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우 한국화재보험협회 부이사장

이승우 한국화재보험협회 부이사장
이승우 한국화재보험협회 부이사장

재난은 가혹할 정도로 불평등하다. 누군가에게는 잠시의 불편함일 수 있는 화재가, 경제적 기반이 취약한 이들에게는 삶의 근간을 흔드는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이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화재안심보험이라는 사회적 안전망 도입을 진지하게 논의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 사회는 그간 재난 피해 복구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꾸준히 마련해 왔다. 다중이용업소 화재배상책임보험, 재난배상책임보험 등 의무보험 제도가 도입되면서 피해자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기반은 확장됐다. 그러나 화재 위험에 가장 취약하고, 피해 이후 회복 능력이 가장 낮은 취약계층을 보호하는 화재보험 안전망은 여전히 충분치 않다. 이들이 재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정책의 초점은 가장 재난에 취약한 시민의 회복까지 보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이미 그 가능성을 실질적인 성과로 증명하고 있다. 경기도는 약 37만 화재취약계층 가구를 대상으로 화재안심보험 가입을 지원하고 있다. 보험 개시 불과 4개월 만에 약 4억5000만원의 보험금이 지급되거나 지급 예정인 것으로 집계됐다. 보일러실 화재를 겪은 이천시 수급자 가구부터 주택 전소로 막막함에 처했던 양평군 사례, 전동휠체어 사고로 이중고를 겪은 안산시 장애인 가구에 이르기까지 피해 주민들은 이 보험을 통해 최소한의 삶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특히 실화로 인한 이웃의 피해까지 보상한 사례는 이 보험이 개인의 재기를 넘어 공동체의 붕괴를 막아주는 사회적 방벽임을 입증한다.

이러한 안전망이 견고하게 작동하려면 정부와 손해보험회사, 한국화재보험협회의 유기적인 3자 협력이 필수적이다. 정부는 취약계층의 문턱을 낮추는 정책적 결단을 내리고, 협회는 축적된 리스크 관리 역량을 바탕으로 철저한 안전 점검과 예방 활동을 수행하며 사회안전망 확충에 이바지해야 한다. 손해보험회사의 전향적인 동참도 필요하다. 손해율에 대한 우려가 있을 수 있으나, 재난 취약계층을 위한 보험 인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가장 실천적인 사회공헌이다. 이 3각 축이 맞물릴 때 비로소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촘촘한 사회적 안전망이 완성될 수 있다.

이제는 서울시가 적극 나설 때다. 쪽방촌, 반지하, 노후 다세대주택 등 화재 취약 환경에 놓인 시민이 여전히 많다. 화재안심보험 도입은 도시의 지속 가능성을 지탱하는 안전 복지의 기본값이 돼야 한다. 재난은 늘 약한 곳을 먼저 덮치고 가장 오랜 상처를 남긴다. 공공의 안전망은 가장 취약한 곳부터 차곡차곡 채워져야 한다. 화재안심보험은 서울시가 가장 어려운 시민의 손을 놓지 않겠다는 약속이자, 무너진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희망의 마중물이다. 이 제언이 서울의 안전 격차를 해소하는 제도적 결실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psj@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