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산업화의 현장에는 뜨겁게 달궈진 철판 앞에서, 빠르게 회전하는 절삭공구 곁에서, 쉼 없이 움직이는 생산라인 위에서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켜온 직업계고 출신 기술인들이 있었다. 손에 익은 기술은 시간이 지나며 숙련이 되었고, 그 숙련은 결국 우리 산업을 움직이는 힘이 되었다. 누군가는 관리자와 기술전문가로 성장했고, 누군가는 후배를 가르치는 또 다른 현장의 스승이 되었다.

그러나 디지털 전환과 인공지능 확산을 중심으로 반도체, 바이오, 로봇 등 첨단산업이 주도하는 새로운 산업 전환기에 기업들은 더는 단순한 기능만을 요구하지 않는다. 기술을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하며, 끊임없이 배우는 사람을 찾고 있다. 직업계고 학생들이 이러한 첨단산업으로 나아가는 길은 여전히 좁고, 기회는 충분히 열려 있지 않다.

더 안타까운 것은 출발선의 차이다.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한국장학재단을 통한 국가장학금 등 다양한 지원을 받으며 사회로 나갈 준비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반면, 여러 이유로 직업계고를 선택하고 졸업과 동시에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청년들에게는 이러한 지원이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다. 같은 청년이지만 출발의 무게는 절대 가볍지 않다.

직업계고생의 선택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 지역의 미래와도 연결된다. 첨단기술 교육을 받은 인재들이 지역에 남아 일한다는 것은 기업의 인력난을 덜고 지역 산업에 활력을 불어넣는 일이다. 동시에 청년 인구의 수도권 유출을 완화하고 지역 내 정주 기반을 강화함으로써 지역 경제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길이다. 직업계고 졸업생의 취업은 단순한 일자리가 아니라 지역의 내일을 이어가는 이야기인 셈이다.

하지만 직업계고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을 교육과정에 즉시 반영하기 어렵고, 고가의 장비와 실습 인프라 부족, 전문 교원 확보의 한계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학교만의 노력으로 해결되기 어렵다. 오히려 학교 밖의 자원과 손을 맞잡을 때 비로소 길이 열린다. 대학과 훈련기관, 연구기관의 인프라를 활용해 학생들의 전공 역량을 키우고, 기업 현장전문가들이 교육에 참여해 실제 일에 바로 적응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 필요하다. 동시에 교원들에게도 첨단 분야를 경험하고 배울 기회를 넓혀, 가르치는 힘 자체를 키워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고용노동부의 미래유망분야고졸인력양성 사업은 의미가 크다. 진로탐색, 전공심화, 취업역량 강화 등의 학년에 맞는 훈련프로그램이 외부 기관 및 현장 전문가와 연계되어 지원하며 직업계고생의 첨단 산업 진출을 돕고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단순한 취업이 아니라, 학생들에게 미래 성장경로를 보여주는 일이다. 자신의 역량과 적성에 맞는 배움의 기회가 이어질 때, 직업계고 출신 인재들도 충분히 첨단산업을 이끄는 핵심 인력으로 성장할 수 있다. 직업계고를 살리는 일은 결국 지역 산업의 미래를 살리는 일이다.

민준기 한국기술교육대학교 컴퓨터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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