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손보가 결국 후순위채권 조기상환권리(call option) 행사를 멈췄다. 금융감독원의 불승인 공문을 접수한 결과다. 현행 법규상 금감원 승인 없이는 후순위채권 조기상환을 할 수 없다. 보험업계가 난리다. 후순위채권 조기상환은 자금시장의 묵시적 관행인데 이번에 그 전례가 깨뜨려져 투자자들을 모으기 어려워졌다는 이유에서다.
3년 전에도 비슷한 논란이 있었다. 구조는 반대다. 2022년 11월 흥국생명이 5억 달러 규모의 영구채(신종자본증권)를 조기상환 하지 않으려 하자 금감원이 이를 막았다. 당시 결국 금감원의 뜻대로 조기상환이 이뤄졌다. 관행을 지키려던 금감원이 왜 달라졌을까?
‘안 하려’ 던 흥국생명, ‘못 하게’ 된 롯데손보
2022년 11월은 레고랜드 사태로 채권시장이 불안하던 때다. 많은 기업들이 자금유출을 최소화하려 애쓰던 때다. 반면 시장에서는 조기상환 관행이 깨지면 금융회사들의 자금조달이 더 어려워 질 것이란 우려가 많았다. 흥국생명은 계열사 도움으로 조기상환 할 재원을 마련할 여력도 있었다.
반면 지금의 롯데손보는 자체적으로 조기상환 재원을 마련할 여력이 부족하다는 게 금감원 판단이다. 롯데손보는 오랜 기간 실적 부진에 시달려왔다. 지난해에는 순이익이 전년 대비 10분의 1로 줄었다. 사모펀드(PEF)인 JKL파트너스가 대주주여서 자본 확대를 위해 투자자에게 손을 쉽게 벌릴 처지도 아니다. 이 때문에 후순위채권(9800억원)와 신종자본증권(460억원)으로 조달한 자본이 1조원이 넘는다. 매년 조기상환 시기가 도래한다.
롯데손보는 지난 2월 공모로 1000억원 규모의 후순위채권을 발행하려 했었다. 성사됐다면 이번 조기상환의 재원이 될 만했다. 그런데 금감원이 제동을 걸어 계획을 철회했다. 지급여력비율은 보험사 재무건전성 판단의 핵심지표다. 롯데손보가 증권신고서에서 밝힌 지급여력비율은 2024년 9월말 기준 159.77%다. 2024년 4분기 실적에 따라 150%를 하회할 가능성도 상정할 수 있다. 심지어 경과조치 전 기준은 128.72%로 금융당국의 기준선인 150%를 하회했다.
1월 말이면 롯데손보가 이미 2024년 가결산 수치를 내부적으로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도 크다. 실제 롯데손보는 후순위채권 발행을 철회(2월 7일)한 지 1주일만(2월 13일)에 2024년 순이익이 272억원으로 전년(3016억원) 대비 91% 감소했다고 밝혔다. 이후 롯데손보가 사업보고서에서 공개한 2024년말 지급여력비율은 154.59%다. 경과조치 전 기준은 125.85%다. 1분기 말 기준으로 150% 아래로 떨어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급여력비율 수치가 높을수록 후순위채권 발행금리를 낮출 수 있다. 2024회계연도 결산 전인 2월에 5월에 쓸 돈을 미리 마련하려 했다는 추정을 해봄 직하다.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상황에서 공모로 자금을 조달할 경우 불완전판매 등의 논란이 일 수 있다. 공모후순위채는 증권사가 인수하지만 이후 일반 투자자들에게 판매(sell down)된다.
