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고양서 8년만 내한 공연 시작

25일까지 총 6회, 30만 관객 동원

관객과의 소통 인상적…친환경 공연

콜드플레이가 8년 만에 한국을 찾아 해외 가수 최대, 최다 규모의 공연을 연다. [라이브네이션 제공]
콜드플레이가 8년 만에 한국을 찾아 해외 가수 최대, 최다 규모의 공연을 연다. [라이브네이션 제공]

[헤럴드경제(고양)=고승희 기자] “한국말이 조금 서툴어도 이해해 주세요. 헤헤. 여러분, 반갑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해서 행복합니다.”

8년만에 한국을 찾은 콜드플레이의 보컬 크리스 마틴의 한국어가 부쩍 늘었다. 오랜만에 한국 관객과 만난 그는 몇 번이나 “감사합니다”라며 인사했다. 크리스 마틴의 목소리와 손짓에 맞춰 관객들은 자이로 밴드를 착용한 손을 높이 들어 올리며 ‘빛의 물결’을 만들었고, 밴드 연주와 함께 하늘을 향해 뛰어올랐다. 크리스 마틴의 목소리에 실린 5만 관객의 떼창에 그 역시 이곳이 바로 ‘한국’이라는 점을 실감하며 벅찬 표정을 지었다. 마틴은 “다시 한국에 와서 생애 최고의 관객을 만났다”며 벅차했다.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밴드 콜드플레이가 한국을 찾았다. 지난 16일 저녁 경기도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라이브 네이션 프레젠츠 콜드플레이 : 뮤직 오브 더 스피어스 딜리버드 바이 디에이치엘(LIVE NATION PRESENTS COLDPLAY : MUSIC OF THE SPHERES DELIVERED BY DHL)’이 마침내 시작됐다.

회당 5만석, 108만원부터 시작하는 초고가에도 콜드플레이의 공연은 대성황이었다. 공연기획사 라이브네이션에 따르면, 콜드플레이는 회당 5만 명씩 총 6회 공연으로 약 30만 명의 관객과 만난다. 해외 가수로는 최대, 최다 규모다.

팔레스타인 출신 칠레 싱어송라이터 엘리아나, 트와이스로 이어지는 1시간 30분의 사전 무대 이후 본공연은 이날 오후 8시부터 시작했다. ‘하이어 파워(Higher Power)’의 전주가 시작되자 관객의 손목에 채워진 자이로 밴드가 형형색색으로 발광하며 5만 객석은 무대의 일부가 됐다.

콜드플레이가 8년 만에 한국을 찾아 총 6회 공연으로 30만 관객과 만난다. [라이브네이션 제공]
콜드플레이가 8년 만에 한국을 찾아 총 6회 공연으로 30만 관객과 만난다. [라이브네이션 제공]

1998년 데뷔해 총 9장의 정규음반을 내며 전 세계에서 1억장 이상의 음반 판매량을 올린 콜드플레이는 오아시스와 라디오헤드 이후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영국 밴드 중 하나로 꼽힌다. 3~6집이 미국 빌보드 1위에 연달아 올랐고, 2000년 이후 밴드 중 가장 높은 음반 판매량과 스트리밍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2017년 ‘어 헤드 풀 오브 드림스(A Head Full of Dreams)’ 투어로 전 세계에서 가장 수입이 많은 아티스트라는 타이틀도 안게 됐다. 종합운동장 주경기장 공연 역시 이 투어의 일환으로 진행, 시야제한석까지 모두 개방해 이틀간 10만여 명이 운집했다.

명실상부 ‘21세기 콘서트 황제’인 콜드플레이의 공연은 연출, 사운드, 관객 매너는 물론 밴드의 음악성에 이르기까지 단연 압도적이었다. 공연 전 입구에서 모든 관객에게 나눠준 자이로 밴드는 K-팝 그룹의 응원봉이자 관객을 하나로 묶는 연출 도구로 활용됐고, 문고글은 음악에 맞춰 총천연색의 하트를 보여주며 환상의 세계로 관객을 이끌었다. 한국인 퍼펫 디자이너 문수호가 참여해 탄생한 퍼펫들의 노래 ‘휴먼 하트(Human Heart)’, 시시각각 터지는 꽃가루와 불꽃까지 이날의 공연은 거대한 음악 축제이자 퍼레이드였다.

