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어 웨더
존 베일런트 지음
제효영 옮김
곰출판
파이어 웨더 존 베일런트 지음 제효영 옮김 곰출판

영남지역 곳곳에서 발생한 산불이 아흐레 만에 겨우 진화됐다. 이 산불로 30명이 숨지고 역대 최대 규모인 4만8000㏊가 잿더미가 됐다. 이재민은 3만7000여명에 달했다. 올 초 미국 LA를 덮친 대형 산불도 24일 만에 겨우 진압됐다.

한때 인류진화의 주된 동력이었던 불이 이제는 세상을 끝장낼 기세로 맹렬히 타오르고 있다. 오늘날 대형 산불은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났다. 불을 길들여 문명을 일군 우리는 이제 불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다스려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지구를 거대한 불쏘시개로 만들어버린 건 다름 아닌 화석연료를 무분별하게 소비한 인간 자신이기 때문이다.

논픽션 작가 존 베일런트는 신간 ‘파이어 웨더’를 통해 2016년 5월 캐나다 석유산업의 중심지이자 미국 최대 원유 공급업체가 있는 포트맥머리에 일어난 화재를 집요하게 좇는다. 이곳에서 치솟은 불길이 최근 전 세계 곳곳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과 무관하지 않다는 문제의식에서다.

단 하루 만에 10만명이 대피해야만 했던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이 대형 산불의 발화점은 임야에 떨어진 작은 불씨였다. 나무가 일렬로 늘어섰던 삼림이 하늘 높이 치솟는 화염으로 변하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임야 화재의 진화 여부를 좌우하는 것은 날씨다. 이산화탄소나 메탄 같은 온실가스 증가로 날씨의 패턴이 과거와 크게 달라졌기에 화재 진행 경로도 예측이 더 어려워졌다. 실제로 포트맥머리 일대에 번진 화마의 빠른 확산은 이상기온 현상과 동시에 나타났다. 이 시기 북미 아북극지역의 기온은 보통 15도 안팎인데 당시 최고 기온이 32도를 넘어 역대 가장 높은 기온을 기록했다.

특히 연기와 바람을 억제하는 기온역전층이 걷히면서 초속 10m 이상의 이른 강풍이 불어닥쳤다. 바람을 등에 업은 불길은 스스로를 태워 더 커지는 거대한 괴물이 됐다.

이산화탄소 농도가 증가하면 대기에 갇히는 열도 많아진다. 이렇게 열이 축적될수록 화재가 잦아지고 화재 적란운도 더욱 많아진다. 즉 전 세계적으로 빈번해진 대형 산불은 자체적으로 지속되고 갈수록 증폭되며 연쇄적인 영향을 무수히 동반하는 대기 악순환의 초기 단계의 방증인 셈이다. 지구 곳곳에서 타오르는 불길을 보며 지구과학자들은 한 가지 불길한 사실을 떠올린다. 현재 인류가 초래한 이 재앙이 과거 지구를 휩쓴 대멸종의 초기 단계와 놀랍도록 닮아 있다는 점이다. 지금 지구에서 여섯 번째 대멸종이 진행 중이며, 그 원인이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간의 경제활동 때문이라는 의견에는 과학계가 대체로 동의한다. 지구 역사 속에서 인류만큼 빠르고 광범위한 파괴를 일으킨 종은 없었다.

이런 이유로 저자는 현대 인류를 사상 최대의 연소기관을 만든 존재이자 연소기관 그 자체가 된 ‘호모 플라그란스(Homo flagrans)’로 정의한다. 이대로 가다간 지구 역사상 인류가 곧 ‘불태우는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다는 강력한 경고다.

이정아 기자


dsu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