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한 ‘親민주’ 유대인 집안 출신 엘리트의 변심
학창시절부터 보수성향 기울어지며 ‘극우 새싹’
언론활용해 선동하며 세력 집결 ‘트롤링’의 귀재
전권 휘두르면서도 책임 기록은 교묘히 피해
트럼프 만나 선동가서 정책 책사로 변모
이민자 배척은 ‘소명’…외삼촌도 “위선자” 비판
이민자 강경 진압 반대는 “국내 테러” 규정
시민 2명 숨진 미네소타 사태 확산 해법 관심
[헤럴드경제=도현정 기자]그린란드 이슈에 가려져 논란이 크지 않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1일(현지시간) 세계경제포럼(WEF)에서 한 연설은 ‘순도 높은 인종차별’이란 비판을 받기도 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내 소말리아인들이 정부 지원금 수령 사기를 저질렀다며 “소말리아 도둑들이 훔쳐간 190억달러(약 28조원) 이상의 사기 사건을 단속하고 있다. 나는 항상 그들이 지능이 낮다고 말해왔는데, 그들은 우리 생각보다 지능지수(IQ)가 높은 것으로 판명 났다. 어떻게 미네소타에 들어와서 그 모든 돈을 훔칠 수 있었단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그는 “이는 서방이 스스로 성공적인 사회를 건설해 본 적 없는 이질적인 문화를 대량으로 수입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고 질타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날 트럼프의 연설에는 백악관 부비서실장이자 그의 가혹한 이민 정책을 설계한 스티븐 밀러의 흔적이 역력했다. 이는 미국 우파 진영에서 곪아가고 있는 ‘백인 정체성 정치(white identity politics) 담론’과 정확히 일치했다”라고 평가했다.
스티븐 밀러가 누구길래, 언론이 연설 내 ‘순도 높은 인종차별’에서 ‘밀러의 작품’임을 단박에 알아챌까?
학창시절부터 싹튼 극우·보수 성향...일찍부터 언론플레이에 통달
스티븐 밀러의 공식 직함은 백악관 내 비서실장 아래인 부비서실장이자, 국토안보보좌관 겸임이다. 그러나 정책이 실행되는 과정에 미치는 영향력을 보면 부통령에 버금가는 2인자라 해서 ‘그림자 총리’, ‘밀러 총리’라 불린다.
트럼프의 연설에서 짐작되듯 그는 극우파, 인종차별주의자 등의 비판을 달고 산다. 그 뿌리는 아이러니하게도 이민자에다 민주당 지지 성향의 부유층이다. 그의 외가는 1903년부터 1906년 사이에 증조부부터 시작해 차례로 현재 벨라루스인 러시아 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유대인 학살을 피해 이민온 그의 외증조부는 당시 수중에 8달러만 쥐고 있었고,영어는 한 마디도 할 줄 몰랐다고 전해진다. 그의 외가는 각고의 노력과 성실함으로 가업을 일으켜, 지역의 유력 유통업체를 운영할 정도가 됐다.
아버지는 변호사에다 가업으로 부동산 사업을 물려받은 부유층이었다. 대대로 민주당을 지지해온 집안이었다. 밀러는 유독 이런 가풍에서 벗어나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유대인 학교를 다녔던 유년 시절에 학교에서 히브리어 대신 영어를 써야 한다고 주장하며 학교 정책에 반대했다는 일화가 있다. 사춘기에는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공립고교에 가면서 이런 고집이 더 극단적인 형태로 드러났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밀러는 고교 진학 직전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던 제에슨 이슬라스에게 그가 라틴계여서 더 이상 친구로 지낼 수 없다며 ‘절교 선언’을 했다. 이후 산타모니카 고등학교에서 다문화주의와 정치적 올바름(PC주의)에 반대하는 활동을 거침없이 이어갔다. 산타모니카 고등학교는 히스패닉계 학생들이 많아 영어와 스페인어, 두 언어로 방송했는데, 밀러는 학교의 스페인어 방송 사용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모든 친척이 리버럴 민주당원이었다. 보수주의자는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고교 시절 역사와 정부 과목이 애국심을 저해하고 공유된 미국의 정체성을 증진하는 데 실패했다는 이유로 선생님께 대들기도 했다.
