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까지 소매판매가 ‘신용카드 대란’ 사태로 소비절벽을 겪은 2003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매판매는 경기 흐름을 알 수 있는 대표적인 내수 지표다. 수출·환율 등 주요 경제 지표에 적신호가 켜진 가운데 경기의 버팀목인 내수 마저 흔들리면 서민경제는 벼랑끝으로 내몰릴 수 밖에 없다. 자영업자·소상공인 등 불황의 최전선에서 신음하는 취약계층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이 시급해졌다.

12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소매판매액지수는 전년 동기 대비 2.1% 감소했다. 2023년(-1.5%)보다 감소 폭을 키웠고 2003년 카드 사태(-3.1%) 이후 21년 만의 최대 하락이다. 심각한 점은 승용차를 비롯한 내구재(-2.8%)와 의복 등 준내구재(-3.7%), 음식료품 등 비내구재(-1.3%)에 대한 소비가 함께 감소한 것이다. 3개 상품군 소비가 2년 연속 일제히 감소한 것은 1995년 관련 통계 집계 이후 처음이다. 당장 먹고 입고 쓸 일용품부터 오래 두고 사용할 물건까지 모두 전보다 덜 샀다는 의미다. 외환위기때도 전 상품군의 소비가 줄었지만, 이듬해엔 회복했다.

문제는 이번 지표에 계엄 사태 영향은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계엄 사태 이후 소비자 심리가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보다 더 얼어붙었다고 분석한 바 있다. 정부 역시 올 초 내놓은 경제전망에서 민간 소비 증가율이 1.8%에 그칠 것으로 내다보며 지난해 하반기(7∼12월) 전망치(2.3%)보다 큰 폭 내려 잡았다.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지고 있는 점도 내수 전망을 어둡게 한다. 작년 12월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1.9% 올라 전월(1.5%)보다 증가 폭이 커졌다. 1500선을 넘보는 환율에 석유류 가격이 오르면서 전체 물가를 밀어 올린 것이다. 12월 말 달러화 대비 원화가치는 한 달 전보다 5.3% 하락해 전쟁 중인 러시아 루블화(-6.4%)에 이어 주요 30개국 중 두 번째로 낙폭이 컸다.

내수가 살아나야 서비스·제조업에 숨통이 트이고 바닥경제에 온기가 돈다. 공감대가 있는 추경 편성부터 속도를 낼 일이다. 정부가 예산 67% 상반기 조기 집행, 설 연휴 임시공휴일 지정 등 나름 애를 쓰고 있지만 추경이 더해지면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다. 다만 민생회복지원금 1인당 25만원(더불어민주당), 내란회복지원금 20~30만원(조국혁신당)식의 돈풀기는 여야간 이견이 크므로 추경 규모 등 합의가능한 것부터 진행시킬 필요가 있다. 재정 지출 확대에 금리 인하가 같이 가면 정책 조합의 효과는 더 커질 수 있다. 한국은행의 선택이 주목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