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전 경복궁 근정전 권역에서 진행된 ‘시간여행, 세종’ 모습. 이정아 기자
28일 오전 경복궁 근정전 권역에서 진행된 ‘시간여행, 세종’ 모습. 이정아 기자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만물의 뜻을 깨달아 모든 일을 이루는 큰 지혜는 바로 오늘부터 깊은 역사를 이룰 것이다.” 경복궁 근정전 마당으로 퍼져나간 세종대왕의 음성이 백성들을 위해 한글을 창제한 그의 굳건한 의지를 상징하는 듯 근엄하게 울려 퍼졌다.

28일 오전 11시, 경복궁에서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날아가야 만날 법한 광경이 펼쳐졌다. 궁궐의 중심 건물인 근정전 앞에 놓인 용상에 앉은 세종의 모습은 위엄이 넘쳤다. 그 아래에는 수십 명의 신하와 환관, 궁녀들이 엄숙하게 줄지어 서 있었다. 이는 세종의 생애와 업적을 재현한 ‘시간여행, 세종’의 한 장면. 내달 4일까지 서울의 5대 고궁인 경복궁·창덕궁·창경궁·덕수궁·경희궁과 종묘에서 열리는 궁중문화축전 행사의 하나로 마련된 무대였다.

올해로 11회를 맞는 궁중문화축전은 고궁을 배경으로 전통문화 활용 콘텐츠를 선보이는 국내 최대 국가유산 축제다. 지난해 봄과 가을에만 96만 명 이상의 국내외 관람객이 방문했다.

‘궁중 새내기’가 된 관람객들이 경복궁 내소주방에서 세종 나신 날의 탄신연을 준비하는 고임상을 만들고 있다. 이정아 기자
‘궁중 새내기’가 된 관람객들이 경복궁 내소주방에서 세종 나신 날의 탄신연을 준비하는 고임상을 만들고 있다. 이정아 기자

올해는 관람객이 참여하는 체험 프로그램이 대폭 강화됐다. 궁중문화축전의 주요 프로그램인 ‘시간여행, 세종’을 기획한 송재성 감독은 이날 “올해는 경복궁 일원을 다섯 개의 권역으로 나눠 세종의 다양한 철학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형식으로 구성됐다”며 “작년에는 세종의 업적을 전달만 하는 방식이었다면, 이번에는 관람객들이 세종이 꿈꾼 조선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전 예약을 통해 ‘궁중 새내기’가 된 관람객들이 내소주방에서 세종 나신 날의 탄신연을 준비하기 위해 사탕을 쌓아 올리는 고임상을 만들거나, 비현각에서 세종의 적장자인 세자(문종)의 가례를 준비하며 댕기를 만드는 프로그램 등이 대표적이다.

궁궐 수습생을 맞이하는 궁중병과 세션의 정길자 조선왕조 궁중음식 기능보유자는 “세종 대에는 관련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익종의 비 신정왕후 조씨의 환갑잔치 기록을 재현했다”며 “단순한 식사가 아닌 ‘음식을 통해서 효를 행한다’는 조선 왕실의 전통과 문화를 관람객들이 배울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랐다”고 말했다.

궁중공예 세션에서 만난 궁중 새내기 서지안(42) 씨는 “궁궐이라는 무대에서 등장인물이 돼 활동하다 보니 몸소 느끼는 게 크다”며 “단순히 건축물로서 궁궐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조선 왕실이 실제로 생활하던 공간을 직접 경험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창경궁 함인정에 29개의 달항아리로 구성된 류종대 작가의 설치 작품 ‘색 달항아리’가 전시됐다. 이정아 기자
창경궁 함인정에 29개의 달항아리로 구성된 류종대 작가의 설치 작품 ‘색 달항아리’가 전시됐다. 이정아 기자

창경궁에서는 고궁에서 즐기는 만 가지 정취라는 의미로 16명의 작가들이 참여한 ‘고궁만정’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5대 고궁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명정전을 중심으로 빈양문, 함인정, 영춘헌·집복헌, 구조 02 등 창경궁 일대를 거닐며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121점의 공예와 자수, 도자기, 한지 등을 엿볼 수 있는 전시다. 국가무형유산 보유자와 이수자를 비롯해 자수작가, 현대미술가, 패션 디자이너 등 작가의 면면도 다채롭다. 전시를 기획한 이정은 감독은 “고궁을 거닐며 마주하는 순간들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우리 전통을 친근하게 느낄 수 있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특히 올해 행사에서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 지난해 1건에서 4건으로 늘어, 글로벌 궁중문화축전으로서의 면모를 강화했다.

이 밖에도 경복궁 근정전에서는 ‘고궁 음악회-100인의 여민동락’이 펼쳐지고, 창덕궁에서는 해설과 함께 아침의 고궁을 산책하는 ‘아침 궁을 깨우다’ 등이 진행된다. 자세한 내용은 궁중문화축전 공식 누리집과 인스타그램을 참조하거나, 궁능 활용 프로그램 전화 상담실(☎ 1588-2295)로 문의하면 된다.


dsu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