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국제표준화기구(ISO)에 제안한 한국식 원전 해체 표준안이 마침내 ‘신규작업표준안(NP)’으로 최종 승인됐다. 선진국의 원전 건설·운영 기준을 받아들이기만 하던 한국이 원전 해체 분야에서 세계 표준을 세우는 도전에 나섰는데, 그 첫 관문을 통과한 것이다. 500조원 규모로 예상되는 글로벌 해체 시장에서 국내 기업이 유리한 고지에 올랐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신규작업표준안이란 국제 표준을 정하는 첫 단추로 작업반 초안(WD), 위원회 안(CD), 최종안(FDIS) 도출을 거쳐 표준 채택까지 네 단계를 더 밟아야 한다. 그럼에도 한국 안이 최종안으로 채택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한다. 미국 일본 중국 등 주요 회원국 9곳이 ‘한국 초안으로 작업하자’는 데 찬성했으며 한국 초안 외엔 검토 중인 대안이 없어서다. ISO는 2027년 말까지 최종 국제 표준을 도출할 계획이다.
원전은 건설만큼이나 해체도 어렵다. 원전의 운전 과정에서 생성된 방사성물질을 제거하고, 해체 과정에서 발생한 방사성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리한 후 건설 이전의 깨끗한 자연환경으로 되돌리는 모든 과정이 고도의 기술력과 축적된 경험을 요구한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2050년까지 전 세계에서 최대 588기의 원전이 영구 정지될 전망이다. 기당 해체 비용을 고려하면 시장 규모는 500조원을 웃돈다. 그런데 원전 해체 완료 경험이 있는 국가는 미국 독일 일본 스위스 등 4개국에 불과하다. 상업용 원전까지 해체해 본 나라는 미국이 유일하다. 그만큼 진입장벽이 높다.
국내 원전 해체 분야는 한국수력원자력과 두산에너빌리티, 그리고 현대·대우 등 대형 건설사 등을 중심으로 기술이 성숙하는 단계다. 한국 안이 원전 국제 표준으로 확정되면 이들 기업이 진행 중인 고리 1호 원전 해체 사업과 맞물려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작년 11월 고리 1호기 내부·야드 설비 해체 공사에 들어갔고, 고리 1호기 원자로 상부 헤드 처리 공사는 지난달 한전KPS가 사업자로 선정됐다. 국내 기업이 해외 원전 해체시장에 뛰어들려면 해체사업에 대한 ‘실적’이 필수다. 또 한국 안이 세계 기준으로 자리 잡으면 해외 입찰 경쟁에서 국내 기업의 진입장벽이 획기적으로 낮아질 것이다. 고리 1호기 해체 프로젝트가 500조 글로벌 시장 진출의 기폭제가 되도록 원전 산업계는 물론 정부도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
우리나라는 1978년 턴키 방식으로 원전을 도입한지 30여년 후 원전 수출국에 올랐다. 원전의 건설과 해체 전 주기에 걸쳐 기술 강숙에 오르려면 더 많은 준비와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탈원전’ 같은 갈팡질팡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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