조기상환은 선택사항…의무화되면 보완자본 취지 무색
상황을 좀 더 제대로 이해하려면 후순위채권, 신종자본증권 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돈을 빌려 돈을 버는 금융회사는 자본건전성이 중요하다. 일정 수준 이상의 자본을 갖춰야 안정적인 영업이 가능하다. 보통 자본은 주식으로 조달된다. 주식은 발행자에 상환의무가 없다. 투자위험은 오롯이 주주가 부담한다. 주식을 발행하면 기존 주주들의 주식 가치도 희석된다. 주식을 발행해 자본을 늘리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보완자본이다. 채권이지만 자본으로 인정하기로 한 유가증권이다. 후순위채권과 신종자본증권 등이 대표적이다. 자본으로 인정되는 대신 만기가 길고 변제 순위도 가장 뒤다. 뭔가 당근이 없으면 투자자를 모으기 어려운 조건이다. 그래서 높은 금리와 조기상환 옵션을 붙였다. 겉으로는 만기가 30년 이상이지만 사실상 5년 또는 10년이 지나면 ‘갚을 수 있다’는 조건이다. 조기상환을 압박(?)하기 위해 이자율 상승(step up) 조건이 붙으며 ‘갚을 수 있다’는 사실상 ‘갚아야 한다’로 바뀌게 된다. 조기상환을 하지 않으면 새로운 전주를 구하지 못할 정도로 재무상황이 어렵다는 ‘낙인’도 받아들여야 한다.
만기가 길어서 자본으로 인정하는데 실제 만기는 일반 회사채처럼 짧다면 자본으로 인정해야 할까? 이 같은 ‘사이비(似而非) 자본’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금융당국의 규제가 도입됐다. 조기상환을 하더라도 그 만큼의 금액을 더 나은 조건으로 조달해야 하고 금융당국의 승인까지 거치도록 했다. 2022년 흥국생명 사태 이후 금융당국은 보험업 감독규정을 바꿔 신종자본증권은 발행 5년 후 상환하는 관행을 발행회사에 강요할 수 없도록 했다. 이자율을 높일 수 있는 최소 기한도 발행 후 10년 이상으로 늘렸고, 인상 폭도 1%포인트로 제한했다. 다만 후순위채에는 이 같은 장치를 추가하지 않았다.
고수익은 고위험 수반…CS 사태 이후 국내서도 투자 위험 확인
2023년 스위스 UBS는 크레디스위스(CS)를 인수하면서 보완자본(AT1, Additional Tier 1) 으로 인정되는 조건부자본증권(CoCo Bond) 투자자들의 채권 170억 달러(한화 22조6000억원)을 전액 상각했다. 스위스 금융당국(FINMA)의 지침에 따른 조치다. 그런데 UBS는 코코본드 보다 변제 순위가 뒤인 보통주에는 일부 보상을 했다. 코코본드는 자본비율 하락이나 정부 개입 등 특정 조건에서는 원금이 상각되거나 보통주로 전환될 수 있다. 이 경우 코코본드 보유자의 권리는 주주와 유사하거나 심지어 더 불리해질 수 있다는 게 스위스 당국의 논리다. 스위스 당국의 조치 이후 금융회사들의 보완자본 조달이 어려워질 것이란 우려가 커졌고, 실제 코코본드 시장은 2023년 이후 뚜렷이 위축됐다. 현재 투자자들은 스위스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 중이다.
후순위채권이나 신종자본증권 등 하이브리드 채권들은 그동안 투자자들에게 인기가 꽤 높았다. 실제 만기가 길지 않고 짭짤한 이자 수익도 가능했기 때문이다. 롯데손보 사태로 이제는 ‘만기’에 대한 기대가 흔들리게 됐다. 앞으로는 하이브리드 채권에 투자할 때에는 발행회사가 충분한 조기상환 능력을 갖췄는지 더 깊이 고민을 해야할 듯하다. 증권사에서 매입할 때 꼭 중도상환 실패 위험을 따져야 한다는 뜻이다. 선례까지 만들어졌으니 만약 증권사 판매직원이 조기상환이 보장되는 것처럼 안내한다면 불완전판매가 될 가능성이 더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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