메인 무대에서 길게 연결된 중앙 무대로 나와 ‘파라다이스’를 부를 땐 일명 ‘하늘석’으로 불리는 3층 20열 이후 관객까지 모두 일어나 노래했다. 크리스 마틴이 “한 팀이 되어 노래하자”며 ‘비바 라 비다(Viva La Vida)’를 부르자 5만 관객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떼창으로 화답했다. 떠나갈 듯 쏟아지는 노랫말들의 향연에 크리스 마틴은 무대에 두 팔을 벌리고 누워 관객들의 목소리를 감상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20여년간 사랑받으며 시대마다 히트곡을 낸 콜드플레이는 오랜 음악 생활을 관통하는 공연 목록을 선보였다. 가장 최근 앨범에 수록된 ‘위 프레이(WE PRAY)’에선 콘서트의 오프닝 무대를 꾸민 가수 엘리아나와 그룹 트와이스가 다시 무대로 나와 함께 노래했다. 그룹 방탄소년단(BTS)과 협업, 발보드 ‘핫100’ 1위에 오른 ‘마이 유니버스(My Universe)’를 부르기 전엔 BTS와의 ‘특별한 인연’을 언급하며 멤버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불렀다.

콜드플레이가 8년 만에 한국을 찾아 총 6회 공연으로 30만 관객과 만난다. [라이브네이션 제공]
콜드플레이가 8년 만에 한국을 찾아 총 6회 공연으로 30만 관객과 만난다. [라이브네이션 제공]

크리스 마틴은 피아노와 기타를 수시로 오갔고, 멤버들과 함께 큰 무대를 꽉꽉 채우며 오직 ‘음악’으로 관객을 하나로 묶었다. 통기타를 메고 시작한 ‘옐로(Yellow)’는 한국인에겐 더 특별한 곡이었다. 이 곡이 시작되자 5만 객석의 손목은 노란 불빛으로 일렁였다. 콜드플레이는 2017년에도 같은 날 내한,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위해 묵념을 하고 대형 스크린에 노란 리본을 띄운 뒤 이 곡을 노래했다. 세월호 11주기였던 이날도 음악이 주는 위로와 추모는 여전했다.

관객과의 소통에도 적극적이었다. 플래카드 메시지 중 마틴의 마음에 쏙 드는 글을 적은 팬을 무대 위로 불러 함께 노래하는 순서. ‘군 복무 중 공연을 관람하러 왔다’라는 팬의 글을 보고 그는 “내 친구 BTS 멤버들도 다 군대에 있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그러면서 오랜만에 한국에 온 이유에 대해 “한국 밴드들이 저희보다 더 잘해서 연습을 많이 해야 했다”며 “4년 전 방탄소년단과 작업을 위해 한국에 온 적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무대 위로 불려나온 팬은 마틴과 ‘송북’ 코너에서 ‘업&업(Up&Up)’을 불렀다. 기개 넘치는 창법으로 크리스 마틴의 ‘마이크 스틸러’로 자리하자 객석에선 웃음이 터졌고, 마틴 역시 함박웃음을 지으며 “노래를 완벽하게 불러줘서 고맙다. 혹시 콜드플레이에 합류하는 건 어떠냐”고 말하기도 했다.

콜드플레이의 공연이 열린 고양의 축구장은 ‘음악’으로 하나된 ‘작은 지구’였다. 관광버스를 대절해 공연장을 찾은 중국인 관객들이 이곳을 빽빽하게 채웠고, 영국·프랑스·러시아·미국 등 국적을 초월한 관객들이 한목소리로 화합했다. 세대도 국적도 다르지만 음악이 모든 장벽을 허문 시간이었다.

‘하이어 파워’부터 ‘필스 라이크 아임 폴링 인 러브(feelslikeimfallinginlove)’까지 2시간 30분가량 22개의 노래가 이어지는 내내 관객은 위로받았고, 다시 설 용기를 찾았다. 데뷔 27주년이 됐지만, 콜드플레이는 언제나 청춘이다. 이들의 음악은 늘 ‘청춘 찬가’다.

