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인간처럼 사고하는 인공지능 로봇이 등장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신경과학 연구가 더 진행돼야 한다고 전해드렸습니다. 인공지능의 복잡계가 인간의 뇌처럼 현저하게 늘어나야만 하고 또 개별적인 대응에 대한 행동 범위가 코딩돼 있어야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는데, 아직 인간은 우리의 뇌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사 보기: ①인간처럼 생각하는 인공지능…과연 가능할까?
하지만 특히 올해 인공지능 로봇이 자주 언급되고 있는 건 이러한 뇌 연구와 상관이 없습니다. 최근 진행되는 인공지능 연구에서 보이는 의미심장한 징후가 있는데요. 바로 빅데이터입니다.
딥러닝(Deep Learning)
딥러닝은 분산된 데이터 속 패턴을 발견한 뒤 사물을 구별하는 기술입니다. 판단 기준을 전해주지 않아도 컴퓨터가 스스로를 인지, 추론, 판단할 수 있게 된 것이죠. 영화 ‘그녀(Her)’에서 100분의 2초 만에 ‘아기 이름 짓는 법’이라는 책에 나오는 18만 개의 이름 중 하나를 선택해 자신의 이름으로 삼는 인공지능 시스템인 사만다가 바로 딥러닝 기술로 구현된 컴퓨터입니다.
딥러닝을 대표하는 로봇으로는 60년 만에 처음으로 튜링테스트를 통과한 ‘유진 구스트만’이 있습니다. 튜링테스트는 1950년 앨런 튜링이 제안한 테스트인데요. 내용은 간단합니다. 30명의 심사위원들이 5분 동안 상대와 대화를 나눈 뒤 대화를 나눈 상대가 인간인지 컴퓨터인지 맞추면 됩니다. 앨런 튜링은 “컴퓨터의 반응을 인간의 반응과 구별할 수 없다면 그 컴퓨터는 인간처럼 생각한다고 볼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60년 만에 처음으로 튜링테스트를 통과한 유진 구스트만
튜링테스트 결과는 어땠을까요? 우크라이나에 사는 13세 소년으로 자신을 소개한 뒤 사람들과 격리된 상태에서 대화를 나눈 유진은 무려 10명이 넘는 심사위원들을 속였습니다. 유진이 심사위원들의 질문에 가끔 엉뚱한 답변도 해 서투른 대화를 보여주기도 했지만 3명 중 1명은 유진이 진짜 13세 소년이라고 착각했습니다. ‘또 하나의 의식’을 가진 인공지능 로봇이 탄생했다는 기대감이 한껏 끌어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화의 맥락을 이해하다 : 왓슨과 페퍼
그런데 가까운 미래에는 유진 같은 인공지능보다 대화의 맥락을 이해하고 전문적인 지식을 알려주는 인공지능이 더 빨리 상용화될 것이라는 분석이 더 많습니다. 자연스러운 대화를 하려면 질문의 뜻을 추정해 답을 해야 하는데 컴퓨터는 광범위한 예측이 불가능하니 아예 특정 분야로 활용 범위를 좁히겠다는 것이지요.
2011년 미국의 TV 퀴즈쇼에서 인간 챔피언 2명을 더블 스코어로 물리치고 우승한 IBM의 슈퍼컴퓨터 ‘왓슨(Watson)’이 대표적입니다. 만일 왓슨에게 영화 등장인물이 몇 명이었는지 묻는다면 왓슨은 영화에서 고유명사가 몇 번 등장했는지, 인칭대명사로 표현이 몇 번 있었는지, 이 중 동일인이 아닌 사람은 몇 명인지 등을 구별한 뒤 답해야만 합니다. 꽤 복잡한 처리 정보처리 능력이 요구되는 건데요. 왓슨은 사회자가 질문을 읽는 동안 인터넷에 접속한 뒤 빅데이터를 빠르게 분석해 이런 과정을 해냅니다.
인간 챔피언을 누르고 우승을 차지한 IBM의 왓슨시스템
지난해 일본 소프트뱅크가 개발한 감성로봇 ‘페퍼(Pepper)’의 가슴에는 왓슨시스템이 탑재된 아이패드가 부착돼 있습니다. 페퍼는 기동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 로봇이라고 보기 어렵기도 합니다. 다만 페퍼는 사람들의 감정을 인식한 다음 자기 학습을 통해 그에 적합한 행동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능력을 가졌습니다. 이성적인 지적 능력 수준도 상당해 사용자의 과외 도우미가 될 수도 있고요.
인간, 로봇에 감정을 이입하다
군사용 로봇 중에는 미국의 보스턴 다이나믹스가 지난 2월 공개한 네 발 달린 로봇 ‘빅독(Big Dog)’도 있습니다. 바퀴가 아닌 다리를 움직이는 로봇입니다. 땅이 울퉁불퉁해도 넘어지지 않고 얼음판 위를 자연스럽게 걷습니다. 또 적군이 발로 힘껏 차도 네 발을 이리저리 움직여 균형을 되찾고 중심을 잡고요.
그러나 발로 세게 차도 넘어지지 않으려고 버티는 빅독의 영상이 소개되면서 보스턴 다이나믹스는 전 세계에서 100만 개의 악플을 받게 됩니다. 보스턴 다이나믹스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빅독 동정론(?)이 일기 시작한 것이죠. 미국에선 보스턴 다이나믹스 불매 운동이 벌어질 뿐만 아니라 의회에 로봇학대금지 법안이 제출되기까지 합니다. 인간과 유사한 방법으로 사고하지 않지만 앨런 튜링 방식의 인공지능이 정교화되면 인간이 로봇에도 감정이입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뇌 2%를 쓰는데 에너지 20%를 씁니다. 인공지능 로봇이 발달되면 인간이 그만큼 에너지를 덜 쓰는(머리를 사용하지 않는) 방법으로 로봇에게 업무를 일임할 수 있을 겁니다. 특히 인터넷과 더불어 방대한 데이터를 잘 분석할 수 있는 시대가 이어지면 인공지능이 더 이상 인간의 뇌를 닮지 않아도 ‘또 하나의 의식’을 가지고 인간처럼 판단하는 일도 벌어질 것이고요. 자유의지까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사람과 감성적인 대화를 나누고 교감하면서 사랑의 감정도 가질 수 있는 인공지능 영화 ‘그녀’ 속 사만다를 현실에서 만날 날도 어쩌면 머지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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