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9월 10일 국회에서 민주정의당과 통일민주당이 개헌을 위한 ‘8인 정치회담’을 갖고 있다. 당시 여야 동수로 구성된 이 모임은 국회 합의를 이끌어내 개헌을 주도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연합]
1987년 9월 10일 국회에서 민주정의당과 통일민주당이 개헌을 위한 ‘8인 정치회담’을 갖고 있다. 당시 여야 동수로 구성된 이 모임은 국회 합의를 이끌어내 개헌을 주도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연합]

대통령과 검찰, 사법권력은 ‘새로고침’해야 한다. 헌법은 ‘제7공화국’의 새로운 이름으로 바꿔야 한다. 6월 4일 출범할 차기 정부의 국가적 과제다.

12·3 비상계엄 선포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 사태는 헌법 수호의 중요성과 더불어 개헌의 필요성에 대한 국민적 인식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됐다. 물론 윤 전 대통령의 탄핵 사건은 헌법이 낡아서가 아니라, 헌법을 지키지 않아서 비롯된 문제였다. 그러나 전(前) 정부 출범부터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을 거쳐 ‘내란죄’ 형사재판에 이르기까지 입법·행정·사법부 간의 끊임없는 충돌은 1987년 제정된 ‘6공화국 헌법’의 시대적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먼저 입법부와 행정부가 ‘법적 권한’으로 정면 충돌했다. 야당이 다수당인 국회는 고위 관료를 잇따라 탄핵했고, 대통령은 본회의 통과 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서 맞섰다. 국회는 대통령이 임명한 인사의 직무를 정지시킴으로서 정부 기능을 마비시켰고, 대통령은 국회 의결 법안을 거부함으로써 입법권 행사를 막았다. 검찰총장 출신의 대통령을 배출한 검찰은 수사 및 기소의 편향성과 불공정 문제로 매번 논란의 도마 위에 올랐다. 체포·구속·압수 등 영장 심사, 항고·상소심 판결, 양형 기준 등 사법 절차와 제도, 법관 인사의 적절성도 계엄 및 탄핵 국면에서 격렬한 논쟁 대상이 됐다. 정당과 정부, 검찰, 법원 등 국가기관 전 부문에 걸쳐 요직을 장악한 법조의 거대한 인맥도 날로 심화하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병폐로 지적되기 일쑤였다.

개헌은 6월 3일 치러지는 제21대 대통령선거의 주요 의제일 뿐 아니라 차기 정부에선 반드시 해결해야 할 시대적 과제임이 분명해 보인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헌재의 윤 전 대통령 파면 선고 이틀 후인 지난 7일 전격적으로 ‘조기 대선 동시 개헌 국민투표 실시’를 제안했지만, 절차의 미비(국민투표법 개정)와 시간의 촉박함 때문에 무산됐다. 국민의힘에선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이 즉각 찬성의 목소리를 냈지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개헌은 필요하지만, 지금은 내란 종식이 먼저”라며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힌 것도 무산 이유가 됐다. 그러나 이 전 대표는 당시 국민투표법이 시간에 맞춰 개정된다면 5·18 정신 계승의 헌법 전문 수록과 계엄 요건 강화를 위한 개헌은 동시 투표로 추진할 수 있다고 했다. 민주당 경선에 들어선 후엔 예비후보로 출마해 개헌을 전제로 한 ‘세종 행정수도 이전’ 추진 입장도 밝혔다. 양당 후보가 모두 확정되고 본선 경쟁이 시작되면 개헌 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대통령 4년 중임제’라면 2026년 개헌 투표하고 2030년부터 대선·지선 동시 실시 합리적

현행 헌법은 개정 37년이 됐다. 1987년 이래 개헌 논의가 많았지만, 공식적인 첫 개헌안은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에야 대통령안으로 발의됐다. 당시 개헌 논의 환경은 지금과 비슷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각 대선 후보들이 집권 후 개헌을 약속했으며, 문 정부도 공약에 따라 개헌을 추진한 것이다. 그러나 3분의 2인 개헌안의결정족수를 충족시키지 못해 폐기됐다. 당시 개헌안은 기본권과 국민주권, 지방자치, 경제질서, 정치개혁, 사법제도 등에서 포괄적인 변화를 꾀했다.