그는 일찌감치 언론을 활용해 자신의 극단적인 주장으로 지지층을 결집시키고 상대 진영의 분노를 유도해 정치적 이익을 얻는, 이른바 ‘트롤링’에 능숙했던 것으로 보인다. 고교 시절 그가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주로 활용했던 도구는 언론이었다. 16세때에는 지역 신문에 기고문을 써, 학생들이 정치적 올바름을 맹목적으로 따른다며 비판한 바 있다. 또 보수성향의 정치인이자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인 래리 엘더에게 이런 비판을 전달해, 이후 밀러가 그의 라디오 방송에 수십차례나 출연하며 극우성향의 주장을 맘껏 펼치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 이후 밀러는 지역방송 토크쇼에 출연하고, 지역 신문에도 자주 기고하면서 ‘보수 세력의 새싹’으로 자랐다.
트럼프 연설문 작성하며 속내 정확히 짚어...이민정책 ‘브레인’ 역할
‘정치적 트롤링’ 실력을 타고난 그가 정치권으로 발을 들인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주로 공화당 의원들의 공보 보좌역을 해온 그는 제프 세션스 의원실에서 향후 트럼프 행정부로 이어지는 인연 두 가지를 만들었다.
검사 출신 정치인인 세션스는 오랜 공직 생활 내내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비판을 받아온 인물이다. 그는 1986년, 연방 지방법원 판사로 지명됐다가 인종차별 의혹으로 지명이 철회된 전력도 있다.
세션스와 밀러는 여러모로 죽이 잘 맞았다. 세션스와 마찬가지로 이민에 강력히 반대해온 밀러는 2013년 초당적 이민개혁법안을 세션스가 무산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세션스는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법무부장관이 되면서, 선임 정책고문이 된 밀러와 다시 손발을 맞추게 됐다.
밀러는 세션스의 공보 책임자 역할을 하면서 보수 언론 브라이트바트 뉴스를 창설한 극우 인플루언서 스티브 배넌과 연을 맺게 됐다. 배넌은 그를 트럼프 대선 캠프로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
밀러는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2016년 트럼프의 연설을 처음 들었을 때 “영혼에 전기가 통하는듯한 충격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러나 스티브 배넌이 이후 회고록에서 폭로한 바에 따르면 밀러는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에 회의적이어서 캠프 합류를 주저했고, 배넌이 밀러를 설득해 그를 수석 정책 고문으로 합류시켰다고 한다.
기존 정치 문법과는 다른 트럼프 1기 행정부의 ‘돌발 정책’들은 대부분 배넌과 밀러의 합작이었다. 둘이 짠 전략은 이러했다. 첫째, 의회를 거쳐야 하는 법률대신 대통령이 발표만 하면 시행되는 행정명령을 활용한다. 둘째, 취임 초기 수많은 행정명령을 단기간에 쏟아내서 상대 진영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도록 한다. 셋째, 이민 정책은 불법·합법 여부를 따지지 않고, 외부인의 유입을 최대한 차단하는 정책을 기반으로 한다.
이 중 첫째와 둘째 전략은 트럼프 2기에서도 활용되고 있다. 둘은 세번째 전략을 위해 기존 보수 정권에서도 금기시됐던, 불법 이민자의 부모와 아이를 분리하는 방안이나 불법 이민자의 미성년 자녀는 성인이 될 때까지 국외로 추방시키지 않는 DACA 정책을 폐지하는 방안, 무슬림 인구가 많은 7개국 국민의 입국을 금지하는 방안 등을 내놨다.
이는 대부분 연방 대법원에서 제동을 받았다. 법적 근거도 미약하고, 지나치게 극단적이어서 현 제도에서 수용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자신의 구상이 번번히 사법부에 의해 막히자, 밀러는 여러 방송에 출연해 “우리나라를 보호하기 위한 대통령의 권한은 매우 막중하며, 결코 의문시될 수 없다”며 반(反) 이민에 대한 여전한 맹신을 내비치기도 했다.
교묘한 가스라이팅, 대통령 앞세우고 본인 빠지기 전략으로 관료사회 압도
미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가 1기 행정부에서 밀러의 역할을 조명했던 보도에 따르면 밀러는 교묘한 방법으로 행정부 내에서 영향력을 넓혔다. 우선, 회의는 항상 이민자 범죄로 희생된 미국인들의 사례를 언급하며 시작했다. 그가 “우리는 미국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민자 범죄자들로부터 미국인을 구해야 한다!”고 외치면서 회의를 시작하면, 누구도 강경한 이민 정책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기 어려워진다. 참석자들을 상대로 ‘가스라이팅’을 한다는 것이다.
국내 치안과 이민 정책에서는 사실상 전권을 휘두르면서도, 자신의 책임 소재는 기록으로 남겨두지 않는다는 것도 밀러의 특징이다. 폴리티코는 밀러가 e-메일을 극도로 피하고, 문서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지 않고, 디지털 파일 대신 손으로 문서를 수정하는 등 ‘증거(paper trail)’를 남기지 않으려 한다고 전했다.