콜드플레이가 8년 만에 한국을 찾아 총 6회 공연으로 30만 관객과 만난다. [라이브네이션 제공]
콜드플레이가 8년 만에 한국을 찾아 총 6회 공연으로 30만 관객과 만난다. [라이브네이션 제공]

“최선을 다했지만 성공하지 못했을 때, 모든 것이 재로 돌아갔을 때, 하염없이 눈물이 흐를 때, 소중한 무언가를 잃었을 때 (중략) 빛이 너를 집으로 불러들여 네 마음 깊은 곳까지 따스하게 적셔줄 거야, 그렇게 내가 널 고쳐볼게”(‘픽스 유’ 중)라는 말에, ‘인생이여 만세’(‘비바 라 비다’)라며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삶을 끌어안고 가자는 노래에 청춘의 지친 일상이 위로받았다. 콜드플레이의 공연에 2030 관객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이번 공연에서도 20대 관객이 43.7%, 30대 관객이 36.5%(인터파크)나 됐다.

콜드플레이는 한국에서만 가지는 별칭이 있다. 바로 ‘탄핵밴드’다. 공교롭게도 탄핵으로 대통령이 부재할 때마다 한국을 찾는 팝스타이기 때문이다. 공연에서 별다른 언급은 없었지만, 밴드는 음악으로 곳곳에서 연대를 말했다. 반목과 대립 대신 연대와 화합의 오늘을 노래하자는 메시지가 곳곳에 숨어있었다. 각기 다른 활동을 하는 가수들(트와이스, 엘리아나)이 콜드플레이와 한 무대를 꾸몄고, ‘한 팀이 돼 노래하자’며 관객을 하나로 묶었다.

1층 스탠딩석의 관객들은 마지막 곡이 울려 퍼질 땐 강강술래를 하며 축구장을 빙글빙글 돌기도 했다. 난생처음 만난 낯선 얼굴이 콜드플레이의 음악 안에서 모든 경계를 허물었다. 크리스 마틴이 ‘사랑을 믿어요’라며 한국어로 마지막 인사를 건네자, 5만 객석의 마음에도 사랑이 내려앉았다.

5만 관객이 밀려든 콜드플레이 콘서트 직후 고양종합운동장 앞 횡단보도엔 엄청난 인파로 길을 건너는 데에만 20분이 넘게 걸렸다. 고승희 기자
5만 관객이 밀려든 콜드플레이 콘서트 직후 고양종합운동장 앞 횡단보도엔 엄청난 인파로 길을 건너는 데에만 20분이 넘게 걸렸다. 고승희 기자

음악이 멈추고 불꽃이 터졌고, 멤버들은 무대에서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관객들은 오래도록 공연장을 떠나지 않았지만, 5만 관객이 밀려든 이곳은 공연 후 대혼란이 빚어졌다. 공연장 문을 나서는 길부터 인파에 밀려 극심한 체증이 빚어졌다. 공연장 앞 횡단보도를 건너는 데만 해도 20분이 넘게 걸렸다. 공연 후 만난 30대 연인 김주란·김성민 씨는 “그동안 일상에 찌들어 있었는데 콜드플레이의 공연을 보고 마음이 충만하게 채워진 느낌을 받았다”며 “노래를 너무 잘하고 볼거리가 많아 역대 공연 중 최고였다”고 했다.

콜드플레이의 공연은 관객이 함께 완성한다. 탄소 소비가 많은 해외투어를 지양했던 콜드플레이의 이번 공연은 명실상부 ‘저탄소 콘서트’다. 공연 수익은 환경을 위해 기부하는 한편, 일회용 플라스틱 반입을 금지하고 500㎖ 이하 재사용할 수 있는 물병만 반입하도록 했다. 자이로 밴드는 친환경으로 제작, 공연을 마친 이후엔 전량 회수했다. 관객들의 협조를 위해 주최 측은 자이로 밴드 반납률을 공지한다.

현장에서 만난 관객 이슬비(32) 씨는 “오래전부터 팬이었는데 2017년 공연은 오지 못하다 이번엔 힘들게 표를 구했다”며 “이런 멋진 공연이 환경을 함께 고민하고 있다는 점이 더 의미 있게 느껴진다. 콜드플레이의 취지에 공감해 공연장 오는 길도 대중교통을 이용했고, 텀블러를 가져왔다. 자이로 밴드 분리수거는 한국이 100%를 달성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