그 때보다 시대가 더 변하고 시간이 더 흐른만큼 향후 헌법 개정의 범위도 더 폭넓어야 할 것이다. 쟁점이 많은 만큼, 한번에 다 뜯어고치기 보다는 급한 것부터 여러 번에 걸쳐 수정하는 방법도 있다. 당장은 ‘대통령 5년 단임제’부터 바꾸자는 데 정치권과 국민여론의 공감대가 크다. 2018년 개헌안도 ‘4년 중임제’였다. 최근 여론도 비슷한 경향이다. 한국갤럽이 뉴스1 의뢰로 6~7일 시행한 여론조사에서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를 바꾸는 개헌’에 대해 응답자의 51%는 ‘필요하다’고, 38%는 ‘필요하지 않다’고 답했다. 개헌 시 정부형태 선호도는 ‘4년 중임 대통령제’ 45%, ‘의원내각제’ 16%, ‘분권형 대통령제’ 16%로 나타났다. 이에 앞서 지난 3월 4~6일 한국갤럽 자체 조사에서는 ‘4년 중임제’ 지지율은 64%, 현행 ‘5년 단임제’는 31%였다(이상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만일 2026년 지방선거와 동시 국민투표로 ‘4년 중임제’ 개헌이 이루어지면, 언제부터 적용할 것인가가 문제로 남는다.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먼저 차기 대통령 임기를 3년으로 단축하고 2028년 총선부터 대선을 동시에 실시하는 방안이 있다. 논란의 여지가 크고, 현실화 가능성도 의문이다. 실행된다고 해도, 총선과 대선이 함께 치러지면 자칫 입법·행정권력이 동조화되는 현상이 나타나 상호 견제 기능이 약화될 수 있다. 차기 대통령 임기 단축 없이 2030년부터 지선과 대선을 동시에 실시하면, 2년 주기로 총선과 번갈아 치러지게 돼 문제가 해결된다. 미국처럼 총선이 ‘중간선거’역할을 해 유권자가 대통령과 집권당을 정기적으로 ‘중간평가’할 수 있는 길도 생긴다.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이 선고됐던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헌법재판관들이 착석해 있다. [연합]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이 선고됐던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헌법재판관들이 착석해 있다. [연합]

대통령은 ‘국가원수’인가

전반적으로 우리 국민은 대통령제에 대한 선호도가 높고, 대통령 직선제를 민주화 운동의 성과로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정치권 일각에선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두 차례에 걸친 대통령의 ‘파면’이 헌법 자체의 문제 때문이 아니라 헌법을 지키지 못해서 일어난 일이라는 생각도 더 커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4년 중임제는 국정운영의 안정성과 정책의 지속성, 정치적 책임성 측면에서 5년 단임제의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여겨진다. 만일 대통령 임기 중간 총선이 치러지는 방식으로 개헌이 되면 국회를 통한 대통령 권력의 민주적 통제도 더 강화된다.

그럼에도 문제는 남는다. 헌법상 대통령은 ‘행정부 수반’일 뿐 아니라 ‘국가 원수’로서 사실상 삼권 분립을 초월한 지위로 규정된다. 주요 고위공직자 임명권과 예산 편성권도 독점적으로 갖는다. 이는 권력의 사유화로 이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총리는 국회가 선출하는 ‘이원집정부제’나 대통령과 총리가 외·내치를 나눠 맡는 ‘분권형대통령제’가 대안으로 꼽히기도 한다.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가 혼합된 이러한 정부형태는 대통령의 권력 남용이나 독재화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하지만 대통령과 총리 간 정치적 갈등의 소지가 크다. 내·외치의 경계선도 명확하지 않아 양자간 권한과 직무의 분할 자체가 어렵다는 한계도 있다. 우리에겐 역사적 경험도 없고, 선호도도 높지 않아 개헌의 선택지 중 하나가 될 지는 미지수다.

다만, 어느 경우나 대통령의 초월적 권한을 상징한 ‘국가원수’로서의 헌법상 지위는 바꿔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21년 한국헌법학회와 국회 입법조사처가 주최한 ‘국민통합과 헌법개정’ 공동학술대회 발제문에서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이며,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한다’고 한 66조 1항은 1972년 박정희 군부 정권의 유신 헌법 잔재라고 지적했다. 1948년 제헌헌법에서는 ‘대통령은 행정권의 수반이며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한다’고만 규정돼 있었으나 1960년 4·19혁명 후 의원내각제가 되면서 대통령의 의전적 지위를 표현하는 개념으로 처음 ‘국가원수’라는 표현이 헌법에 명문화됐다. 그러다가 대통령제로 전환된 1962년 헌법에선 사라졌으나 유신헌법에서 재등장했다. 김 교수는 “유신쿠데타 이후 자신의 의사에 더 이상 아무런 제약도 느끼지 못하게 되어 오만해진 집권자가, 자신을 ‘국가의 원수’로서 입법권·집행권·사법권은 물론이고 국민의 주권조차도 초월하는 이른바 ‘국가적’ 권력을 종신적으로 보유하는 ‘영도자적 지위’로 선언했던 것”이라고 했다. 송석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같은 행사 발제문에서 “헌법에서 국가원수라는 단어를 삭제하는 것은 군주제적 권위주의적 대통령제의 잔재를 극복하는 상징적 조치로서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닌다”고 했다. 12·3 계엄이 대통령의 통치행위로서 사법적 심사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한 윤 전 대통령 발상의 단초가 ‘국가 원수’라는 규정에 대한 시대착오적 사고가 있었다고도 볼 수 있겠다.

