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장기기증 권영준씨 우연히 라디오방송 듣고 결심 이식후 몸 소중함 더 깨달아 “많은 사람들이 더 동참했으면”
‘순수장기기증’이란 가족이 아닌 타인 간 이뤄지는 장기기증을 말한다. ‘내 가족’을 위해 신체 일부를 떼어주는 것이 아니라 생면부지인 ‘남’을 위해 내 몸을 기꺼이 내어주는 것이다.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타인을 위해 수술대에 오르는 것, 그 자체로서 순수장기기증은 굉장한 희생이다.
지난 1991년 순수장기기증을 한 권영준(52·사진) 씨는 “이식인에게 내 신장을 기증하면서 그 분에게 내가 새 삶을 드린 것 같아 오히려 내가 더 뿌듯했다”고 말한다. 장기기증의 날(9일)을 맞아, 자신의 장기이식 수술이 진행됐던 아산병원에서 현재 자재팀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권 씨를 직접 만나봤다.
권 씨는 지난 1991년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설립 이후 23번째 장기 기증자다. 그가 처음 장기기증을 결심한 건 종교적인 믿음 때문이었다. 당시 권 씨는 장기기증 자체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다. 워낙 장기기증 자체가 국내에선 생소한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새벽 기도 나간 어머니가 켜놓은 기독교 라디오 방송에서 박진탁 목사(현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이사장)의 얘기를 접했다. 권 씨는 “라디오 방송에서 ‘우리나라에 장기기증본부가 생겼다’고 얘기하더라”며 “새벽에 나도 모르게 일어나 본부 번호를 적어놨다가 몇달 뒤 다시 생각나 전화를 걸어 상담을 받게 됐다”고 했다. 이후 권 씨는 본부를 통해 신장기증을 알게됐고 순수장기기증을 결심하게 됐다.
당시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권 씨는 “어머니 뿐만 아니라 가족들 모두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며 “오히려 주위사람들은 ‘잘했다’고 격려해줬다”고 했다.
권 씨와 이식인은 그해 12월 조직 검사를 하며 처음 만났다. 당시 권 씨는 27세였고 이식인은 26세였다. 권 씨가 처음 또래의 이식인을 봤을 때, 들떠있는 자신과 달리 이식인의 표정은 굉장히 어두웠다. 이식인은 “(장기를 이식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희망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권 씨를 만나기 전, 이식인의 신장 이식이 이미 세차례 취소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어떤 기증자는 스스로 도망을 갔고 또 다른 기증자는 수술 직전 가족들이 와서 강제로 끌고 갔다. 그래서 이식인에겐 ‘진짜 이식을 받게될 거라는 기대’는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권 씨와의 장기이식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이식인의 표정도 몰라보게 좋아졌다. 삶을 새롭게 사는 사람처럼 성격도 밝아졌다. ‘이식인의 근황을 알고 있냐’는 물음에 권 씨는 “1년에 한 두번씩은 연락하고 지내는데, 지금은 결혼도 해서 애가 넷이라더라”며 “나는 딸 하나인데, 자식 수로는 졌다(웃음)”고 했다.
장기 이식 후 그의 건강상태는 어떨까. 권 씨는 오히려 “더 건강해졌다”고 말한다. 1년에 꼭 한 번씩 걸리던 큰 감기도 안걸리고. 오히려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다. 권 씨는 장기를 기증하면서 본인의 몸에 대한 소중함과 신성함을 더 깨달았다고 한다. 그래서 더 관리하고 건강해지려고 노력할 수 밖에 없다고.
그는 “기증했다는 것 자체가 내가 건강한 사람이라는 증거 아닌가”라며 “건강검진을 할 때마다 신장쪽 초음파 검사를 하는데 의사들도 있어야 하는 자리에 신장이 없으니깐 이상해 한다. 그래서 내가 ‘거기 콩팥 없는데요’라고 말해줘야 한다(웃음)”고 자신의 건강을 확신했다.
권 씨는 장기기증을 통해 “삶을 더 귀하게 살 수 있다”고 했다. 타인에게 새로운 삶은 준 만큼 본인 스스로도 함부로 살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자신의 몸과 인생에 대해 더 신중하고 조심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런 권 씨는 25년 전 장기이식 이후, 매번 살아가는 의미를 더 풍부하게 느낀다. 남들이 안하는 일을 했기 때문에 스스로도 더 잘했다는 자부심도 있다. 권 씨는 “이 세상에 와서 다른 사람에게 새 생명을 주는게 얼마나 큰 의미인가”라며 “많은 사람들이 장기기증에 동참해서 좋은 일이 널리 퍼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구민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