자신은 뒤로 빠지면서 트럼프를 앞세워 행동하는 것도 밀러가 관료 조직을 장악한 요인 중 하나다. 회의에서 밀러는 “대통령이 믿기로는” 또는 “대통령의 생각은” 등의 언급을 자주 했다. 대통령의 의중을 앞세우는데, 이의를 제기할 관료는 없다. 당시 행정부 관리는 폴리티코에 “밀러는 ‘결과가 무엇인지 말해줄 테니, 거기에 도달하도록 작업하라’는 식의 접근 방식을 취했다”고 말했다. ‘답은 정해져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된다’는 일명 ‘답정너’식으로 정책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한 전직 NSC 관리는 무슬림 7개국의 미국 여행 금지 명령을 추진할 때를 두고 “사람들은 그때 ‘이 사람, 스티븐이 바로 이민 대통령이구나’라고 깨달았다”고 전했다.
이민은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치는 현안이다. 이민은 보건의료제도·교육제도·공공안전·국가안보·경제·금융제도에 영향을 미친다. 이민의 목표는 우리 사회의 활력과 단결과 단란함과 견고성을 높이는 이민제도를 만드는 데 있다
배넌은 트럼프의 사위 제러드 쿠슈너와의 권력싸움에서 밀려나면서 백악관을 나오게 됐다. 밀러는 이후 배넌과는 거리를 두면서 백악관에서 홀로 남은 ‘대안 극우’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했다. 트럼프의 정적, 제임스 코미 당시 FBI 국장을 해고하는데 앞장섰고, 미국으로 향하는 이민선에 대한 드론 공격이나 주요 도시에서 미등록 이민자 가족을 대량 체포하는 것도 제안했다. 미국이 IS 수장 아부 바르크 알바그다디를 암살한 후에는 다른 테러리스트들에게 경고하기 위해 그의 머리를 돼지 피에 담가 퍼레이드를 하는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는 행정부 내에서도 만류했던 제안들이다. 코미 국장 해고는 돈 맥간 백악관 법률고문이 반대했으나 밀러가 로드 로젠스타인 법무부 부장관을 압박해 밀어붙였고, 알바그다디 암살 이후 퍼레이드는 마크 에스퍼 국방부장관이 ‘전쟁범죄’라고 만류할 정도였다. 이 중 이민자 체포 제안은 커티스 닐슨 국토안보부장관이 반대했으나, 결론적으로 닐슨 장관이 사임하면서 밀러가 국토안보부 내 ‘온건파’를 대대적으로 숙청하는 결과 낳았다. 밀러는 이를 닐슨 장관의 무능으로 포장해 언론에 흘리면서, 닐슨 장관의 사임을 받아냈다.
충성심으로 트럼프 2기서 ‘실세’ 굳힌 이민 배척자, 한국인 구금사태 낳기도
위의 사례에서 보듯, 트럼프 1기에서는 강경파 참모진들의 아이디어가 정통파 관료들에게 막혀 시행되지 않는 일들이 종종 있었다. 이런 내부 갈등으로 인해 트럼프 1기 행정부에 몸 담았다가 트럼프 대통령과 척을 진 이들도 많았다. 반대파까지 가지는 않더라도 ‘탈(脫) 트럼프’ 한 인사들이 많은데, 밀러는 이런 부침이 없이 2기에서도 일찌감치 백악관행(行)을 확정지었다. 그 비결은 변치않는 충정이었다.
밀러는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한 이후에도 별다른 직(職) 없이 그의 곁을 계속 보좌하며 충성심을 보였다. 자신에 대한 충성심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본다는 트럼프가 그를 신임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1기와 2기에서 밀러에 대한 트럼프의 평가가 미묘하게 달라진 점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1기에서 밀러를 국토안보부 장관으로 임명하라는 주변의 권유에, 트럼프는 그가 ‘리더감’은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했다고 전해진다. 2기에서도 밀러에게 국토안보부 장관직은 주지 않았는데, 그 이유가 1기때와는 다르다. 1기 이민 정책 설계자로 밀러의 악명이 높아서, 청문회와 상원 인준을 통과하지 못할 것 같아 장관직에서 뺐다는 후문이다. 상원 인준을 피하면서도 최대한 그를 활용하기 위한 선택으로 부비서실장직을 줬다는 것이다.
