇 배 수익이라는 이야기로 들렸다. 문제는 이 노래가 인간이 잠도, 휴식도, 식사도 없이 1년 내내 전력 질주하는 상황을 가정한다는 데 있다.

실제 데이터센터의 평균 가동률은 60~70%에 그치고, 추론 요청은 시간대별로 들쭉날쭉하며, 모든 트래픽이 최고가 프리미엄 서비스로만 채워지지도 않는다. 정확한 비교를 하면 연간 1000억 달러 매출과 300GB 클러스터 연 임대료로 약 120억 달러 사이에서 이뤄져야 한다. 공교롭게도 이 노래를 부른 연구기관 세미애널리시스는 순수한 제3자가 아니다. 창업자가 개인적으로 투자한 스타트업이 20곳에 이르고, 그중 한 곳의 미공개 정보를 보고서에 활용하도록 압박했다는 소송까지 걸려 있다. 오디세우스가 몸을 돛대에 묶어 노래를 들으면서도 난파를 피했듯, 지금 투자자들에게 필요한 것도 이 노래에 취하지 않고 냉정한 숫자로 자신을 묶어두는 태도일 것이다.

키르케의 돼지 : 펜실베이니아의 돼지 농장

키르케는 자신을 찾아온 선원들에게 마법의 술을 먹여 돼지로 만들어버린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이 전한 실화는 이 장면을 묘하게 뒤집는다. 펜실베이니아주 세일럼타운십에서 30년 가까이 돼지를 치며 근근이 버티던 데이비드·마릴리 킬리티 부부는 데이터센터 개발업체로부터 2200만 달러를 제안받았다. “장난인 줄 알았다”는 이 부부를 포함해 96가구가 땅 1700에이커를 총 5억8600만 달러에 팔았고, 인근 지주들은 13억 달러 규모의 2차 거래를 논의 중이다. 신화에서는 돼지로 변한 게 저주였다면, 지금은 돼지 농장이 금맥으로 변하는 축복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변신에는 대가가 따른다. 텍사스 북동부 땅값은 에이커당 2만~4만 달러에서 35만 달러로, 버지니아 프린스윌리엄 카운티는 최대 100만 달러까지 치솟았다. 켄터키의 한 농가는 26년째 지켜온 땅에 2600만 달러 제안이 들어왔는데도 팔지 않겠다고 버텼다. “땅이 사라지면 우리 식량도 사라진다”는 이유였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농지가 하루아침에 황금으로 변하는 마법은, 그 마법을 건 주문이 풀리는 순간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도 작동한다는 걸 잊기 쉽다.

스킬라와 카립디스 : 지어도 위험, 안 지어도 위험

오디세우스는 여섯 개의 머리를 가진 괴물 스킬라와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소용돌이 카립디스 사이를 지나야 했다. 어느 쪽으로도 완전히 안전한 항로는 없었고, 키르케는 그에게 차라리 스킬라 쪽에 배를 붙여 선원 몇을 잃는 편이 배 전체를 잃는 것보다 낫다고 조언했다. 지금 빅테크의 처지도 비슷하다. 데이터센터를 계속 지으면 과잉 투자와 부채 리스크에 노출되고, 짓지 않으면 AI 경쟁에서 뒤처진다. 빅테크조차 잉여현금흐름을 이미 상당 부분 소진해 대출에 의존하고 있다. 무디스에 따르면 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알파벳·메타·오라클·코어위브 등 6개 기업의 직접부채는 약 4600억 달러, 부외 리스 약정까지 합치면 1조2000억 달러에 달한다. 1기가와트를 지을 때 대출 비중은 평균 70%에 달하고, 빅테크는 연 5~7%대 금리를, 코어위브 같은 네오클라우드 기업은 최근까지 연 10~15%대 금리를 감수해야 했다. 건설비를 회수하는 데만 4~6년이 걸리는데, 엔비디아의 신제품은 3년 주기로 나와 임대료를 반토막 낸다. 어느 쪽 괴물을 피해도 다른 쪽 소용돌이가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설상가상으로 정작 오디세우스의 배를 가볍게 해줄 순풍, 즉 추론 단가 자체도 계속 가라앉고 있다. GPT-4급 성능의 토큰 단가는 2023년 100만 개당 30달러에서 지금은 0.5달러 아래로 95% 넘게 떨어졌고, 지난 8월 초에는 중국 오픈소스 모델들과의 가격 경쟁으로 올해 최저치를 다시 갈아치웠다. 데이터센터를 지어 봐야 정작 그 위에서 팔릴 서비스의 단가가 계속 낮아진다면, 배는 가벼워지는 게 아니라 애초에 실을 짐 자체가 줄어드는 셈이다. 이런 와중에 마이크로소프트는 최근 데이터센터·서버의 감가상각 내용연수를 15년에서 25년으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실제로 자산 수명이 늘어난 것인지, 아니면 장부상 비용 부담을 뒤로 미루는 회계상의 선택인지를 두고 시장의 해석이 엇갈린다.

구혼자들의 향연 : 돌아오지 않을 것에 건 돈

오디세우스가 죽었다고 믿은 구혼자들은 그의 저택에서 20년 가까이 잔치를 벌이며 남의 재산을 탕진했다. 지금 데이터센터를 짓는 이들 중 상당수도 비슷한 도박을 하고 있다. 코어위브 같은 네오클라우드는 대부분의 자금을 대출로 조달해 데이터센터를 짓고, 이후 장기 임대 계약으로 빚을 갚아나가는 구조다. 코어위브의 총부채는 올해 6월 말 기준 350억 달러로, 3개월 전보다 100억 달러 넘게 불어났고, 분기 순이자비용만 6억4000만 달러에 달한다.

