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엔비디아로부터 최신 그래픽처리장치(GPU) 26만장을 확보한 것은 인공지능(AI) 시대 제조업의 대전환을 알리는 신호탄이라 할 만하다. GPU는 AI의 핵심 두뇌장치로, 세계 각국이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특히 엔비디아의 GPU 공급은 미국 정부의 통제를 받는데 미국을 제외한 국가 중 이처럼 대규모로 공급받는 사례는 한국이 유일하다. 독일·일본 등도 수천~1만개 수준에 그친다. 한국이 AI 제조혁신의 시험무대가 됐다는 의미다.

이번 확보로 한국은 단번에 세계 3위 수준의 GPU 연산력을 갖추게 됐다. 기존 보유량은 6만장 정도로, 대규모 AI 모델 학습이나 산업현장 적용에 한계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26만장이 더해지면 대형 데이터센터 구축이 가능해지고, 제조현장에서 피지컬AI를 실험하고 적용할 수 있게 된다. AI가 스스로 반도체의 설계 데이터를 수집하고 생산 공정을 최적화한다는 뜻이다. 삼성·SK·현대차·네이버 등 주요 기업이 확보한 GPU는 각 기업의 공급망과 산업생태계 전반에 파급돼 중소기업과 스타트업까지 AI 전환의 ‘낙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반도체, 자동차, 로봇, 원전, 스마트팩토리 등 다양한 산업 분야가 AI 적용의 무대로 변모하게 되는 것이다.

핵심 AI 인프라인 대규모 데이터센터가 줄줄이 들어서는 것도 고무적이다. 아마존웹서비스(AWS)는 2031년까지 국내 신규 AI 데이터센터 구축에 총 50억달러 이상을 추가 투자하기로 했다. 기존 투자까지 합치면 약 90억달러에 달한다. 오픈AI도 한국 서남권에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기로 하면서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그동안 전력 관련 규제와 대지 확보 문제로 대규모 데이터센터가 한국을 외면하고 싱가포르, 일본, 말레이시아 등을 선택했지만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상황이 반전됐다. 한국이 AI지형에서 선도적 위치로 도약할 계기가 마련된 셈이다.

하지만 이렇게 막대한 연산능력을 활용하려면 대규모 전력공급은 필수다. GPU 26만장을 가동하려면 초대형 AI 데이터센터 5~6곳을 세울 수 있는 수준의 전력이 필요하다. 데이터센터 전체 전력 수요는 0.6~0.8GW로, 초대형 원전 한 기가 생산하는 전력과 맞먹는다. 빅테크업체들이 소형 원전을 사들이는 이유다. 자칫 전력공급 병목, 피크전력 문제 등이 현실화될 수 있는 만큼 에너지 수급계획을 더 조밀하게 짜야 한다. 고리2호기 원전 연장 결정도 더 미룰 일이 아니다. 데이터 활용과 산업 적용을 가로막는 규제 완화, 노동경직성 해소 등 제도적 제약도 걷어낼 필요가 있다. ‘AI 3대 강국’으로 가려면 더 속도를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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