이후 지난해 5월 국토안보보좌관을 물색할 때에 트럼프는 NBC 등 여러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밀러를 물망에 두고 있다고 전하면서 “스티븐을 그 자리에 두면 다운그레이드(downgrade)가 될 것이다. 스티븐은 그보다 훨씬 위에 있다”고 말했다. 밀러의 영향력은 이미 장관급이라는 언론들의 분석은 이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2기에서도 밀러의 주특기는 이민 정책이었다. 이민세관단속국(ICE)의 무작위 불법 이민 단속과 이에 항의하는 시위대를 겨냥한 주(州) 방위군 투입 등이 밀러의 작품이다. 밀러와 크리스티 놈 국토안보부 장관은 실무자들에게 매주 3000명씩 불법 이민자를 잡아들이라며 ‘실적 압박’을 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밀러가 이끄는 전담팀은 매일 아침 전일 체포 실적을 보고받고, 성에 차지 않으면 관료를 갈아치워버리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불거진 것이 조지아주의 한국인 근로자 구금사태다. 무리한 추방 실적을 유지하려다보니 공장, 기업 등으로 눈을 돌리면서 당시 조지아주에 있는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공장에 출장갔던 근로자들을 무차별로 잡아들였던 것이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도 밀러가 자신보다 더하다며 혀를 내둘렀던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이후에도 밀러에는 아무런 견제가 없었다. 이를 두고 미국 언론들은 “밀러가 대통령의 욕망을 정책으로 번역하고, 트럼프가 한번 결정하면 끝까지 밀어붙여 실행하는 타입”이라 전했다. 트럼프보다 한 발 더 나아간 실행력으로, 민감한 사안은 밀러 선에서 알아서 처리해준다는 것이다. 피트 헤그세스 미국방장관도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행정부의 일들이) 대체로 밀러가 원하는대로 움직인다”고 언급했을 정도다.
“위선적인 이민자 후손” 비판…미네소타서 거세지는 국민적 저항 ‘변수’
이를 두고 반대와 비판도 거세다. 2018년에는 밀러의 외삼촌인 데이비드 S.글로서 박사가 폴리티코에 “밀러는 위선적인 이민자다. 나는 그의 삼촌이라 안다”라는 제목의 기고를 보내 “자신의 혈통을 잘 아는, 교육받은 조카(밀러)가 우리 가족의 미국 생활 근간을 부정하는 이민 정책의 설계자가 되는 과정을 경악과 공포 속에 지켜봤다”라며 “내 조카의 이민 정책이 1세기 전에 시행되었다면, 우리 가족은 절멸(絕滅)했을 것”이라 비판하기도 했다. 글로서 박사는 “당시에도 가난한 이민자를 ‘쓰레기, 강간범, 갱단, 테러리스트’로 치부하는 혐오론자들이 있었지만 글로서 가족은 미국에서 꿈을 이룰 수 있었다. 이것이 미국의 기적이다”라며 이민자 후손임에도 이민자 집단을 배척하는 밀러와 트럼프를 비난했다.
밀러에 대한 비판은 현재진행형이다. 민주당의 벤 레이 루한 상원의원은 NBC에 “밀러는 미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나쁜 일에 책임이 있다”고 비난했다.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은 엑스(X·옛 트위터)에 “스티븐 밀러가 백악관에 머무는 매일매일이 위기”라고 게시했다. 언론인 진 게레로는 그의 전기 제목을 ‘증오선동가(Hatemonger)’라 짓기도 했다.
그의 정치적 지향점의 총체인 ICE(이민세관단속국)의 강경한 이민자 단속 및 시위 진압은 최근 미 전역에서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이달에만 ICE요원의 총격에 미국 시민권자 2명이 사망하면서 국민적 분노를 부른 것이다.
밀러는 앞서 워싱턴DC, 시카고 등 ICE의 이민자 진압이나 주 방위군의 치안 단속에 시민들이 항의하는 것을 두고 “국내 테러리즘이자 반란”이라 규정하며 더욱 강경한 대응을 천명해왔다. 그러나 버락 오바마, 빌 클린턴 등 전직 대통령까지 나서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정책을 비판하고 있고, 보수성향의 월스트리트저널(WSJ)까지 강경 진압을 우선 멈춰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로 여론이 악화되고 있다. 사망자 중 한 명이 당시 총기를 소지하고 있었다며 책임을 피해자들에게 돌리는 정부의 발표에 공화당과 보수성향의 총기옹호단체까지 이를 비난하고 나섰다. 총기옹호단체는 보수성향 유권자들의 결집력이나 워싱턴 정가에 큰 영향을 미치는 존재다.
거침없던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 단속 정책이 중간선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정도의 분수령에 선 듯 하다. ‘그림자 총리’가 이번에 보여주는 대통령의 욕망은 어떤 것일까. 보수 진영까지 만류하는 강경 이민정책의 마지막 책임에서도 그는 교묘히 빠져나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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