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저성장 구조서 수출ㆍ투자보다 소비가 중요”
대기업 중심주의 탈피…양극화 해소, 가계복지 강조
“한은, 양극화 등 국민경제 문제 신경써야”
[헤럴드경제=강승연 기자]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가 2일 저출산ㆍ고령화 현상이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을 가로막는 최대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전 총재는 이날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관에서 열린 한은 간부 대상 조찬포럼에서 ‘한국 경제 위기와 구조개혁’을 주제로 강연을 한 뒤 취재진과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박 전 총재는 “지금 한국의 경제 위기는 잠재성장률이 2∼3%까지 떨어져 있고 앞으로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면서 “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저출산ㆍ고령화 문제는 최대 성장 걸림돌이자 장기침체의 가장 큰 원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후년부터 우리나라 인구가 줄고 생산가능인력은 더 크게 줄어든다”면서 인구 감소에 따른 수요 하락으로 장기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 하락)이 발생할 가능성을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우려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혼을 기피하는 원인인 출산과 육아, 교육 등의 부담을 사회가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출산과 육아 비용, 적어도 고등학교까지의 교육비는 사회가 부담하고 여성들이 직장에서 임신과 출산에 따르는 불이익을 겪는 일이 사라지도록 해야 한다”면서 “정부는 그린벨트에 신혼부부 전용 장기 저리 임대주택을 설치하는 등 저소득 신혼부부의 주거 문제의 어려움을 제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특히 박 전 총재는 저성장의 구조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수출, 투자보다도 소비를 늘리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그동안 우리 경제는 수출과 투자가 성장을 주도해왔다. 수요는 걱정할 필요 없이 공급만 늘리면 됐다”면서 “그러나 우리 경제를 지금까지 이끌어온 산업화 시대의 엔진이 작동하지 않게 됐다. 과거에는 수출과 투자가 두 자리 수로 증가해 7∼8% 성장했지만 이제는 수출과 투자에 맡겨선 2%대 이상 성장도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 같은 상황에서 우리 경제를 끌고나갈 수 있는 것은 소비밖에 없다”면서 “경제 성장의 전략 변수가 소비가 됐다”고 역설했다. 과거처럼 대기업의 수출ㆍ투자만 성장 견인 요소로 보고 가계 소비는 성장 바람을 빼는 누출로 인식하는 이분법적 시각이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때문에 가계 소비를 늘릴 수 있도록 빈부격차를 줄이거나 일본처럼 정부가 소비쿠폰을 나눠주는 등 정책적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계의 소비 증가를 가로막는 낮은 소득 수준에 대해서는 “가계소득을 늘려주는 게 복지다. 근데 지금 국민의 복지 수준이 너무 떨어져 있다. OECD 34개국 중 꼴등 수준”이라고 비판하고 “과거의 선(先)성장, 후(後)복지에서 성장ㆍ복지 병행으로 가자”고 주장했다.
최근 논란이 됐던 전기요금을 구시대적 모델의 대표 사례로 들기도 했다. 가정용 요금이 산업용 요금보다 비싼 한전의 가격 구조가 가계 소비를 ‘성장 누출’로, 대기업 생산은 ‘성장 견인’으로 보는 구시대적 구도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박 전 총재는 한은의 역할과 관련해 “과거 한국이 심한 인플레이션 경제일 때는 중앙은행의 일이 인플레이션과 싸우는 것이었지만 이제는 실업과 양극화 등의 문제가 중요한 이슈가 됐다”면서 “한은이 독자적 판단 아래 정부와 협력할 것은 협력하고 중앙은행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옳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한은은 인플레이션뿐만 아니라 경제 성장, 고용, 넓은 의미에서의 양극화 문제를 포괄해서 국가 경제에 폭넓게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고 지금 한은이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서 “앞으로 금리 결정, 가계부채, 부동산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중장기적인 국민경제 문제에 계속 많은 관심을 갖고 임해달라”고 당부했다.
한편 박 전 총재는 2002년부터 2006년까지 제22대 한은 총재를 역임했으며 중앙대 교수,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 건설부 장관 등을 지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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