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16일(현지시간) 일리노이주 시카고 이코노믹클럽 연설에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인상에 대해 “예상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라며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그만큼 커져 물가 상승과 성장 둔화가 예상된다고 했다. 통화 정책의 양대 목표인 최대 고용과 물가 안정을 동시에 달성하기 어려운 ‘도전적인’ 상황이라며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시점이 될 수 있다고도 했다. 파월의 경고와 트럼프 정부의 대(對) 중국 반도체 수출 규제 강화가 겹치며 기술주 중심 나스닥이 3% 넘게 빠지는 등 이날 뉴욕 증시 주요 지수가 급락 마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관세 협상을 위해 워싱턴 DC를 방문한 일본 무역 대표단의 예방을 받았는데, 본 협상이 시작되기도 전인데도 “큰 진전이 있었다”고 했다.

파월의 발언은 표면적으로는 미 통화정책 최고 책임자로서 금리 결정을 하는 데 있어서 당면한 객관적 조건을 말한 것 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트럼프의 무모한 고(高) 관세 정책에 대해 보내는 시장의 강력한 경고다. 중국을 비롯한 전세계 각국과 치르는 관세 전쟁이 상대국 뿐 아니라 미국 경제를 스스로 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날 뉴욕증시 뿐 아니라 최근 미 국채, 환율, 유가 등 금융시장의 흐름과 지표 변화가 이를 증명한다. 뿐만 아니라 수입 물품의 관세 폭등으로 인한 고물가 공포가 미 소비자들을 엄습하고 있고, 자국 제조업 뿐 아니라 첨단 기술 산업계에서도 공급망 혼란 및 경쟁력 약화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기존 관례를 벗어난 인사정책과 ‘반(反)이민’을 기치로 한 사회·교육 정책에 대한 자국 내 비판여론과 정치적 저항도 확산하고 있다. 트럼프의 ‘반유대주의’를 명분으로 한 대학 통제 정책에 하버드, 콜롬비아대를 비롯한 이른바 명문대의 반발이 커지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는 2년 후 중간 선거를 치러야 하는 트럼프 정부에 성과에 대한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 출구나 해결책은 트럼프 정부로선 오로지 관세다. 당장 트럼프는 미일 협상을 시작한 당일 갑작스레 “내가 직접 참석하겠다”고 해 상대를 당혹시켰다. 그만큼 조바심을 내고 있다는 것으로도 풀이할 수 있다.

한국으로선 ‘한층 급해진’ 상대와 협상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을’에 더 기우는 우리 입장에선 리스크와 불확실성도 커졌지만 상대의 입지 변화에 따라 새로운 기회 요인도 만들어 낼 수 있다. 상대의 속도전에 말리지 말고 최대한 우리 ‘페이스’를 지켜내는 것이 중요하다. 시시각각 변하는 협상의 조건과 형세를 잘 따져 정부는 대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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