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시민 위한 문화예술, 휴식 새 명소로
[헤럴드경제=윤정희(울산) 기자]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와 함께 영남을 대표하는 3대 누각으로 불렸던 울산 ‘태화루’가 역사적 고증을 거쳐 재건돼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태화루가 재건된 것은 400년만의 일이다. 태화루는 앞으로 울산의 문화예술과 휴식의 새 명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울산시는 최근 중구 태화로에 위치한 태화루 경내에서 준공식을 개최했다. 태화루는 부지 1만138㎡, 총면적 731㎡ 규모로 지난 2011년 9월 착공돼 지난 4월 완공됐다. 총 사업비만 506억원. 이중 400여억원은 울산시 예산으로 마련됐으며, 100억원은 울산지역 기업인 에쓰오일 측이 지원했다.
주요 시설을 보면 태화루 본루(233.28㎡, 정면 7칸, 측면 4칸, 주심포 양식), 대문채(106.56㎡), 행랑채(32.4㎡), 사주문(7.29㎡), 휴게동, 문화동 등이 건립됐으며 야외공원 및 경관조명이 설치됐다. 주요 자재는 목재 425톤, 석재 806톤, 기와 4만 7818매 등이 투입됐다.
1990년 9월 태화루 중창을 염원하는 시민들의 뜻이 모아졌지만 2005년 8월에야 태화루 건립계획이 수립됐다. 2008년 5월 도시관리계획(역사공원)이 결정돼 2010년 4월 현재의 위치에 문화재 시굴 및 발굴조사가 이뤄졌다. 이후 2011년 9월 착공에 들어가 지난 4월 완공됐다.
이번 태화루 재건은 임진왜란을 전후로 멸실된 것으로 추정돼 역사적 고증을 통해 본래의 모습과 위치를 찾는 일이 급선무였다. 학계ㆍ시민단체 등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위원회를 발족해 태화루의 건축양식과 정확한 위치 등을 밝혀나갔다.
태화루의 연혁은 ‘삼국유사’와 김극기의 ‘대화루시서(大和樓詩序)’에서 알 수 있고 관련 시 문헌도 107건이나 지어졌다. 이들 문헌에 따르면 당나라에서 불법을 구하고 돌아온 자장(慈藏ㆍ590~658)이 643년(선덕여왕 12) 울산에 도착해 태화사를 세웠다고 전해진다. 태화루는 태화사 경내에 조성된 누각으로 태화강변 황룡연(黃龍淵) 절벽 위에 세워졌다.
오랜 세월을 견뎌온 태화루는 울산의 상징적인 공간으로 여러 차례에 걸친 중수로 명맥을 이어왔으나, 임진왜란을 전후해 낡아 허물어졌거나 멸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1668년 울산객사 학성관(鶴成館)이 재건되면서 울산 사람들은 객사 남문루를 ‘태화루’라고 칭하면서까지 그 명성을 간직해왔다.
자문위원회는 고려 중기 성종이 태화루를 다녀갔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영주 봉황산 부석사와 같은 양식인 주심포양식으로 태화루를 재건했다. 이 때문에 태화루의 모든 기둥은 상ㆍ하층부 보다 중층부가 한층 부풀어오른 모습을 하고있다.
울산시 관계자는 “태화루가 사라진 지 400여년이 흐른 현재, 울산시민의 염원이 결실을 맺어 원래의 자리를 찾고 우리의 품으로 돌아왔다”며 “과거 우리 선조들이 누정 그 자체로 문화를 만들어냈듯이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태화루는 문화ㆍ예술의 장으로, 그리고 교육ㆍ휴식의 공간으로 적극 활용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준공식을 마친 태화루는 시민들에게 곧바로 개방됐다. 이곳엔 문화해설사 두명을 배치, 매일 태화루를 찾는 1000여명의 시민들에게 태화루의 역사와 의의를 알려 역사ㆍ문화 도시 시민의 자긍심을 높여나갈 예정이다. 개방 시간은 담장안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동절기 오후 5시까지), 담장밖은 24시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