문제는 이 구조가 한국의 물류센터 사태와 판박이라는 점이다. 코로나 이후 물류 수요가 폭증하자 시행사들은 브릿지론으로 땅부터 사들여 물류센터를 지었지만, 실제 최종 임차인의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지면서 수도권 서부권역 공실률이 28%까지 치솟았고, 대출 연체율이 급등해 은행 건전성 문제로 번졌다. 동탄의 한 물류센터 개발사업은 4년째 브릿지론 만기를 연장하며 겨우 연명하고 있다. 지금 데이터센터를 향해 몰려드는 자금도, 진짜 수요가 돌아올 것이라는 확신이 아니라 누군가는 결국 빌려 쓰겠지 하는 기대에 기대어 있다면, 구혼자들의 운명을 피하기 어렵다.

활을 당길 수 있는 자 : 진짜 주인은 누구인가

오디세우스가 돌아왔을 때, 구혼자들은 그의 활을 서로 당겨보려 했지만,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다. 오직 활의 진짜 주인만이 그것을 다룰 수 있었다. 데이터센터 생태계에도 비슷한 비유가 가능하다. 자체 AI 모델을 가진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아마존 같은 빅테크는 인프라와 서비스 양쪽에서 수익을 만들 수 있는 진짜 활의 주인이다. 반면 코어위브 같은 임대 전문 네오클라우드는 실제 가동률이나 추론 단가와 무관하게 고정 임대료만 받는 처지이며, 그 신용조차 상당 부분 엔비디아나 빅테크의 보증에 기대고 있다. 데이터센터 임대 계약의 뒷단을 들여다보면 칩 제조사가 임대료를 보증하고, 빅테크가 그 보증을 다시 뒷받침하고, 건물주는 이 보증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다층 구조가 드러난다. 진짜 신용은 결국 활을 당길 수 있는 소수에게서 나온다는 뜻이다. 엔비디아가 지난달부터 네오클라우드의 미사용 GPU 용량을 고정가로 되빌려주는 백스톱 금융을 도입한 것도, 활을 당기지 못하는 이들을 떠받치기 위한 유사 안전장치인 셈이다.

오디세우스의 귀향이 알려주는 것은 기술이나 재산 자체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타카는 그대로 있었고, 활도 그대로 있었다. 사라진 것은 그 자리를 잠시 차지했던 구혼자들뿐이었다.

2000년대 초 닷컴버블 붕괴 때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통신회사 글로벌크로싱은 인터넷 수요가 폭발할 것이라 믿고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해저 광케이블을 앞다퉈 깔았다. 1999년 기업가치가 470억 달러까지 올랐지만 흑자를 낸 적이 없이 2002년 파산했다. 같은 해 파산한 월드컴은 자산 기준 1070억 달러 규모로, 리먼브러더스가 나오기 전까지 미국 역사상 최대 파산 기록을 보유했다. 인터넷 수요를 지나치게 낙관해 광케이블을 과잉 구축한 게 원인이었다. 런던과 뉴욕을 잇는 광회선 임차 비용은 1년 만에 월 3만 달러에서 5000달러로 83% 폭락했다. 이때 땅에 묻힌 케이블, 이른바 ‘다크 파이버’는 사라지지 않았다. 10여 년이 지나 초고속 인터넷과 스트리밍, 클라우드 컴퓨팅 수요가 뒤늦게 그 용량을 따라잡으면서, 헐값에 깔려 있던 이 광케이블이 오늘날 저렴한 인터넷 시대를 여는 밑거름이 됐다. 인터넷이라는 기술은 살아남았지만, 그 인프라를 깔았던 회사는 망했다.

AI와 데이터센터라는 기술 자체가 사라질 거라 걱정하는 이는 많지 않다. 다만 지금 그 위에 올라탄 투자와 부채, 아직 검증되지 않은 수요 사이의 간극이 얼마나 큰지가 문제다. 미국에서는 선거를 앞두고 데이터센터 반대를 공약으로 내건 주지사 후보들이 늘고 있다. 전기요금 인상과 수자원 고갈에 대한 지역 주민의 반발이 표심으로 이어지면서, 인허가 자체를 막는 입법 움직임도 확산하고 있다. 조 단위로 땅을 사들인 이들에게 인허가 불발이나 전력 공급 좌절은 최악의 시나리오다. 오디세우스는 20년 만에 자기 집으로 돌아와 오직 자신만이 당길 수 있는 활을 당겼다. 지금 데이터센터에 몰린 돈 중 얼마가 활의 진짜 주인, 즉 실제 AI 수요를 가진 이들에게 돌아가고, 얼마가 구혼자들의 몫으로 사라질지, 그 답은 아직 아무도 모른다.

크리스토퍼 놀란(1970- ) -----------------------------------------------------

영국 런던 출신의 영화감독·각본가·제작자. 《메멘토》, 《인셉션》, 《다크 나이트》 3부작, 《인터스텔라》, 《덩케르크》 등을 연출했다. 《오펜하이머》로 2024년 아카데미 감독상과 작품상을 받았고, 같은 해 아내이자 제작자인 에마 토머스와 함께 기사 작위를 받았다. 신화와 역사, 물리학을 넘나드는 거대한 서사를 제대로 풀어내는 감독이다. 신작 《오디세이》는 그의 커리어 사상 세 번째로 흥행 수익 10억 달러를 돌파했다.


bonsa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