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태어나서부터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중·고등학교에 진학한다. 국가 의무 교육은 아니지만 그 후 대학교에 진학하면서 더 나은 사회적 출발을 준비하기도 한다. 요즘에는 초등학교 입학 전에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거쳐 태어난 지 갓 한 해를 채 지나기 전부터도 교육이 이루어지는 사회공동체에 진입한다. 교육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하는 이유이다.

인간은 교육을 통해 사회적 인간으로 성장하고 지적 호기심 충족 및 자아실현을 통해 개인적 성장을 이룬다. 교육이 공동체의 존속에 있어 중요한 이유이다. 지속가능한 공동체와 사회의 성장은 교육으로 인하여 완성된다. 개인도 마찬가지이다. 교육이 학습에만 그치지 않고 삶을 지탱하는 요소가 될 때 인간은 비로소 나이가 들어감을 체감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한 인간이 성장함과 동시에 공동체에 충분히 희생할 수 있고, 협력할 수 있는 능력과 자질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의 구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학습과 교육이 행해질 수 있는 인프라, 거버넌스 등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구조가 사회적으로 형성되어야 할 것이다.

네덜란드의 언론인이자 역사학자인 ‘휴먼카인드’의 저자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협력하고 공존하는 인간의 본성을 강조한 바 있다. 그는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인간의 본성에 반박한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하라리 역시 ‘인간은 협력할 수 있는 유일한 종이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모두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명제를 재차 확인하였다는 점에서 궤를 같이한다. 결국 우리가 고민하여야 하는 교육의 궁극적 목표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 학습과 경쟁을 통한 ‘각 개인의 우선순위 확보’가 교육의 목표가 될 수는 없을 테다. 협력하는 사람들이 공존하는 공동체에서의 교육은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 나 자신의 적절한 희생을 통한 공동체의 회복 등을 염두에 두어야 함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우리의 입시 제도는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며 정책 수요자의 욕구는 어떻게 반영되어야 할 것인가. 사회적 난제가 다양하게 얽혀있는 현시점에서 명쾌한 답을 내놓기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테다. 하지만 좀 더 나은 사회를 위한 교육의 역할을 상정한다면, 초등학교에서의 기초 교과 교육, 전인교육 및 민주시민교육은 물론 중고등에서의 입시교육 등 사회에 나아가기 위한 전초전의 역할을 담당하는 교육 주체들은 최소한 궁극적 목표를 소홀히 하면 안 될 것이다.

물론 다양하고도 복잡한 정책 문제들이 겹치는 지점이라 여러 가지의 이야기를 한 테이블에 올려 해답을 구할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입시의 방향도, 민주 시민교육의 방향도 우리가 함께 사는 구현을 위해 나 한 사람이 우리 사회에서 할 역할을 찾는 과정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명확한 목표를 놓치고서는 세부적인 입시 계획도, 중앙과 지방의 거버넌스도, 학부모와 학교의 협력 관계도 방향을 잃은 채 표류하고 말 것이다.

경쟁을 통한 성장을 바탕으로 한 교육 정책의 기여로 우리나라가 선진국의 대열에 진입하였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제는 단순히 영향력 있는 국가 상위 10위에 드는 것에 머물지 않고 진정한 일류 국가로 나아가기 위해 교육의 방향성을 다시금 정립하여야 할 시점이다.

이윤진 건국대 건강고령사회연구원 교수


herald@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