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행복해야할 순간 최악의 참사가 벌어졌다. 영화 ‘타워’(감독 김지훈)는 2012년 크리스마스, 초고층 주상복합빌딩 ‘타워스카이’의 참사를 그린 작품으로, 기존의 재난을 소재로 다뤘던 영화와 차별성을 추구했다.
‘타워’를 통해 멀티캐스팅 작품에 처음 출연한 손예진은 현재 설레는 마음으로 영화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영화 속 따뜻한 미소로 모든 이들을 기분 좋게 만드는 타워스카이의 푸드몰 매니저 서윤희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관객의 입장에서 설레면서 영화를 기다린 건 처음이에요. 영화를 보고 나서야 ‘우리가 정말 이렇게 고생했구나, 저 장면이 저렇게 나왔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배우들도 많이 나오고 같이 일한 감독님과 스태프들 모두 가족같은 분위기였어요. 그동안 멜로 작품을 주로 했는데, ‘타워’에 참여했던 것이 저에게는 색다른 경험이었어요. 게다가 서로 의지가 되는 인간적으로도 좋은 분들과 함께 해서 더욱 좋았던 것 같아요.”
손예진은 인간에게 꼭 필요하지만 원초적인 공포를 안겨주는 불과 사투를 벌이며 몸을 사리지 않는 열연을 펼쳤다. 또한 쏟아지는 5톤의 물을 직접 경험하기도 했다. 그가 입고 있던 새하얀 의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잿빛으로 변해갔고, 그의 얼굴 또한 화재에 검게 그을려 졌다.
“나중에 제 모습을 보니까 머리 색까지 변해 할머니가 됐었어요. 하얀색이 점점 회색으로 변하가니까 오히려 더 좋아보이지 않을까요? 예쁘게 나오는 건 신경쓰지 않았어요. 재난 영화인데다가 나중에 CG로 잘 해주시리라 믿었어요.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 아름답잖아요.”
여배우이기에 화면에서 예쁘게 보이고 싶은 마음은 당연하지만, 그는 작품 속에서 철저하게 서윤희로 분했다. 촬영 당시 피칠을 한 엉망인 모습 때문에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겪었다.
“하루는 세트장에서 휴식을 하기 위해 잠깐 밖에 나와 있었어요. 얼굴엔 피칠이 돼 있고 꾀죄죄한 모습으로 축 쳐져서 늘어있으니까 마침 그 주변을 지나던 어떤 분이 촬영인줄 모르고 신고를 했나봐요. 결국 경찰관까지 왔었어요. 초라한 몰골에 저희를 못알아 봤나봐요.(웃음)”
손예진은 그동안 남녀 주인공이 이야기의 큰 축을 이끌어가는 작품에 참여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멀티캐스팅 블록버스터 작품으로, 그에게 있어서는 첫 도전인 셈이었다. 카메라와 감정선을 이끌어가는데 있어서도 어려움이 상당수 따랐다.
“항상 여배우만을 위한 카메라와 조명에 익숙해져 있다가 카메라 세대가 동시에 돌아가면서 배우들을 잡으니까 순간 멍하니 있었어요. 그동안은 혼자 감정선을 잡고 캐릭터 싸움을 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함께 하면서 호흡을 맞춘다는 것을 경험했어요. ‘이렇게 따라가줘야 하는구나’라는 시스템적인 낯설음이 느껴졌지만, 외롭지 않았어요. 항상 카메라 앞에서 외로웠었는데 이번에는 든든한 느낌이 들었죠.”
‘타워’는 인간의 욕심에 의해 벌어진 재난을 다루고 있다. 화재를 소재로 한 영화다 보니 소방관들의 사투가 인상깊게 남는다.
“이번 작품을 통해 소방관 분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게 됐어요. 소방관은 어렸을 때 막연한 꿈이 아닌, 평균 수명이 가장 낮은 직업이라 들었어요. 영화 촬영 당시 다른 지역에서 화재가 발생해 소방관 분들이 돌아가셨다는 기사를 봤어요. 정말 힘들고 대단한 일을 하는 분들이라 생각해요.”
‘타워’에서는 고위 간부층 부터 청소부 아줌마까지 많은 직업과 계층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손예진은 ‘타워’를 통해 어떤 감정들을 느꼈을까. 또 배우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자신의 직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타워 스카이 안에는 부자도 있고 청소하는 직원도 있고, 건물을 책임지는 인물, 구조하러 온 소방관 등 많은 사람들이 있어요. 말도 안되는 순간에 운명이 다가오는데, 인간은 위기의 순간에 자신도 모르게 강해지는 것 같아요. 또 살려는 의지와 본능 사이에서 갈등을 느끼기도 하고요. 저는 ‘타워’를 보는 관객들이 인간애에 대한 따뜻함과 감사하는 마음을 느끼셨으면 해요. 인간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느끼는 상황에 오게 되면 다들 똑같아 진다고 생각하거든요.”
“연기자라는 직업을 선택하면서 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들이 많아졌어요. 직장을 다니고 바쁜 일들을 하는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없는 반면에 연기자들은 항상 작품을 대비하면서 나와 작품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나를 다시 알게 되고, 나와의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는 것 같아요. 촬영할 때는 힘들고 고생하지만, 쉴 때에는 충분하게 내 마음, 감정들을 끊임없이 성숙하게 다져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인터뷰 말미 그는 연말을 맞이해 ‘받고 싶은 프러포즈’와 내년 한 해의 계획을 전해왔다.
“드라마 ‘신사의 품격’에서 나왔던 프러포즈 장면 기억하시나요? 친구들이 함께 노래를 불러주면서 프러포즈 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아요. 유투브에서도 이와 유사한 장면이 있어요. 신랑의 가족들이 총 동원돼 여자는 차 트렁크에 타서 그 장면을 보는거죠. 20대 때는 그러한 장면들을 보면 시니컬하고 닭살스러웠는데, 지금은 풍선만 있어도 좋을 것 같아요. 나를 위해 모든 지인들이 그 자리를 함께 채워주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아요. 내년에도 다른 작품도 있고 열심히 일해야 할 것 같아요. 결혼이요? 한...서른 다섯 쯤? 너무 늦게 하고 싶지는 않아요.(웃음)”
로맨틱 코미디에 이어 블록버스터까지 매번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고 있는 손예진의 모습을 볼 수 있는 ‘타워’는 오는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만나볼 수 있다.
조정원 이슈팀 기자 chojw00@ 사진 황지은 기자 hwangjieun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