지방 검사·법원장도 국민 손으로…검찰·사법권력 민주적 통제 강화도 검토해 볼 만

윤 전 대통령은 검찰총장 출신의 대통령으로 검사 출신을 주요 국가기관 고위직과 요직에 배치했다. 그 수와 범위가 유례없는 수준이었고 많은 영역에서 정치적 갈등의 주체이자 원인이 됐다. 또 윤 전 대통령의 계엄과 파면, 형사재판이 이루어지는 동안 체포, 구속, 기소, 재판 등 전 과정에서 법의 적용과 판단, 집행을 두고 격렬한 국론 분열과 사회 혼란이 일었다. 정치적 의사결정을 법적 소송에 의존하는 ‘정치의 사법화’와 역으로 검찰 기소 및 법원 재판이 권력자와 정치권 이해관계에 따라 좌우되는 ‘사법의 정치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지난 정부 내내 계속됐다. 개헌의 목적이 권력의 분산과 견제의 강화를 통한 국민주권과 민주공화국 원리의 확대라고 한다면, 대통령제 뿐 아니라 검찰·사법제도 개정 역시 예외일 수 없다.

검사·법관 인사와 기소·재판 등에 시민참여를 확대함으로서 검찰·사법권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는 것이 관련 개정의 주요한 방향이어야 한다. 특히 입법·행정 권력과 달리 3권 중 유일하게 임명직으로만 이루어지는 사법권력에 선거제를 도입하는 방안이 검토될 만하다. 지방검찰청 검사장과 지방법원장을 주민이 직접 뽑는 제도다. 이미 법조계나 정치권에선 적지 않은 논의와 제안이 있었다. 또 검찰 기소권이나 법원 재판권 등 각 기관의 고유 기능으로부터 인사·행정권을 분리시키는 제도도 확대하는 방향이 옳다. 예를 들어 외부 인사와 시민이 참여하는 ‘사법인사행정위원회’를 헌법기관으로 두는 방안도 적극 고려할만하다. 선출되지 않는 검찰·사법권력이 스스로 인사와 행정까지 독점하는 시스템이 폐쇄성과 권력남용, 국민 법감정과의 괴리 원인이 돼 왔다는 문제의식이 이같은 논의의 배경이다.

이윤제 명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찰개혁과 검사장 직선제’라는 제하의 논문에서 “검사장 직선제에 의하면 검찰은 대검찰청(고등검찰청)과 18개의 지방검찰청이 내부적으로 사실상 분할된다”며 “대검찰청과 고등검찰청이라는 중앙검찰로부터 독립된 의사를 갖는 분할된 18개의 지방검찰청의 존재는 전국적으로 통일되고 일치된 의사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하나의 검찰이 사라진다는 의미에서 검찰의 권력 약화를 의미한다”고 했다. 경기연구원은 2021년 펴낸 정책연구서에서 “검사장 직선제를 도입하면 지역주민이 직접 선출한 선출직 지방검사장은 대통령의 인사 대상에서 제외돼 대통령의 영향력을 받지 않게 됨으로써 정치적 중립성을 높일 수 있고, 지방검찰청의 검찰권 행사에 자율성도 제고할 수 있다”고 했다. 지방 검사장 직선제는 지방자치분권 강화라는 또 다른 개헌 방향성과도 일치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 선고가 이루어진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의 정면 벽에 설치된 헌재의  상징 휘장. 국화인 무궁화 속에 헌법이라는 글자로부터 ‘공정한 빛’이 확산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가운데 원의 흰색은 ‘평등’을 , 무궁화 꽃잎의 자색은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헌재의 ‘권위’를 나타낸다. [연합]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 선고가 이루어진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의 정면 벽에 설치된 헌재의 상징 휘장. 국화인 무궁화 속에 헌법이라는 글자로부터 ‘공정한 빛’이 확산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가운데 원의 흰색은 ‘평등’을 , 무궁화 꽃잎의 자색은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헌재의 ‘권위’를 나타낸다. [연합]

헌법을 지킨 자가 헌법을 바꾼다

두 차례의 대통령 탄핵을 겪으면서 우리 국민들에게 헌법 1조 1~2항을 외는 것쯤은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 됐다. 국가기관의 권한과 법 소송 절차에 대한 높은 수준의 지식을 갖춘 이들도 많아졌다. 최근엔 헌재의 대통령 파면 결정문을 숙독하는 것은 물론이고 필사하는 이들까지 늘고 있다고 한다. 김선택 교수는 “2016~2017년 이루어진 촛불시민혁명 가운데, 우리 국민들은 나라의 주인이 자신들임을 체험하게 되었고, 헌법도 자신들의 문서이며, 결국 개헌논의의 주체도 자신들이어야 함을 자각하게 되었다”고 했다. ‘2016~2017년’을 ‘2024~2025년’으로 바꿔도 성립되는 명제일 것이다. 김 교수는 9차례에 걸친 개헌의 역사를 ‘권력자 단독으로부터 권력자간 합의로, 다시 국회로, 이제 다시 국민에로’ 주체가 바뀌어간 과정이라고 설명하며 이제 ‘국민합의개헌’만이 한국헌법사 발전에 부합할 것이라고 했다. 권력자의 의도나 정치권 흥정으로 개헌을 하는 시대는 갔다는 뜻이다. 그것은 곧, 헌법을 지킨 자만이 헌법을 고칠 자격도 있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suk@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