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17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위에서 ‘반도체 특별법’ 제정안을 심사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반도체 산업 연구직들에 대한 ‘주 52시간 예외 적용’을 두고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한때 긍정적인 입장을 밝혀 법안 처리 가능성이 거론됐다. 하지만 이 대표가 최근 이런 입장을 철회하면서 이날 소위 처리가 무산됐다. 민주당은 “주 52시간 예외는 반도체 특별법이 아니라 근로기준법으로 다룰 문제”라는 입장이다. 반면 정부와 여당은 “주 52시간 예외 없는 반도체 특별법은 ‘앙꼬 없는 찐빵’”이라며 맞서고 있어 합의점 도출이 난망하다.

여야는 세계적인 반도체 패권 경쟁에서 한국 기업이 살아남으려면 국가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보고 보조금 지원 등을 담은 반도체 특별법과 세액공제 확대를 담은 K칩스법(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중 K칩스법은 지난 11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위를 통과해 본회의 처리 가능성이 커졌다. 그러나 반도체 기업에 보조금 등 국가가 직접 재정을 지원하는 반도체 특별법은 주 52시간 예외 적용과 관련한 쟁점으로 국회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한 것이다.

경제계가 투자세액 공제와 보조금 지원 보다 주 52시간 예외를 더 중시하는 것은 업(業)의 특성 때문이다. 반도체는 기술력이 앞선 기업은 이익을 독점하고 후발 주자는 퇴출당하는 냉정한 승자 독식의 시장이다. R&D(연구·개발) 역량을 집중해 혁신 제품의 개발 기간을 단축하는 게 관건인데 경쟁국에는 없는 전문직 노동시간 규제를 우리만 적용하다 보니 반도체, AI 등 첨단산업의 경쟁력이 갈수록 약화되고 있다. 강점을 가진 반도체 메모리에선 중국의 추격을 받고 있고, 파운드리(위탁 생산)에선 대만 TSMC와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연구소를 24시간 가동하는 TSMC는 미국 반도체의 상징 인텔의 파운드리 부문 인수도 타진 중이다. 저비용·고성능 인공지능(AI)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 딥시크 쇼크도 최고의 인재들이 밤낮없이 혁신에 몰두한 결과다.

졸면 죽는 기술 혁신 전쟁에서 경직적 노동시간 규제는 우리 기업들의 발목에 무거운 쇳덩이를 채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 대표는 ‘우클릭’ 비판에 “세상 바뀌는데 변하지 않는 게 바보”라고 했다. 우리의 경쟁국들이 자국 기업의 발을 가볍게 해 더 빨리 뛸 수 있도록 하는데 우리만 역행한다면 이보다 더한 바보짓이 없을 것이다. 경제특사로 활동중인 최종구 국제금융협력대사가 17일 “해외 투자자들은 한국 대통령의 탄핵 심판 보다 반도체 특별법 통과 여부, 상속세 완화 등 구체적인 경제 문제에 더 관심이 많았다”고 했는데 곱씹어 봐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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