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이란 폭격 직후 이재명 대통령은 싱가포르와 필리핀을 국빈 방문하기 위해 출국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는 대국민 메시지를 남긴 채 위성락 국가안보실장도 대동하고 예정된 아세안 정상외교에 나섰다. 브라질의 루이스 룰라 대통령의 방한에 이어 인도네시아의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의 방한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남방정책의 주요 파트너인 동남아국가연합과 ‘브릭스’ 국가들을 중심축으로 실질적인 국익 다변화 외교를 강화하는 것이 격동하는 세계 정세 속에서 한반도가 나아가야 할 이정표임이 틀림없다.

미국이 핵 협상 상대국인 이란의 국가지도부 수십명을 폭살시켰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은 올해 1월 초에도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부부를 무력으로 체포 압송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미국의 군사력과 정보력은 전쟁영화와도 같은 정밀타격으로 강대국의 냉엄한 면모를 보여준다. 그러나 타국의 국가원수 참수 작전뿐만 아니라 이번 이란 폭격으로 여자 초등학생 165명이 숨지는 전쟁사상 유례없는 참사를 빚었다. 이스라엘도 미국의 공습에 가담한 조력자였다. 미국 국민 25%만이 이란 공습을 지지하는 것으로 여론조사 결과 나타났다. 누구도 이런 비극을 과연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고 하지는 못할 것이다.

미국의 이란 폭격이 한반도에 던지는 메시지는 북한과의 핵 협상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주 9차 노동당대회에서 “미국과 좋게 못 지낼 이유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것이 북한에 대한 미국의 ‘핵 보유 인정’을 전제로 한 것이라는 점에서 이란 핵 협상과 전혀 다른 케이스라고 볼 수만도 없다. 미국의 폭격으로 이란 지도부 수십명이 폭사한 날 김정은 위원장은 시멘트공장을 시찰하는 공개 행보를 보였다. 핵탄두 40여개와 이것을 탑재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탄 수준의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이 공격하기 어려운 억지력을 갖추었다는 자신감일 것이다. 중국 러시아와 인접해 있다는 지정학적 요인도 북한의 힘이다.

미국의 중동전쟁과 때를 같이해 일본에서는 중의원 선거에서 압승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전쟁 가능국’으로 가는 개헌을 준비하고 있다. 군사력 강화와 함께 일본판 CIA라는 국가정보기관 설립을 추진 중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의원과 각료 시절 2차대전의 전범들이 합장돼 있는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을 바치고 참배해 온 강경 보수 성향이다. 그가 총리에 오르자, 오랫동안 자민당의 연정 파트너였던 보수진영의 공명당이 결별했으며 그보다 더 강경 보수인 일본유신회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일본의 집권세력이 더욱 강경 보수화한 것이다.

2차대전의 전범국으로서 패전한 일본에게 전쟁과 무력행사를 영구히 포기한다는 조항을 담은 ‘평화헌법’을 부여한 것은 미국 주도의 전승 연합국이었다. 이 헌법은 육해공 군대 보유와 국가 교전권도 금지하고 있다. 2차대전 종전 후 지금까지 국제질서를 형성한 핵심 규범 중 하나다. 일본의 재무장과 전쟁 가능국 개헌이 국제 합의를 넘어서는 주권 사안이 될 수 없는 이유다. 특히 일본의 식민 지배 피해당사자인 한반도와 동아시아 국가들에게 일본의 재무장은 결코 남의 나라 주권 사안이 아니다. 2차대전의 같은 전범국이면서 왜 일본은 독일과 전혀 다른 길을 가는지 따져야 한다.

김재홍 서울미디어대학원대 석좌교수 ESG실천국민연대 상임의장 (전 서울디지털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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