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54일 만…현직 대통령 사상 첫 기소

대검 “전국 고·지검장 회의 개최 결과 공소제기 지시”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과 윤석열 대통령[연합]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과 윤석열 대통령[연합]

[헤럴드경제=윤호 기자]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는 26일 윤석열 대통령을 내란우두머리로 구속기소했다. ‘12·3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54일 만으로, 현직 대통령이 기소된 건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다.

이날 특수본은 “법원의 납득하기 어려운 2회에 걸친 구속기간 연장 불허 결정으로 피고인 대면조사 등 최소한도 내에서의 보완 수사조차 진행하지 못했으나, 그동안 수사한 공범 사건의 증거자료와 경찰에서 송치받아 수사한 사건의 증거자료 등을 종합 검토한 결과 기소함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특수본은 공수처로부터 지난 23일 피고인에 대한 내란우두머리·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피의사건을 송부받고, 24일 경찰로부터 피고인에 대한 내란우두머리 피의사건 6건을 송치 받았다.

특수본은 공소제기 결정 전 피고인에 대한 대면조사 등의 보완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지난 23일과 25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구속기간 연장을 신청했으나, 법원은 2회 모두 불허했다.

검찰은 “피고인의 구속 이후 사정변경이 없어 여전히 증거인멸 우려가 해소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해 피고인의 1차 구속기간 만료 전, 피고인에 대한 경찰 송치 사건과 공수처 송부 사건의 범죄사실 중 현직 대통령의 불소추특권(헌법 제84조)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 내란우두머리 혐의에 대해서만 구속 기소했다”고 설명했다.

대검찰청은 “이날 오전 개최한 전국 고·지검장 회의를 개최한 결과 공소제기를 지시했다”며 “회의 참석자들은 ‘법원이 검찰의 구속기간 연장신청을 불허했으나, 이는 서울교육감 사건 등 공수처가 송부한 사건에 대해 검찰의 보완수사로 유죄를 확정한 전례에 배치된다. 검사의 책임과 직무범위를 규정하고 있는 형사소송법 등 형사사법체계에 반하는 부당한 결정’이라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과 공모해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의 징후 등이 없었는데도 위헌·위법한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등 국헌 문란을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혐의를 받는다.

계엄군과 경찰을 동원해 국회를 봉쇄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방해하고, 우원식 국회의장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한동훈 국민의힘 전 대표 등 주요 인사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직원을 체포·구금하려 했다는 혐의도 있다.

검찰은 비상계엄 선포 사흘 만인 지난달 6일 군검찰과 특별수사본부를 꾸리고 내란죄 수사를 본격화했다.

검찰은 특수본 구성 이틀 만에 내란 핵심 피의자인 김 전 장관을 조사 도중 긴급체포해 구속한 것을 비롯해 군사령관을 잇달아 조사했고, 윤 대통령에게 피의자 신분 출석을 요구하며 수사 속도를 높였다.

하지만 공수처가 중복수사 방지를 명목으로 이첩요청권을 발동했고, 검찰은 지난달 18일 윤 대통령 사건을 넘기기로 결정했다.

사건을 넘겨받은 공수처는 윤 대통령이 세 차례 출석 요구에 불응하자 서울서부지법에서 체포영장을 발부받았고, 두 차례 시도 끝에 지난 15일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서 윤 대통령을 체포했다.

공수처는 지난 19일 윤 대통령을 구속했지만 윤 대통령의 거부로 제대로 된 피의자 조사를 한 번도 하지 못했다. 강제구인과 서울구치소 방문조사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결국 공수처는 지난 23일 빈손으로 윤 대통령 사건을 다시 넘겼다. 검찰은 이튿날 경찰로부터도 윤 대통령에 대한 내란 피의 사건 6건도 송치받았다.

검찰은 기소 결정 전 최소한의 조치로 대면조사 등 보완 수사가 필요하다고 보고 다음 달 6일까지 구속기간을 연장해 달라고 두 차례 요청했지만, 법원의 제동으로 가로막혔다. 서울중앙지법은 독립된 수사기관인 공수처가 수사한 사건에 대해 검찰이 보완 수사를 할 수가 없다는 취지로 구속 연장을 허가하지 않았다.

결국 검찰은 이날 심우정 검찰총장 주재로 전국 검사장 회의를 열어 논의한 끝에 구속기간 만료를 하루 앞두고 윤 대통령을 기소했다. 시간에 쫓겨 대면조사를 한 차례도 시도하지 못했지만 그간 김 전 장관과 군사령관 등 내란 중요임무 종사자 10명을 구속기소하면서 축적해온 물적 증거와 진술을 바탕으로 재판에서 유죄 증명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할 때 윤 대통령을 석방할 경우 정치적 파장이 적지 않고, 불구속 상태에서 조사에 쉽게 응하지 않고 증거 인멸 우려만 커질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유례없는 현직 대통령 수사가 여러 잡음 속에 순탄치 못하게 진행된 끝에 시간에 쫓기듯 마무리됨에 따라 앞으로 재판 과정에서도 논란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 측은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 것은 물론, 공수처가 내란죄 수사권이 없음에도 사건을 맡고 관할권 없는 서울서부지법에 체포영장을 청구하는 등 각종 위법을 저질렀다고 주장해 왔다.

검찰 조사가 사실상 전혀 이뤄지지 않은 채 재판에 넘겨짐에 따라 윤 대통령은 법정에서 이같은 주장을 부각하며 공소기각을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윤 대통령 측은 구속만료도 25일로 보고 있는 만큼, 향후 이를 문제삼을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