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들에게 전원생활은 여전히 가슴을 뛰게 하는 ‘로망’이다. 푸른 숲과 맑은 공기, 깨끗한 물, 자연이 주는 생명 에너지와 느림의 미학까지.

그러나 막상 시골에 터를 잡고 살아 보면 농촌과 자연환경이 결코 단순하거나 평화롭기만 한 것은 아님을 깨닫게 된다. 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자연의 이면에는 도시 못지않게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또 하나의 환경이 존재한다. 바로 ‘영적 생태계’다.

과거 도시에 살 때 필자는 산을 자주 찾았다. 빼어난 풍광을 감상하고 산의 정기를 몸과 마음에 한껏 충전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산속 깊은 곳의 큰 바위나 계곡에선 뜻밖의 장면을 마주하곤 했다. 무속인들이 제사를 지내고 방치한 촛농과 향, 부적, 제물 등이 곳곳에 흉물스럽게 남아 있었다. 청정한 자연 속에 이질적이고 탁한 영적 흔적들이 뒤섞여 있는 모습은 찜찜했고, 때론 섬뜩하기까지 했다.

16년 전 강원도 산골에 귀농한 뒤 농촌 현장에서 마주한 ‘영적 생태계’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혼란스러웠다.

“산삼 위치를 점지받기 위해 한낮에도 일부러 잠을 청해 귀신을 불러들인다”라는 어느 자연인의 거침없는 귀신 얘기는 듣는 내 귀를 의심케 했다. 귀농·귀촌인 중에는 새로 매입한 땅의 발복을 기원하며 미신적인 의식을 치르는 이들도 의외로 적지 않았다. 그들 중엔 전직 교사나 박사, 기업체 대표도 있었다.

농촌 곳곳에선 소위 ‘이단’이라고 불리거나 정체를 알기 어려운 종교 시설이나 기도처도 쉽게 볼 수 있다. 이상한 사이비 종교나 변형된 유사 종교가 특정 지역이나 마을에 깊숙이 침투해 뿌리를 내리고 있기도 하다. 오랜 세월 토속 및 기복 신앙에 매몰된 마을에선 이 때문에 새로 온 귀농·귀촌인과 갈등을 빚기도 한다. 물론 이런 현상을 농촌 전체의 특징으로 일반화하는 것은 아니다.

도시를 떠나 자연으로 들어간다고 해서 저절로 영적으로 건강한 환경을 만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겉보기엔 청정하고 아름다운 농촌이지만 영적 환경이란 측면에선 오히려 도시보다 더한 미신과 주술적 신앙이 뒤섞인 ‘영적 오염 지대’일 수도 있다. 결국 어디에 사느냐보다 어떤 사람들과 어떤 영적 환경과 가치를 공유하며 살아가느냐가 훨씬 중요하다.

만약 내 영혼의 자유함과 평안을 얻고자 한다면, 청정한 자연환경 못지않게 그 지역과 마을의 영적 환경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건강한 공동체와 올바른 영성을 추구하고 함양할 수 있는 곳을 분별하는 일이다. 신앙인이라면 영적으로 깊고 건강한 기도원이나 교회 등이 자리한, 이른바 ‘영(靈)세권’을 택하는 것도 지혜로운 방법일 것이다.

인류는 지금 인공지능(AI) 시대에 들어섰다. AI가 인간의 지적 능력을 빠르게 확장하고, 피지컬 AI는 인간의 육체적 능력까지 보완·대체하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영·혼·육으로 이루어진 입체적 존재인 인간에게 이 시대가 던지는 근본적인 질문은 결국 ‘영성의 회복’이 아닐까.

이젠 전원생활도 청정한 ‘자연 생태계’를 넘어, 인간의 영혼까지 살리고 회복시키는 고차원의 ‘영적 생태계’를 지향해야 할 때다.

박인호 전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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