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크리스마스 시즌이 가장 먼저 시작되는 곳은 어디일까. 바로 광고업계다. 매년 11월 영국 대표 백화점 체인 존 루이스(John Lewis)가 캠페인 광고를 공개하면 이후부터 본격적인 연말 분위기가 시작된다.

곧 20주년을 앞둔 이 캠페인은 강력한 스토리텔링으로 매년 이슈를 모은다. 단순한 상업 광고를 넘어 하나의 문화적 행사로 자리잡았고, 그 영향력 또한 연구 논문으로도 다뤄질 만큼 크다.

이처럼 창의성과 경제적 가치를 동시에 창출하는 산업을 영국에서는 ‘창조산업(Creative Industries)’이라 부르고 있다.

과거 한때 산업혁명을 주도하면서 제조업 강국으로 통했던 영국은 20세기 이후부터는 새로운 성장 동력이 필요해졌다. 1998년 영국 디지털문화미디어스포츠부(Department for Digital, Culture, Media and Sport)가 창조산업의 개념을 공식화한 뒤, 영국 정부는 이 산업의 성장 가능성에 주목하며 일관된 정책 기반을 다져왔다.

그 결과 오늘날 창조산업은 영국 경제를 움직이는 또 하나의 엔진이 되었다는 평가다. 이를 통해 2023년 기준으로 연간 약 1240억 파운드(약 235조원)의 부가가치를 창출했고, 약 240만명 이상을 고용하고 있다.

이에 발맞춰 정부의 정책 지원도 진화하고 있다. 2022년부터 2023년까지 약 22억 파운드(약 4조원)의 세금 감면이 제공됐고, 올해 1월에는 ▷게임 ▷공연 ▷콘텐츠 등 수출을 위한 6000만 파운드(약 1137억원) 규모의 맞춤형 지원책이 발표됐다.

특히 아마존 프라임이나 넷플릭스 등 스트리밍 플랫폼이나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의 확산으로 고예산 드라마 및 스트리밍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이를 겨냥한 특화 정책도 신설됐다.

이 분야에 대한 인재 양성도 활발하다. 영국의 주요 대학들은 창조산업 관련 전공을 다수 운영 중이며, 올해 8월부터는 창조산업 특화 단기 인턴십도 시행된다.

또한 2021년 10월 신설된 ‘창조산업 종사자(Creative Worker)’ 비자를 통해 글로벌 인재의 유치도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영국 내무부 통계에 따르면 창조산업 종사자 비자 신설 이후 2024년 말까지 약 2만1000여명의 해외 인재가 유입됐다.

영국의 이러한 전략은 한국의 콘텐츠 산업에도 시사점을 제공한다. 최근 한국의 콘텐츠와 디자인 기반 제품들은 그 어느 때보다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이곳 영국에서도 한국과 관련된 전시, 공연, 스타트업 등은 더 이상 희귀한 것이 아니다. 그 배경에는 우리 기업과 인재들의 노력은 물론 정부의 ‘K-콘텐츠 전략산업 육성 정책’이 중요한 뒷받침이 됐다.

영국이 창조산업의 잠재력을 일찍이 알아보고 정책적 기반을 다져온 것처럼, 한국에서도 이러한 흐름을 뒷받침할 일관성 있는 정책 수립이 필요하다. 기업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맞춤형 세제 혜택과 지원, 글로벌 인재 양성 등이 핵심 과제가 될 것이다.

한국의 K-콘텐츠가 전 세계의 관심을 받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창의성 위에 지속가능한 기반을 더할 수 있는 결정적인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김연진 코트라 런던무역관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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