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1월 하순의 어느 날, 이웃마을로 놀러간 아내가 막 어미젖을 뗀 검은 강아지 한 마리를 안고 왔다. 하지만 필자는 그리 달갑지 않았다. 집과 농장을 지키는 풍산개 한 마리가 있는 데다 무엇보다 강원도 혹한을 앞둔 때라 15년 전 ‘악몽’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2010년 홍천 산골로 귀농한 필자 가족은 그해 11월 하순에 진돗개 강아지를 처음 들였다. 귀염둥이의 등장에 가족 모두는 환호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한겨울 강아지 키우기는 좌충우돌의 연속이었다. 늦은 밤과 새벽에도 수시로 바깥 개집을 오가며 강아지를 돌보느라 급기야 동상까지 걸렸었다.
또 다시 맞닥뜨린 한겨울 개고생의 추억, 그런데 괜한 걱정이었다. 새 강아지는 ‘양치기 개’로 불리는 보더콜리(수컷)와 진돗개(암컷) 사이에서 태어난 잡종견인데, 막상 키워보니 활동력과 충성심, 그리고 영리함까지 갖춰 생각보다 훨씬 잘 적응했다. 특히 개라면 어쩔 수 없는 탐식본능마저 잊을 정도로 자연에서 뛰노는 것을 너무나 좋아한다.
올 겨울은 유독 폭설과 한파가 잦았다. 필자 가족이 사는 홍천 산골은 아침기온(기상청 날씨누리)이 영하 20도 아래로 떨어진 날만 1월 3회, 2월 5회에 달했다. 그렇지만 필자와 새 강아지는 이에 아랑곳 않고 산과 들, 강변을 함께 쏘다니며 신나게 놀았다.
산 좋고 물 좋고 공기 좋다는 강원도 산골은 사실 겨울에 그 진면목이 제대로 드러난다. 인기척마저 결빙된 엄동설한에 호젓한 자연만이 그 넉넉한 품을 열고 기다리고 있으니 자연과 하나 돼 놀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필자와 강아지의 자연놀이는 단순한 산책이 아니다. 짧게는 두 시간, 길게는 네 시간 이상 걸린다. 때론 극한 겨울산행도 마다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어린 강아지에게 무리가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들었지만 착각이었다. 양치기 개답게 가파른 산비탈을 질주하는 모습은 에너지가 넘친다. 동네 주변 산과 강은 이미 샅샅이 누빈지라 새 루트를 개척하며 다니고 있다.
강아지의 활동에 제약이 따르지만 시골길을 다닐 때는 어쩔 수 없이 목줄을 채운다. 인적이 없는 산속으로 들어가면 그때 풀어준다. 목줄이라는 속박에서 해방된 강아지의 행복 가득한 표정과 신명나는 몸짓은 원초적 자유를 일깨워준다. 게다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몸집과 짓는 소리에서 자연 속 자유가 곧 건강과 치유로 이어짐을 거듭 확인한다. 강아지와 함께 하는 필자 또한 이 자유와 치유를 무한 충전함은 물론이다.
사실 강원도 산골생활이라고 해도 마치 개 목줄처럼 돈, 명예, 염려 등 ‘세상의 줄’에 매여 살아가기 십상이다. 필자 가족 또한 여기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렇지만 산골은 무위자연과 바로 통하니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보이지 않는‘세상의 줄’을 벗어던지고 자연이 선물하는 자유와 치유를 값없이 향유할 수 있다. 자연은 또 영적 초자연으로 안내하는 창이기도 하다. 애물단지 아닌 귀한 선물이 된 산골 강아지의 교훈에서 보듯, 산골생활의 최고 가치는 자연과 초자연으로부터 얻는 자유와 치유다.
박인호 전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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