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형석 기자]이 영화, 대선 TV 토론보다 재미있다. 어떤 대선 후보보다 콘텐츠가 풍부하다. 이 땅에서 정치를 공부하거나 정치를 하거나 투표를 할 사람이면 한번쯤 봐야 될 ‘한국 정치학 개론’이라고 해도 될만하다. 다큐멘터리 ‘거대한 대화’다. ‘워낭소리’ 이전 한국 다큐멘터리영화 최고 흥행기록을 세웠던 ‘영매-죽은 자와 산자의 대화’의 박세호 감독(48)이 연출했다.
“제가 결혼과 출산이 늦어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둘째가 여섯살입니다. 어느 날 둘이 놀고 있는 것을 물끄러미 보고 있노라니 내가 과연 딸을 데리고 결혼식장에 들어갈 수나 있을까 라는 생각이 확 들더군요. 살아갈 날이 많은 아이들의 미래가 어떨까? 왜 세상은 내가 컸던 시절과 달라지지 않았을까? 시험이 아이들을 잡고, 선행학습 하지 않으면 도태되고…. 다음 세대엔 좋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다는 생각에서 정치다큐멘터리를 만들게 됐습니다. 정치가 바뀌어야 삶이 바뀌는 것 아니겠습니까?”
‘거대한 대화’는 2011년 3월부터 9월까지 진보진영과 ‘합리적 보수’ 인사를 인터뷰한 기록이다. 이해찬, 천정배, 우상호, 임종석, 문성근, 김두관, 백원우, 김영춘, 심상정, 이정희, 조승수, 김성식, 정태근 등 정치인 18명과 조국, 이상돈, 이상이 등 학자 3인을 더해 총 21명의 생생한 육성이 담겼다. 이 작품은 지난 11월 29일 시작해 7일 폐막한 서울 독립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돼 뜨거운 열기 속에 상영됐다. “진영 논리에 기대서 보면 진보쪽에서도 실망할 수 있을 겁니다. 최근 정치적 주제를 다룬 영화들이 잇따르고 있지만 인터넷의 평점을 보면 10점이나 1점이 많습니다. 결국 ‘진영 논리’에 갇혀있다는 말이죠. 자기 진영의 전투력과 내부 결속력은 높일 수 있지만 과연 그런 게 의미가 있을까요? 우리 정치의 가장 큰 문제는 서로의 진영에 대한 적대감입니다. 정치인들도 이념이나 대의보다는 감정과 적의, 아집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이 영화는 진영 논리를 떠나 상식과 이성에 기대어서 한국 사회가 어떻게 가야 하느냐에 대한 질문을 던진 작품입니다.”
일종의 프롤로그격인 ‘직업으로서의 정치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치인들의 답변으로 시작해 영화는 총 3장으로 구성돼 있다. 1막은 노무현 정부로 대표되는 진보 정치의 실패의 원인에 대한 분석을 담았고 2부는 ‘합리적 보수’의 문제제기와 진보의 확장을 주제로 다뤘다. 3장은 ‘성찰’이다. “정치인이란 말하자면 추장이 되겠다고 하는 사람들” “자기만 깨끗하자고 하면서 현실 정치의 논리와 역학에 적응하지 못하는 정치인은 개인적으로는 순수하다고 할 수 있으나 정치적으로는 무능할 수 있다” “왜 정치인들은 죄를 진 것마냥 미안하다고 해야 하느냐, 그럴려면 정치를 그만 둬야지”라고 털어놓는 정치인들의 속내는 좀처럼 들을 수 없었던 자기고백이다. 정치가의 윤리와 이상, 현실의 논리간에 복잡한 심경이 그대로 반영됐다. 대통령 탄핵 국면 이후 국민들이 행정부와 의회 다수당으로 권력을 몰아줬음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부가 실패한 원인에 대한 분석에선 이제까지 한번도 듣지 못했던 ‘내부로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정치개혁과 경제 민주화 사이에서의 정세적인 ‘오판’과 한나라당 및 민주노동당 등 보수와 진보 진영과의 관계 설정의 오류 등에 대한 참여 정부 인사의 생생한 증언담이 담겼다. 결국 이 영화는 반값등록금, 복지, 세금, 비정규직, 국가안보, 대북 정책 등 한국 사회의 쟁점에 대한 진보진영과 합리적 보수의 목소리를 끄집어 내면서 ‘교집합’을 보여준다. ‘거대한 대화’는 3부작으로 기획됐다. 이번편이 합리적 보수의 문제제기와 진보의 확장이 주제라면 2부는 ‘보수의 역습’, 3부는 ‘이성의 귀환’(이상 가제)이라는 제목으로 준비되고 있다. 좌와 우를 넘어 상식과 이성의 체제를 향한 의지가 뚜렷하다.
“ ‘영매’도 산자와 죽은자의 화해가 아니었습니까? 결국 소통과 교감이 제 다큐작업을 관통하는 주제입니다.”
서울독립영화제가 열리는 서울 압구정의 한 극장에서 만난 박 감독은 “다큐 감독이 가장 조심해야 될 것은 사실에 대한 훼손과 자의적 해석”이라며 “최근 유행하고 있는 마이클 무어식의 접근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거대한 대화’는 선동이나 자극적인 폭로는 없지만, 2011~2012년 역사의 한 기록으로서의 가치와 사회에 대한 문제제기라는 다큐 본연의 기능에 가장 충실한 작품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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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안훈 기자/rosedale@heraldcorp.com
