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韓 ‘30개월령 이상 수입 금지’ 불공정”
농가, 내수 부진에 부담…광우병 트라우마
불안한 업계 “정확한 정보 표시 제도 시급”

[헤럴드경제=정석준 기자] 미국 소고기 업계가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 한국의 ‘30개월령 이상 수입 금지 조치’ 철폐를 요청하자 국내 축산업계 안팎에서는 한우 농가에 치명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과거 정치적 이슈로 번진 ‘광우병 사태’까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잇따른다.
13일 농림축산식품부 등 관계부처에 따르면 미국전국소고기협회(NCBA)는 지난 11일(현지시간) USTR에 한국의 소고기 검역 제도를 불공정 무역 관행으로 지목하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USTR은 내달 1일까지 교역 상대국의 불공정하고 상호적이지 않은 무역 관행을 식별하고, 이를 개선할 방안을 담은 보고서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출할 계획이다.
미국산 소고기 수입에 대한 30개월 연령 제한이 있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한국은 2008년부터 광우병(BSE) 발생 우려가 적다고 평가되는 30개월령 미만 미국산 소고기만 수입하고 있다. 미국 전국소고기협회는 중국, 일본, 대만 등처럼 한국도 미국산 소고기 수입에 월령 제한을 해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 내부에서 한국에 대한 소고기 월령 제한 폐지를 주장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USTR은 2013년부터 해마다 국가별 무역장벽보고서에서 한국이 30개월 미만인 미국산 소고기를 수입하는 것을 ‘한시적 조치’라고 강조했다.
한우 농가는 수입 규제 완화에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소비 부진과 한우 가격 하락이 이어지는 가운데 미국산 수입이 확대되면 어려움이 가중될 수 있어서다. 한우 농가의 적자는 2022년부터 시작됐다. 실제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한우 1마리의 생산비는 1021만1000원, 판매액은 평균 878만5000원으로 142만6000원의 적자가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작년에는 적자 폭이 1마리당 213만원까지 늘어난 것으로 추산된다. 이에 정부와 업계는 한우 소비 촉진 행사를 펼치기도 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미국산 소고기에 대한 관세가 2026년 철폐되면 한우 소비량은 더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한우자조금관리위원회는 ‘쇠고기 완전 개방화 시대 대응 한우 산업 정책방안’ 연구용역 보고서를 통해 “2026년 미국산 수입 소고기 관세가 완전히 철폐되면 한우 농가의 생산자잉여 감소액은 4481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국한우협회도 전날 성명을 통해 “내수 시장은 무너졌고, 한우농가는 4년째 적자에 허덕이며 한계점에 내몰려 있다”면서 “내년 미국산 소고기 관세가 0%가 되는 상황에서 비관세 장벽인 ‘개월령’까지 철폐되면 더 이상 한우농가가 설 자리는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미국산 소고기가 진열돼 있다. [연합]](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3/13/rcv.YNA.20250312.PYH2025031204480001300_P1.jpg)
유통업계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미국산 소고기 제한이 풀릴 경우 소비자 선호도가 빠르게 바뀔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미국산 소고기를 찾는 고객이 늘어나면, 수요에 맞춰 발주량을 늘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유통업계 관계자도 “판매 품목이 늘어나면 당장 업계에는 긍정적인 요소가 될 수 있겠지만, 소비자의 반응에 따른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라며 “미국산 소고기에 대한 불안감이 더 커져 역풍이 생길 수도 있다”고 경계했다.
과거 광우병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은 2001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시작했으나 2003년 미국에서 광우병 사태가 발생하자, 이를 전면 금지했다. 이후 양국이 장기간 협상 끝에 2008년부터 수입을 재개했으나 대규모 반대 시위가 일어나는 등 파장이 일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소비자에게는 과거 광우병 사태로 인한 트라우마가 여전히 남아있다”면서 “대량으로 유통하는 기업이나 음식점 등에서 위생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에 수입을 하더라도 정확한 정보를 표시하는 등 관련 제도를 촘촘하게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지인배 동국대 식품산업관리학과 교수는 “(한우와 관련된) 생산비의 대부분이 사료비인데 현실적으로 낮출 수 있는 수단이 많지 않다”면서 “수입이 늘어나는 추세가 계속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정부 차원에서 한우 농가의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정책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미국산 소고기 수입에 대해 “30개월 제한은 협상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농식품부는 전날 설명자료를 내고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과 관련한 미국 측 입장은 확인된 바 없다”며 “현재까지 미국산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과 관련하여 트럼프 행정부의 공식적인 요청은 없었고, 구체적인 논의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mp1256@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