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조폐공사가 만드는 은행권과 주화는 그 자체가 예술이 담긴 귀중한 문화상품이다. 각 나라의 화폐에 담긴 디자인과 인물들은 오랜 역사와 깊은 의미를 지닌 예술 작품으로, 국가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중요한 요소로 여겨진다. 그래서 우리는 달러화, 유로화, 그리고 엔화를 보면 그것이 어느 나랏돈인지 바로 알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화폐 발행량이 감소하면서 그 희소성이 더해져, 소장가들 사이에서 높은 가치를 지닌다.

한편, 우리 국민의 소득수준이 향상되면서 문화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공사는 화폐 인쇄 기술로 ‘화폐 요판화’라는 새로운 문화 상품을 만드는 시도를 세계 최초로 하고 있다. 화폐의 위변조 방지를 위해 사용하는 요판 인쇄 기술을 활용하여, 우리의 귀중한 예술품을 새로운 작품으로 재탄생시키려는 것이다.

요판화는 점과 선으로 밑그림 작업을 한 후 이를 특수 합금판에 옮겨 새기고 깎아서 요판을 완성하고, 화폐용 특수 잉크를 바르고 종이를 눌러 찍어내는 6개월간의 긴 여정을 거쳐야만 세상에 나온다. 요판 작업은 1mm도 채 되지 않는 미세한 선과 점을 정교하게 구사해야 하며, 우리나라에서는 공사에 근무하는 화폐 디자이너만이 이러한 작업이 가능하다. 이러한 요판 기술이 적용된 예술 작품은 표면을 만졌을 때 돈과 같은 오톨도톨한 촉감을 느낄 수 있고, 특수 보안 잉크를 사용해 위변조를 방지하는 복제 방지 기능도 갖추고 있다.

공사는 이러한 ‘요판 기술’을 문화 콘텐츠로 탈바꿈하는 데 중요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2021년 국가에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 가운데, 첫손에 손꼽히는 국보급 산수화인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한 땀 한 땀 장인정신이 깃들인 요판화로 제작하여 지난해 10월 일반에 선보였다. 특히 이 작품은 한정판으로 제작되어 소장 가치를 높였으며, 숨은 그림과 미세 문자 등 많은 보안 요소를 적용해 출시되자마자 완판되며 국민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성공을 바탕으로, 우리 공사는 두 번째 작품으로 우리 국민이 가장 좋아하는 근현대 작가인 이중섭의 ‘황소’를 요판화로 재해석한 작품을 다음 달에 대중에게 선보일 예정이다. 1950년대 제작했다고 추정되는 이중섭의 ‘황소’는 강렬한 붉은 색을 배경으로 세파를 견딘 주름 가득한 황소의 진중하고 묵직한 모습을 담고 있다. 힘차면서도 어딘지 애잔한 느낌을 자아내는 것은 이중섭 ‘황소’의 특징이다. 공사는 이러한 원작의 감정을 섬세하게 재현하기 위해 조폐 기관에서만 구현할 수 있는 고난도의 요판 인쇄 기법을 활용했다.

우리 공사의 ‘화폐 요판화’는 이제 문화상품으로서 예술성과 보안 기술을 동시에 갖춘 새로운 차원의 콘텐츠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품격 있는 한국의 정서가 담긴 문화상품이나 차별화된 소장품을 원하는 분들에게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이다. 앞으로도 국립현대미술관, 국립중앙박물관 등과 협업해 대한민국 예술성과 우수성을 알릴 수 있는 고품격 화폐 요판화를 지속해서 선보일 것이다. 이를 통해 한국 문화의 품격과 조폐 기술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며, 전 세계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소중한 계기로 삼을 계획이다.

성창훈 한국조폐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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